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
똑! 똑!
"현미래 교수님께서 가판독 결과는 이따 저녁 회진 도실 때 말씀드리신다고 쉬고 계시라고 하십니다."
백광현과 윤예지가 MRI촬영을 마치고 입원실로 들어와 쉬고 있는데 간호사 선생님이 입원실 문을 열고 들어와 전해주셨다.
"네~ 알겠습니다."
"별거 없는 모양이네~ 이상 있었음 바로 불렀을 건데~~ 이제 그만 가봐~"
백광현이 웃어 보이며 윤예지에게 말했다.
"그래~ 걱정 말고 푹 쉬고 있어~ 이따 저녁에 다시 올게~"
현미래가 나중에 회진 때 얘기한다고 하자 윤예지도 속으로 혹시나 하는 기대감이 생겼다.
‘정말, 별거 없는 건가? 그랬으면 소원이 없겠는데....’
"나야 뭐.... 안 와도 되긴 하지만 자기가 오는 게 맘 편하다면 그렇게 해~"
윤예지의 마음을 아는 지, 모르는 지, 백광현이 장난스럽게 얘기했다.
"어이그~ 알았어~"
윤예지가 얼굴을 살짝 찡그리며 나가자 백광현도 깊은 생각에 잠겼다.
‘뭐지? 왜? 모르겠다. 둘중 하나겠지? 너무 안 좋아서 말해주기 힘들었거나? 아니면 진짜 아무 것도 아니어서 다른 급한 환자를 먼저 보거나? 일단 내가 당장은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기다려 보자.’
백광현은 생각하고 걱정해봤자 달라 질 게 없다고 생각하자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한편, 병실을 나온 윤예지는 바로 집으로 가지 않고 신경외과로 향했다. 현미래를 보고 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진료실의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현미래 선생님 오늘 진료 없으신가요?"
윤예지가 진료실앞에 계신 간호사 선생님께 물었다.
"네. 오전 진료 잠깐 보시고 급히 병원장님 뵈러 가셔서 다른 진료는 다 연기하셨어요. 이런 적이 한 번도 없으셨는데....."
간호사 선생님도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순간 불길한 예감이 윤예지를 스치고 지나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뭐지? 일정을 다 취소하고 병원장님을 뵈러? 그 만큼 상태가 위중하다는 건가?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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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야! 그건 너무 위험해!"
현미래는 경윤 대학병원 병원장인 현탁민을 만나 뭔가를 얘기하고 있었다. 현탁민은 병원장이면서 현미래의 아버지이기도 했다. 몇 년 전 현우재가 갑자기 교통사고로 생을 마감하면서 그가 미리 작성해 놓은 유언대로 현탁민은 경윤 대학병원장이 되었고, 현미래는 경윤 대학병원 교수직과 미래재단 이사장직을 겸임하게 되었다. 현탁민의 유언은 극비리에 가족들과 몇 몇 정치, 경제, 교육계 유력인사들만 참여 한 가운데 그의 변호사가 낭독했다. 죽으면서까지도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그의 영향력을 막대했다. 남아있는 사람들은 잠시 눈동자의 흔들림만 있었을 뿐, 결국 그의 유언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
"아빠! 모든 책임은 제가 지겠습니다. 혹시라도 잘 못 된다면 그에 따른 모든 비난은 제가 안고 갈 테니 수술만 할 수있게 허락해 주세요! 이렇게 부탁드립니다!"
현우재가 현미래에게 한 일을 알고 나서는 한없이 현미래에게 부드러워진 현탁민이었지만 수술 성공 확률이 1% 미만인 수술을 보호자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고 수술을 하겠다는 현미래를 말리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현미래가 세계 최고의 팀을 꾸려 수술을 한다고 해도 이건 너무 위험부담이 컸다.
"미래야! 이건 너만의 문제가 아니야! 자칫 잘 못하면 나 아니 우리 병원 전체가 위험해질 수도 있어! 이 수술 꼭 해야겠니?"
현탁민은 될 수 있는 한 현미래를 말려야만 했다. 하지만, 그는 현미래의 눈빛에서 말릴 수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현미래가 처음 의대를 가지 않고 수학과를 가겠다고 한 이후에 이렇게까지 단호하게 말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네! 아빠! 환자가 백광현이에요! 할아버지가 이미 한 번 죽인...... 전 제 모든 것을 걸고 지켜주겠다고 약속했어요. 꼭 성공할 거예요!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수술을 하겠다는 현미래의 의지는 너무나도 단호했다. 백광현이라는 이름을 듣고 현탁민은 더 이상 어떠한 설득도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직감했다.
"미래야! 꼭 성공해야 한다. 만에 하나, 아니 천만에 하나라도 잘 못 된다면 나는 모든 사실을 부인할 것이야! 우리 병원 식구들을 위해선 나도 어쩔 수 없어! 모든 게 너의 독단적인 행동이 될 것이고, 모든 책임과 비난은 너에게로 돌아갈 거야! 감당할 수 있겠니?"
현탁민이 안타깝게 현미래를 보며 말했다.
"네! 걱정 마세요! 절대 그럴 일없어요! 이게 제 운명이에요!"
현미래가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현탁민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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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 똑!
