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봄비 04화

-제4화-

첫 만남

by 백운

회색 구름이 낮게 깔린 2002년 삼일절.

현미래는 답답하고 화가난 마음에 바람이라도 쐬면서 스트레스도 풀고 화도 풀 겸 경윤 대학

캠퍼스를 거닐고 있었다. 의대를 가라는 아빠 현탁민의 뜻을 어기고 수학과에 등록을 했기 때문에 현탁민과 한바탕 전쟁을 치뤘다.

현미래는 의대보다는 수학과를 가고 싶었다. 그런데 현탁민은 막무가내로 의대를 가라는

것이었다.

현탁민의 성화에 못 이겨 의대와 수학과에 원서를 다 내긴 했지만 의대를 갈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의대는 떨어지길 간절히 바랐었지만 둘 다 붙어버렸다. 그래서 현탁민의 성화에 못 이기는 척, 현탁민에게는 의대를 등록하겠다고 해놓고는 수학과에 등록을 한 것이다. 그걸 알고는 현탁민이

노발대발 하는 통에 집안에는 한바탕 폭풍우가 휩쓸고 지나갔다..

'어차피 내 인생인데ㅠㅠ 아빠는 왜 그러시는지 몰라? 다른 때는 괜찮은데 꼭 진로문제만 나오면 꼭 다른 사람 같아. 오빠 둘 의대 보내셨으면 됐지? 조선시대도 아니고? 자식 인생을 부모가 결정한다는 게 말이나 돼? 아...몰라! 몰라! 내인생이야....이제 나도 성인이고, 내 인생 내가 살 거야'

자기 앞날을 당신 마음대로 결정지으려고 하는 현탁민만 생각하면 골머리가 아팠다. 현탁민은 고지식한 면은 있어도 현미래에게는 자상한 아빠였고 현미래의 의견을 많이 존중해주는 편이었다. 하지만 유독 진로 문제에 있어서만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런 생각을 하며 캠퍼스를 거닐고 있는데 부슬부슬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뭐야? 꼭 내 기분 같네.... 그래! 하늘도 슬퍼서 우는 구나....울어라! 울어라! 하늘이여!’

이런 생각을 하면서, 현미래는 우산도 안 챙겨 왔지만, 그렇게 많은 양의 비가 아니라 무시

하고, 가방에서 이어폰을 꺼내 핸드폰에 연결하고 귀에 꽂았다.

역시 스트레스를 날려버릴 땐 락이 최고였다. 현미래는 기분이 한결 좋아지는 듯했다.

그렇게 우산도 써지 않은 채 캠퍼스를 정처없이 거닐다 집으로 가기 위해 발걸음을 돌려 경윤대 앞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신호가 바뀌고 건너려고 막 발을 내디뎠을 때 신호를 미쳐 발견하지 못한 오토바이 한 대가 현미래를 향해 질주해왔다.

현미래는 이어폰을 꽂고 음악에 심취해 있어서 오토바이 소리를 듣지 못하고 있었다. 다만,

길을 건너던 맞은 편 사람들이 자기를 쳐다봤다 옆을 쳐다봤다 하면서 놀라는 표정을 짓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옆을 쳐다 봤다가 깜짝 놀라 그 자리에 얼어 붙고 말았다. 오토바이 한 대가 미친 듯이 자기를 향해 달려오고 있지 않은가? 너무 놀라고 당황해서 현미래는 그 자리에서 하얗게 질려 꼼짝도 못하고 있었다.

오토바이와 거의 충돌 직전 그때 이 상황을 지켜보던 한 남학생이 현미래를 급히 뒤로 당겨주어서 아슬아슬하게 현미래는 오토바이와의 충돌을 피할 수 있었다.


"괜찮아요? 저런 나쁜 놈! 운전을 저 딴식을 하다니!!!"

그 학생은 놀라서 하얗게 질린 현미래에게 괜찮냐고 물어봐 주고, 신호위반을 한 오토바이 운전자에게 욕을 해댔다.

"네...다행히! 덕분에... 감사합니다~!"

뒤로 당기면서 넘어질 뻔한 현미래를 그 남학생이 부축해 주고 있어서 현미래는 그 남학생에게 어설픈 자세로 안겨있는 꼴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현미래에게는 그게 중요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지금 현미래의 눈에는 찰나였지만 그 남학생이 그렇게 멋지고 잘 생겨 보일 수 없었다. 비가 내리는 회색빛 하늘 아래 비치는 수묵화 실루엣과 자신을 보호하면서 붙들고 있는 그 팔뚝이 현미래의 심장을 뛰게 만들었다.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현매래는 자기도 모르게 얼굴이 빨개졌다.

그 남학생은 바로 백광현이였다. 백광현은 아무것도 모른 채 얼굴이 빨개진 현미래에게

"어! 얼굴이 빨개졌는데 많이 놀라신 거 아니에요? 병원 안 가보셔도 되겠어요? 119부를까요?"

라고 물었다. 현미래는 자신도 모르는 낯선 감정에 놀라며 얼른 정신 차리고 대답했다.

"아니요! 괜찮아요! 잠시 너무 놀라서 그런 거 같아요...."

대답하고는 다시 학교 안으로 얼른 뛰어 들어가 버렸다.

그것이 현미래와 백광현의 첫 만남이었다.

