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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강사생활 시작

by 백운

현원장의 말에 내가 살짝 망설이자 현원장이 허리를 앞으로 숙이며 좀 더 적극적인 제안을 했다.


"백 선생님! 사실 저희 원에 부원장님 석이 지금 공석입니다. 제 편이 되어 주신다는 약속을 해주신다면 백 선생님께 6개월 뒤에 있을 부원장님 인사에서 많은 플러스 점수가 되실 거라 약속드립니다."


나는 사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신출내기인 나에게 부원장 자리를 약속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부원장 자리를 언급한 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이었다. 나를 그만큼 잘 봤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학원장이라는 자리가 그만큼 외로운 자리라는 방증이기도 해서, 현원장에게 약간의 동정심 마저 들었다. 하지만, 나는 이내 평정심을 되찾고 사실대로 말했다.


"아닙니다. 원장님. 사실 원장님의 눈빛과 파격적인 제안에 살짝 흔들린 건 사실입니다만, 제가 워낙 포커페이스가 안 되는 사람이라, 그런 약속을 드릴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현원장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바로 자세를 세우고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네~ 그럴 줄 알았어요! 사실 이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제가 한 약속은 지켰겠지만, 인간적으로는 백 선생님께 약간 실망했을 거예요~ 호! 호! 호! 그렇다고 백 선생님 시험하기 위해서 한 말은 아니니 오해는 말아주세요~ 호! 호! 호!"


"네~ 그럴 분이 아니라는 거 알고 있습니다. 호의만 감사히 받겠습니다."


"네!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감사해요~ 그치만, 6개월 뒤에 부원장님 인사가 있다는 건 사실이고, 백 선생님도 후보이니, 열심히 해주세요~ 기대할게요~"


"감사합니다.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자~ 곧 선생님들 수업 마치실 시간이라 그럼 오늘은 계약서 쓰시고 공적인 업무는 마무리할까요?"


"네? 공적인 업무요? 그럼 또 뭐가 남았나요? 원장님!"


내가 얼떨떨해하면서 얘기하자 현원장이 또 웃으며 말했다.


"호! 호! 호! 일단 계약서부터 쓰시죠~ 백 선생님!"


"넵~ 알겠습니다!"


계약서를 거의 다 썼을 때쯤, 멜로디가 울렸다. 수업 마치는 소리인 듯, 여기저기서 아이들이 쏟아져 나왔다. 발자국 소리에 아이들 떠드는 소리, 선생님들과 인사하는 소리까지 겹쳐 복도는 이내 소란스러워졌다.


"딱 맞춰서 수업이 마쳤네요! 자! 계약서는 한 부씩 나눠 가지시고, 그럼 이제 오늘 공적인 업무는 여기서 끝입니다. 다음 주 월요일부터 출근이시니, 오늘 뒤에 다른 스케줄 없으시면, 선생님들이랑 안면도 틀 겸, 분위기도 파악할 겸, 시간 되시는 선생님들이랑 회식하시죠? 물론 사적업무고 선택은 자유입니다. 선생님들께도 아직 말씀 안 드려 놓아서 몇 분만 참석하실 겁니다."


"아! 아까 하신 말씀이 이 말씀이셨군요? 넵. 좋습니다. 원장님"


"백 선생님! 의외로 낯 안 가리시고 화끈한 데가 있으시네요? 맘에 들어요~앞으로 잘해봅시다!"


말하면서, 갑자기 현원장이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네~감사합니다!"


나도 손을 내밀어 악수했다. 아까 계약서 쓸 때까지만 해도 못 봤는데 현원장은 화려한 네일에 길고 뽀얀 손가락을 가지고 있었다. 잡은 손이 부드러웠다. 그 순간 옛날 기억이 떠올랐다. 그 아이도 손가락이 길고 뽀얀 부드러운 손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통에 잠시 손을 붙들고 있는 꼴이 되어버렸다.


"흐음. 흠. 흠......"


현원장이 잠시 헛기침을 해서 정신 차리고 손을 놓았다.

정말 찰나였지만 아찔했다. 계약서 쓴 바로 다음부터 실수라니..... 다행히 현원장은 개의치 않는 듯, 내선번호를 누르더니 안 선생님께 남아 계신 선생님들께 오늘 회식 참여 가능하신 선생님들 파악해 달라고 부탁하셨다.


"안 선생님~ 오늘 백 선생님과 계약서 쓴 기념으로 비공식 회식을 할까 하는데 참여가능하신 선생님들 파악 좀 부탁드려요~ 안 선생님은 시간 되시죠?^^네~그럼 우린 요 앞 집현전으로 가있을 테니 안 선생님도 정리되는 대로 오세요~선생님들께도 그렇게 전해주시고요~감사해요~"


말씀을 마친 현원장은 주섬 주섬 가방을 챙겨 들고 나를 보며 말했다.


"자~우린 먼저 가볼까요? 요 앞 한우 맛있게 하는 집이 있어요~ 참 제가 메뉴를 묻지도 않고 정했네요~ 백 선생님 한우 좋아하세요?"


"네~가리는 음식 없습니다. 다만, 회라든지 생고기는 즐기지는 않습니다."


"어머~저랑 똑같네요~자 얼른가요~백 선생님~"


"넵~"


그렇게 나는 최강학원 황금원에서, 직장생활의 첫발이자, 강사로서의 첫 발을 내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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