"현미래 교수님 회진이십니다!"
저녁식사 시간이 지나고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간호사 선생님들이 백광현의 입원실 문을 열고 현미래와 같이 들어왔다.
"컨디션은 어때? 광현아~~ 예지 씨도 같이 있었네요? 저녁 식사는 하셨어요?"
현미래가 밝게 웃으며 말했다.
"네! 선생님! 저녁먹고 가판독 결과 말씀해 주신다고 하셔서 같이 들으려고 기다리고 있었어요!"
윤예지나 불안한 눈빛으로 현미래를 보며 나지막하게 얘기했다. 현미래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에는 불안함을 넘어 간절함이 베어 나오고 있었다.
"네! 가판독이긴 하지만 별거 아니에요~ 자그마만 혹이 있긴 한데 요즘 기술이 좋아져 간단한 수술만 하면 좋아질 거예요~ 혹시나 해서 다른 전문가 선생님께도 문의 드렸는데 같은 결과 였어요. 그래서 알려드리는 게 조금 늦어졌어요. 걱정 마세요~"
현미래가 윤예지의 눈을 보며 웃으면서 말했다.
"거 봐! 내가 별거 아닐 거라고 했잖아!"
백광현이 웃으며 윤예지의 어깨를 툭하고 쳤다.
"에고! 그게 진짠가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윤예지는 눈물을 흘리며 침대에 주저앉았다.
이런 윤예지의 모습을 보며 현미래는 사실대로 말 안 하기로 한 자신의 결정이 잘 한 것이라고 다시 한번 속으로 생각했다.
"에고ㅠㅠ 우리 예지 씨가 걱정을 많이 했군요ㅠㅠ 제가 누구예요? 걱정 마시라고 했죠?"
현미래가 윤예지의 두 손을 꼭 잡았다. 윤예지는 현미래의 따뜻함이 손을 타고 그대로 전해지는 것 같아 더 고마움을 느꼈다.
"뭐야? 나 몰래 둘이 언제 이렇게 친해진 거야?"
백광현이 두사람의 행동에 눈이 동그래지며 물었다.
"여자들끼리의 일에 너무 깊이 개입하지 마~그러다 다쳐~"
현미래가 눈을 흘기며 백광현에게 말했다.
"수술은 간단한 수술이지만 뇌 수술이라 이것저것 준비해야 하는 게 많아 시간은 좀 걸릴 거 예요~ 하지만 결코 위험 하진 않으니 안심하시고 기다리시면 돼요! 예지 씨~"
어느새 현미래는 윤예지의 손을 쓰다듬으며 친 언니처럼 다독여 주고 있었다.
"네~ 선생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광현 씨랑 선생님이랑 저희가 다시 만난 게 운명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감사합니다. 하나님~"
윤예지가 다시 한번 현미래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어이쿠~~ 저도 감사.. 아... 아..... 아....."
링거 바늘이 꽂혀있다는 걸 깜빡하고 백광현도 같이 손을 잡으려다가 바늘이 당겼는지 엄살을 떨었다. 그 바람에 셋은 간만에 웃을 수 있었다.
그 웃음이 커질수록 현미래의 다짐은 더욱더 확고해졌다.
백광현이 맘을 다잡으며 수술 준비를 하고 있는 동안 현미래가 메일을 보냈던 의사들이 세계 각지에서 모여들었다. 현미래는 그 팀들과 백광현의 뇌 MRI 사진을 분석하며 수술에 관해 연구하고 또 연구했다. 예전 캐나다에서 딱 한 번 캐나다 총리 수술 때, 현미래가 집도의가 되어 성공한 적 있는 악성 뇌종양 수술과 거의 크기도 진행 상황도 위치도 흡사했다. 그때도 성공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고 했었지만, 현미래는 멋지게 성공했었다.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기적이라고 했었다.
그때 현미래 교수도 운이 99퍼센트였다고 했었다. 하지만 현미래에게 이번 수술은 결코 운만을 바랄 수 없는 수술이었다. 환자가 백광현이었기 때문이다. 운도 실력으로 만들어야 하는 수술이었다. 그래서 반드시 성공해내야만 하는.......
드디어 수술날 아침이 되었다.
"이번에도 하늘이 우리를 도와줄 것입니다."
현미래는 조용히 수술팀을 모아 긍정의 힘을 불어 넣어 주었다.
드디어 백광현이 베드에 실려 수술실로 들어왔다.
모든 컨디션이 정상임을 확인한 후 마취가 시작되었다.
현미래는 백광현을 쳐다보며 눈을 껌뻑이며 얘기했다.
"걱정 마! 한숨 푹 자고 나면 다 좋아져 있을 거야! 내가 얘기했었지? 반드시 널 지켜줄 거라고, 죽어서라도 널 지켜 줄 거라고....."
백광현은 마취 기운에 의식이 아련해서 인지 옛날 기억이 순간 다 살아났다. 그때 무의식 속에서 현미래가 자기에게 했던 말들이.....
"미래야~ 나... 다 생각났어! 고마워! 미래야...... 좋은.... 기억...... 만........."
그 말을 남기고 백광현은 깊은 잠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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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 봄비 -제29화- (아! 하늘이여!)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