한편, 지방 산골 출신인 백광현은 경윤 대학 수학과에 합격을 하고, 학교 근처에 자취방을 구했었다. 그래서 3.1절을 맞이해 짐을 옮기기 위해 덕산시에 와있었다. 백광현이 사는 동네는 지방, 그것도 산골의 조그마한 동네라 백광현이 경윤대학교 장학생으로 합격통지를 받았을 때, 동네 잔치가 벌어졌었다. 외지 출신에 입학성적도 좋아, 기숙사에도 당첨이 되었었고, 부모님들께서도 백광현이 기숙사에 들어가길 바랐지만, 백광현은 왠지 기숙사생활이 자기랑 맞

지 않았다. 그래서 고등학교에도 기숙사가 있었지만, 한 달도 못 버티고 나온 백광현이었다. 그러다 보니 백광현의 부모님께서도 더는 권하지 않았다.

짐이라고 해봤자 이불이랑 옷 몇 개 배낭에 넣어서 가지고 온 게 다였기 때문에 짐정리는 빨리 끝이 났다. 가져온 짐이 별로 없어서 주말 동안 밥솥이랑 냄비, 그릇, 버너 등 밥해 먹을

살림살이들을 사야 했다. 그러려고 개강일보다 좀 더 일찍 자취방으로 온

것도 있었다.

백광현은 집에 있어봤자 답답하기만 하고, 살림살이를 사러 나가자니 적은 짐이지만 짐 정리 하고 피곤하기도 하고, 귀찮기도 해서 대학 캠퍼스 구경이나 할까 하고 자취방을 나와 캠퍼스를 거닐고 있었다. 그런데 잠시 후 비가 부슬 부슬 내리기 시작했다.

'우산을 안 가져 나왔는데, 참 집에 가봤자 우산도 없지?ㅋ '

자취방에 다시 들어가기도 애매한 상황이었다. 그렇게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하면서 캠퍼스를 거닐고 있었는데 자기랑 똑같이 우산을 안 쓴 긴 생머리의 여학생이 이어폰을 귀에 꽂고 걸어가는 게 보였다.

백광현은 마치 뭔가에 홀린 듯이 자기도 모르게 그 여학생 따라 걷고 있었다. 비가 내리고 있었고 우산도 안 쓰고 있었지만, 백광현의 눈에는 그 여학생에게서 왠지 신비한 빛 같은 게 나와 그 여학생은 비에 하나도 젖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캠퍼스를 거닐다가 횡단보도에

이르러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백광현의 눈에는 아무래도 그 여학생의 모습이 불안해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신호가 바뀌고, 막 횡단보도를 건너려 할 때였다. 저만치 오토바이가 속력을

줄이지 못하고 질주해 오는 모습이 백광현의 눈에 보였다. 하지만, 그 여학생은 이어폰을 꽂

고 있어서인지 주위 상황을 전혀 모르고 있는 듯했다.

이 상황을 지켜 보고 있던 백광현은 얼른 뛰어가 그 여학생을 뒤로 잡아당겼다. 그 여학생은 쓰러지듯 백광현에게 안겼다. 좀 더 말을 걸어 보고 싶었지만, 그 여학생은 괜찮다는 말만 남기고는 얼른 캠퍼스 안으로 다시 뛰어 들어가 버렸다.

이것이 백광현과 현미래의 첫 만남이었다.

이렇게 운명적인 첫 만남에서 헤어진 현미래는 얼굴이 화끈거리고 심장이 미친 듯이 뛰어 정

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왜 이러지? 심장아! 그만 좀 빨리 뛰어! 현미래 정신 차려!!’

자신에게 말도 되지 않는 명령을 해가며 정신을 차리기 위해 캠퍼스를 다시 걷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제대로 감사 인사를 하지도 못한 게 기억이 났다.

‘아! 연락처도 모르네.... 연락처라도 알아 둘 걸 바보’

현미래는 자책을 하며 연락처도 물어 보지 못한 걸 후회하고 있었다.

‘다시 가 볼까? 혹시, 아직 그 자리에 있을지 몰라!’

시간이 한 참 지났지만, 그래도 혹시 그 남학생이 아직 그 자리에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을 가지고 현미래은 다시 횡단 보도로 향했다.

후회를 하기는 백광현도 마찬가지였다. 그 여학생이 그렇게 ‘휙’하고 가버릴 줄을 생각도 못하기도 했었지만, 위험한 상황을 겪은 직후인데 좀 더 붙잡았어야 했는데 하면서 자책을 하고 있었다.

‘많이 놀랐을 건데, 좀 더 진정 된 뒤에 보냈어야 했는데..... 혹시 가다가 쓰러졌으면 어떡하지? 연락처라도 알아놨어야 했는데....... 바보!‘

그 자리에 한 참을 서있던 백광현은 다시 캠퍼스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래, 아까 얼굴이 갑자기 많이 빨개졌었는데 혹시 많이 놀라서 가다가 쓰러졌을 지도 몰라!

그럼 나는 아픈 사람을 돌보지 못한 나쁜 사람이 되는 거야! 그래. 이건 절대 그 여학생이 다시 보고 싶어서가 절대 아니야! 사람으로서 당연한 도리야~!’

백광현은 이렇게 자기 정당화를 시키고 있었지만 그 여학생이 이어폰을 끼고 비를 맞으며 캠퍼스를 걷던 모습, 자기에게 어설프게 안겨 빨개진 얼굴을 하던 모습이 머릿속에서 잊혀지지 않았다.

그렇게 현미래와 백광현, 둘은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서 걷기 시작했다.

소설 : 봄비 -제 5화-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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