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
교통사고는 언제 내릴지 모르는 봄비처럼 그렇게 누구에게나 운명처럼 다가온다.
피할 수 있거나, 예고가 있으면 좋을 건데 그렇지 않다.
그날 교통사고도 그랬다.
삼일절이자 봄비가 내리는 토요일, 저녁이 다가오는 시간이었다. 백광현은 학생들 수업을 끝마치고 서둘러 퇴근 준비를 했다.
다른 선생님들은 이미 수업을 마치고 퇴근을 했거나, 아니면 토요일이라 출근을 하지 않았다. 혼자 마무리 하고 정리를 하고 퇴근을 하면 끝이었다.
오늘 같은 날은 사실 좀 편했다. 다른 선생님들 수업이 더 늦게 끝나는 날이면 수업이 끝나기
를 기다렸다가 같이 퇴근을 하거나 선생님들이 작성한 일지를 확인하고 퇴근해야 했기 때문이
다. 그러면 퇴근 시간은 더 늦어졌다.
그래서 그런지 평소와는 달리 백광현의 마음은 첫 소풍을 가는 아이처럼 이상하리만큼 급했다.
평소 등산이랑 운동을 좋아했던 백광현 이었지만, 두 아이 육아와 학원 강사 일을 병행하면서 요즘 따라 운동량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오늘은 기필코 비가 오더라도 우산을 들고, 등산까지는 아니지만, 산책을 나갈 계획이었다.
학생들 수업 스트레스에, 오늘은 아내의 잔소리까지 겹쳐 걸으면서 생각도 정리하고 스트레스도 날려버리고 싶었다.
백광현은 걷다 보면 발바닥의 신경들이 자극받아 스트레스가 풀리고 생각이 정리된다는 글을 어디선가 본거 같았다. 사실 그 글을 보기 전부터 걷기는 백광현의 최애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기도 했다.
적게는 만보, 많게는 이만 보 정도를 땀이 날 정도로 걷다 보면 스트레스가 풀리고 고민 중이던 생각들이 정리가 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퇴근을 해서 이것 저것 정리를 하고 우산을 챙겨 막 집을 나서려는데 갑자기 생각이 났다.
'아차! 태극기!'
삼일절이라 아들이랑 같이 게양한 태극기가 생각났다.
“아빠! 오늘 비 온다고 했으니 저녁에 들어오면 태극기 꼭 걷어야해! 꼭! 잊으면 안돼!”
요즘 들어 해야 할 일을 자주 깜빡했던 터라 큰아이가 엄마랑 동생이랑 교회가면서 백광
현에게 신신당부하면서 했던 말이다.
'집을 나서기 전 생각이 나서 다행이다. 휴우.....‘
하마터면 또 큰아이와 작은아이까지 합세 한 잔소리 폭탄을 맞을 뻔했다고 생각하니 백광현은 아찔했다. 비가 더 많이 오기 전에 얼른 태극기 철수 시켜야 했다.
백광현은 태극기를 철수 시키고 나서야 다시 장우산을 챙겨 근처 자주 다니는 공원으로 향했다. 부슬 부슬 내리기 시작한 봄비는 내렸다 그쳤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올 거면 아예 많이 오든지? 아님 아예 오지를 말든지? 성가시게ㅜㅜ'
우산을 쓰기도 애매하고, 안 쓰기도 애매한 상황이라 백광현은 속으로 투덜거리며 걸었다.
그래서 공원에 나온 사람들도 우산을 쓴 사람이 반 정도, 안 쓴 사람이 반 정도로 보였다.
백광현은 우산을 폈다 접었다를 반복하다가 안경에 자꾸 물방울이 묻으니 얼룩이져서 계속 쓰기로 결정하고, 우산을 쓰고 산책을 계속했다.
백광현의 성가신 기분과는 상관없이 봄비가 내리는 공원은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무념무상으로 비 내리는 공원을 보며 산책을 하고 있는데
"위이이잉~ 위이이잉~"
핸드폰을 들고 있는 백광현의 손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여보세요? 집에 들어왔는데 없어서 전화했지! 어디야?"
아내 윤예지였다. 그런데 아침에 짜증을 낼 때와는 전현 다른 목소리였다. 갱년기가 찾아 온 것인지 요즘 따라 별일 아닌 데도 짜증을 자주 내는 윤예지 였다. 아침에 짜증을 낸 게 미안했던 모양이었다.
결혼 전에는 정말 여리여리 하고 마음씨도 착해서 개미 한 마리 못 죽일 것 처럼 천사 같던 윤예지는 두 사내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달라졌다. 게다가 요즘은 갱년기까지
겹쳤는지 툭하면 애들한테 뿐만 아니라 백광현 자기한테도 잔소리에 화까지 내는게 다반사였
다. 그래서 백광현도 불만이 이만 저만이 아닌 상태였다.
그래서 백광현은 진지 모드로 갈까 하다가 장난스럽게 받아넘겼다.
