브런치북 봄비 24화

-제24화-

두여자

by 백운

"아침부터 어디 가?"

윤예지가 아침 일찍부터 화장을 하고 있으니 백광현이 이상하게 쳐다 보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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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그렇게 궁금하지? 아내의 사생활에 너무 깊이 개입하는 거 아니야? 너무 많이 알면 다쳐~!"

윤예지는 현미래의 부탁도 있고 해서 쳐다보지도 않고 백광현의 질문을 장난스럽게 받아넘겼다.

"어이쿠~~ 네~~ 네~~~"

백광현도 허리를 연신 굽신 굽신하며 뒷걸음질 치고는 장난으로 받아넘겼다.

장난으로 받아 넘기기는 했지만 그렇게 백광현이 방을 나가자 화장을 하면서도 윤예지의 머릿속에서는 현미래의 말이 계속 생각나 불안하기만 했다. 백광현을 뒤로하고 병원으로 향하는 윤예지의 마음은 더 복잡하기만 했다.

'에잇! 모르겠다. 이런 생각 저런 생각 해 본 들 달라질 건 없고, 일단 가보자~'

일단, 부딪쳐 보자라고 생각하니 맘이 한결 가벼워졌다.

병원에 도착해서 간호사 선생님께 말씀드리자 기다리고 계시다며 바로 진료실로 안내해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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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 똑!

"교수님! 백광현 환자 보호자분 오셨습니다.“

"네! 들어오시라고 하세요!"

문을 열고 들어서자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쪽으로 앉으세요~"

현미래가 의자에서 일어서며 윤예지에게 밝게 인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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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말씀을요~ 당연히 와야죠! 근데 무슨 일로 부르셨나요?"

그렇지 않아도 윤예지는 현미래가 여간 신경이 쓰였던 게 아니었다.

백광현의 대학 동기라는 것도, 자기랑 비슷하게 닮은 것도, 백광현이 현미래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도, 현미래가 백광현의 담당 의사라는 것도 다 신경 쓰였었는데 이렇게 따로 전화로 부르기까지 하니 더 신경이 쓰였다.

여하튼 묘한 기분이었다. 긁어 부스럼을 만들기도, 지난 과거, 분명 좋은 과거는 아닌 거 같은, 를 괜스레 들쑤시는 것도 싫어서 묻어두기로 했지만 그래도 신경이 안 쓰이는 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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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예지는 백광현이 병원에서 현미래를 처음 봤을 때, 자기를 처음 봤을 때의 백광현의 눈빛이 떠올랐다. 유명 입시학원 상담실장으로 면접을 보러 왔을 때 백광현은 이미 유명 입시학원 수학과 주임을 맡고 있었고, 능력을 인정받고 있는 주요 과목 주임인 만큼 원장님의 총애를 받고 있었다. 그래서 원장님은 바쁘실 때 신입 선생님 면접을 백광현에게 맡기기도 했다. 그날,

윤예지가 면접을 보러 온 날도 그랬었다.

원장님은 근처 원장님들과 회의가 있어서 자리를 비우고 백광현이 원장실에서 윤예지의 면접을 봤었다.

윤예지는 그날 원장실로 들어섰을 때 백광현이 자신을 바라보던 표정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마치 고등학교 때의 첫사랑을 십여 년이 지나서 다시 만났을 때의 눈빛이랄까? 약간 멍하면서도 정신이 아련해 보이는 그런 눈빛이었다.

그래서인지 면접은 5분도 안 돼서 끝났고, 자신이 면접을 보러 온 건지, 백광현이 면접을 보로 온 건지 헷갈려 하며 면접을 봤던 기억이 난다. 당연히 결과는 합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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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 성화에 선을 100번도 넘게 본 남자.

그중 어느 여자도 두 번 이상 안 만났다던 남자.

학원 선생님들의 대시에도 썸 한번 없었던 남자.

학부모님들이 많이 소개팅을 주선해 준다 했지만 단 한 번도 안 응했던 남자.

그런 남자가 자신이 문을 열고 들어섰는데 빛이 났다고 했다.

윤예지도 아빠 친구인 원장님을 통해 수없이 얘기를 들었던 상태라 만나기 전부터 호감이 있었다. 아마 원장님은 둘의 자연스러운 만남을 위해 그날 윤예지 면접을 백광현에게 맡겼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많은 먼저 결혼한 사람들이 결혼 상대를 만나면 이상하게 그 사람에게서 빛이 난다고들 했었다.

그래서 그런 줄만 알았다. 윤예지도 백광현을 처음 봤을 때 부끄러워하는 모습 뒤로 빛이 났

었으니까. 둘이 결혼 한 인연이어서 그런 줄만 알았다.

그런데 현미래를 보고 윤예지는 직감했다. 백광현의 눈에 왜 자신이 빛이 났는지? 무슨 이유에서인지 백광현은 전혀 기억을 못 하고 있었지만 두 사람은 예전에 사랑하는 사이였음을, 그것도 정말 애틋한, 윤예지는 여자의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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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현미래가 둘만 보자고 하니 신경이 안 쓰일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오늘따라 화장을 짙게 한 건지도 몰랐다.

"아~ 네! 다름이 아니라 광현이 일입니다. 일단 확실한 건 아니니 놀라진 말고 들어주세요!"

무슨 일인지 현미래가 뜸을 들였다.

"네! 놀라지 않을 테니 말씀 하세요~ 선생님!"