"나? 왜 물어? 집 나왔지~"
"풋~~그래서 집 나가서 어디 갔어?"
윤예지는 백광현이 그럴 사람이 아니란 걸 알고 있었기에 헛웃음이 났다.
"내가 갈 때가 어디 있겠어? 하도 적적하고 사는 게 재미가 없어서 공원 산책 나왔어!"
"어이구~~집 나가서 간 게 겨우 공원이야? 아침엔 내가 했던 말이 많이 거슬렸던 모양이네?
미안해~ 나도 안그러려고 하는데 잘 안되네. 언제 들어올 거야?"
기분이 언짢아도 갈 곳이라고는 공원밖에 없는 백광현이 약간은 불쌍하기도 하고 약간은 귀엽
기라도 한 듯이 윤예지가 말했다.
“지금 가려던 중이야~ 왜?"
"왜긴? 왜야? 서방님 오는 시간에 맞춰서 보양식 해놓으려고 하지? 알았어~ 조심해서 와~"
"어이구~말이나 못 하면.....알았어. 금방 갈게......"
이렇게 전화를 끊은 백광현은 바로 가려다가 나온 김에 조금만 더 걷고 싶어서 공원 한 바퀴를 더 돌고 집으로 향했다.
'한 바퀴를 더 돌지 않았으면 교통사고가 나지 않았을까?'
모를 일이다.
그런데, 뭔가가 개운치가 않았다. 뭔가가 빠진 듯 했다. 애당초 계획한 게 있었는데 중요한 뭔
가를 빠뜨린 느낌이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공들이 보였다.
'아차! 로또!'
토요일이면 로또 한 장을 사는 소소한 버릇이 백광현에게는 있었기 때문에 집을 나올 때 로또 한 장을 사야겠다고 맘을 먹고 있었다.
전화를 끊고 공원도 한 바퀴 더 돌았고, 윤예지가 기다릴 거 같아서 그냥 갈까도 생각했다가 찝찝한 기분이 남는게 싫어서 로또를 사기로 했다.
그래서 집 근처 가게에서 로또 한 장을 사서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로또를 사지 않고 바로 집으로 갔으면 교통사고가 나지 않았을까?'
역시 모를 일이다
가게를 들어가니 평소와는 달리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토요일 저녁시간이면 로또를 살 수 있
는 마감시간이 임박했기 때문에 항상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어? 웬 일이지? 아싸! 재수~’
재수가 좋다고 생각한 백광현이 가게에서 로또 한 장을 사서 나와보니 횡단보도 신호가 막 바
뀌고 있었다. 그래서 우산을 펴고 급히 횡단보도로 뛰었다. 그런데,
"끼이익 끼이익~~~~~~~"
급하게 뛰어 건너가던 백광현의 귀에 어디선가 브레이크를 심하게 밟는 소리가 들렸다.
'뭐지?'
백광현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려 소리가 나는 쪽을 쳐다봤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1차로엔 벤츠가 서있고 2차로는 비어있었다.
‘이상하네.....’
그런데 이상하다고 생각한 것도 잠시. 잠시 후 2차로에 오토바이 한 대가 갑자기 나타났다!
오토바이는 신호가 바뀐 걸 뒤늦게 발견하고는, 속도를 줄이려고 급브레이크를 잡았는데 빗길이라 미끄러워 속도가 줄지 않자, 벤츠와 충돌할 거 같아서 차선을 급하게 변경한 듯했다.
속도를 이기지 못 한 오토바이는 그대로 바닥에 넘어졌고, 운전자는 오토바이의 무게와 속력을 이기지 못하고 오토바이를 놓치고 옆으로 나뒹굴었다.
주인을 잃은 오토바이는 그대로 아스팔트 바닥을 미끄러졌다. 오토바이가 미끄러져 오는 차로는 바로 백광현이 서있는 2차로였다.
오토바이가 영화의 한 장면처럼 백광현의 앞으로 쭈~~욱 빠른 속도로 미끄러져 왔다. 너무 당황한 백광현이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대로 지켜보는 수밖에는......
그리고 주위에서
"어떡해?"
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 모든 것들이 슬로비디오로 백광현의 눈에 들어왔고, 귀로 들려왔다.
그리고 스쳐 지나가는 얼굴들 윤예지, 아이들, 부모님. 그리고....백광현이 모르는, 처음 보는
얼굴 하나....‘누구지?’
라고 생각하는 순간 백광현은 '빙글' 하는 느낌과 함께 아스팔트 바닥에 머리를 부딪치고 잠시 정신을 잃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주위 사람들의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고 1차로 벤츠 운전자가 걱정스럽게 차에서 나오는 모습, 오토바이 운전자가 뒤뚱거리며 뛰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위이~~~이잉, 위이~~~~이잉"
그때 다시 백광현의 전화기가 울렸다.
'전화를 받아야 하는데, 예지가 걱정할건데..............'
하지만, 핸드폰 진동이 울리는 걸 느끼며 백광현은 다시 정신을 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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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 봅비 -제 2화- 에 계속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