윤예지가 현미래를 똑바로 보며 대답했다. 이럴 때 일수록 정신을 차려야 했다.

"광현이가, 죄송합니다ㅜㅜ 그냥 편하게 얘기 할게요!, 광현이가 근래에 예전과 달라진 점이

없었나요? 이를테면....."

"이를테면요?"

"예전과 다르게 머리가 아프다고 한다거나, 화를 낼 상황이 아닌데 화를 낸다거나, 최근 일을 갑자기 기억 못 한다거나, 갑자기 시야가 흐려지게 보인다고 했다거나.... 하는 증상이 없었나요?"

현미래가 윤예지를 표정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사고 한 달 전 부턴가? 두통이 있다고는 얘기했었어요! 조금 있으면 사라진다고 해서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는데...."

윤예지가 기억을 더듬으며 얘기했다.

"그리고 다른 증상은요?"

윤예지에게서도 두통이야기가 나오자 현미래가 미간을 찌푸리며 물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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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곤, 아! 최근 일을 몇 번 깜빡 깜빡했어요. 학생들 수업 시간도 몇 번 놓치고요... 그런

적이 없었던 사람이었데.... 근데 왜 그러시죠? 선생님"

말을 하다 말고 걱정돼서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이 윤예지가 물었다.

"음..... 아직 확실치는 않지만 여기를 보세요. 이게 광현이 뇌 사진인데 전두엽과 측두엽 사이 요 부분에 부옇게 보이는 흰 점 같은 게 보이시죠?"

현미래가 모니터를 돌려 윤예지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네! 근데 너무 희미해서 잘 모르겠어요!“

“자! 그럼. 이게 정상인의 뇌사진이고, 이게 광현이 뇌사진이에요. 둘이 비교해보시면 차이점이 보이시나요?”

“네. 그렇게 보니 희미하긴 하지만 차이가 있네요.”

"네. 그래서 추가 정밀검사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이번 사고랑은 연관이 없는 것 같고, 오히려 이번 사고로 좀 더 빨리 발견된 것 같습니다."

현미래는 사고 덕분에 발견된 것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네. 그렇근요. 그런데 저게 뭔가요? 선생님!"

윤예지가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걱정스럽게 물었다.

"추가 정밀검사 후에 말씀드리겠습니다! 광현이한테 제가 따로 말씀 드리는 게...."

현미래의 말을 끊고 윤예지가 말했다.

"아뇨~ 선생님! 광현 씨는 제가 잘 알아요~ 광현 씨한테는 말하지 말고 어차피 다음 주 예약이니 하루 이틀 정도만 당겨서 검사받을 수 있게 부탁드릴게요! 광현 씨한텐 말하지 말아 주세요!"

윤예지가 작지만 단호하게 얘기했다. 아마도 흰 무엇인가가 무엇인지를 어느 정도 눈치를 챈 듯한 모습이었다.

"네! 그렇게 하도록 하죠~ 영상의학과랑 MRI 촬영 일정 조율해서 예약 잡고 연락드리겠습니

다. 그동안 주의 깊게 살펴주세요~"

현미래도 윤예지의 의견에 동의하며 말했다.

"네. 제 말에 동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윤예지는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지금 정신을 다잡지 않으면 다 무너진다는 생각에 마음을 굳게 먹었다.

"더 하실 말씀 없으시면 일어나 보겠습니다. 선생님"

윤예지는 머릿속이 복잡해 일어나 좀 걷고 싶었다. 백광현이 보고도 싶었다.

'불쌍한 사람~~ㅠㅠ'

"네~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선생님."

현미래의 말을 듣고 윤예지는 일어나 인사를 하고는 뒤돌아서 나오려는데 갑자기 현기증이 났다.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했다. 하지만, 참아야 했다. 강해져야 했다.

"윤예지 씨 강하신 분이네요~ 광현이가 장가를 잘 갔네요~"

윤예지가 이런 생각을 하며 문손잡이를 잡으려는 순간 뒤에서 현미래가 말했다.

"아니에요~ 제가 시집을 잘 왔죠? 선생님도 좋으신 분이네요! 광현 씨 대학시절이 늘 궁금했었는데 행복 했겠네요~ 그리고 지금은 좋은 의사 선생님이시니 수술도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윤예지는 뒤돌아서 현미래에게 허리 숙여 인사를 하고는 나왔다.

'대한민국 아니 세계 최고의 뇌종양 권위자 현미래!!!

그녀가 의심된다고 불렀으면 맞을 것이다.

그리고 백광현이 어떤 상태든 그녀라면 광현 씨를 낫게 해줄 것이다.'

윤예지에게는 그런 믿음이 있었다. 그리고 쏟아지려는 눈물을 억지로 참으며 백광현에게로 전화를 걸었다. 오래지 않아 백광현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뭐했어? 안 잤어? 피곤 할 건데 잠 좀 자두지?”

“여보세요~! 어! 무슨 질문이 이렇게 많아? 갑자기? 아내의 사생을 알려하지 말라더니 결국 또 내가 보고 싶었나 보네.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전화 한 걸 보니....ㅋ ”

“ㅋ 그렇네...... 점심 뭐 먹을까? 내가 맛있는 거 해줄게........”

윤예지의 눈에서는 어느새 눈물이 뚝! 뚝! 떨어지고 있었다.








소설 : 봄비 -제25화- (사라진 백광현)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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