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첫 만남
회색 구름이 낮게 깔린 2002년 삼일절.
H는 답답한 마음에 바람이라도 쐴 겸 K 대학 캠퍼스를 거닐고 있었다. 끝내 의대를 가라는 아빠의 뜻을 어기고 수학과에 등록을 했기 때문이다. 아빠의 성화에 못 이겨 의대와 수학과에 원서를 다 내긴 했지만 의대를 갈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의대는 떨어지길 바랐었지만 둘 다 붙어버렸다. 아빠의 성화에 의대를 등록하겠다고 해놓고는 수학과에 등록을 한 것이다. 그걸 알고는 아빠가 노발대발 한 거다.
'어차피 내인생인데ㅠㅠ왜그러시는지 몰라? 오빠 둘 의대 보내셨으면 됐지? 몰라! 몰라! 내 인생 내가 살 거야'
자기 앞날을 당신 마음대로 결정지으려고 하는 아빠만 생각하면 골머리가 아팠다. 그런 생각을 하며 캠퍼스를 거닐고 있는데 부슬부슬 비가 내렸다. 우산도 안 가져 나왔지만 그렇게 많은 양의 비가 아니라 무시하고 가방에서 이어폰을 꺼내 핸드폰에 연결하고 귀에 꽂는다.
역시 스트레스를 날려버릴 땐 락이 최고다.
그렇게 캠퍼스를 거닐다 집으로 가기 위해 발걸음을 돌려 우산도 써지 않은 채 K대 앞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신호가 바뀌고 건너려고 막 발을 내디뎠을 때 신호를 미쳐 발견하지 못한 오토바이 한 대가 H를 향해 질주해왔다.
H는 이어폰을 꽂고 음악에 심취해 있어서 오토바이 소리를 듣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이 상황을 지켜보던 한 남학생이 H를 급히 뒤로 당겨주어서 아슬아슬하게 H는 오토바이와의 충돌을 피할 수 있었다.
"괜찮아요? 저런 나쁜 놈!"
그 학생은 놀라서 하얗게 질린 H에게 괜찮냐고 물어봐 주고, 신호위반을 한 오토바이 운전자에게 욕을 했다.
"네~다행히! 덕분에~감사합니다~"
뒤로 당기면서 넘어질 뻔한 H를 그 남학생이 부축해 주고 있었다.
H 눈에 찰나지만 그 남학생이 그렇게 멋지고 잘 생겨 보일 수 없었다. H는 자기도 모르게 얼굴이 빨개졌다.
그 남학생은 바로 B였다. B는 아무것도 모른 체 얼굴이 빨개진 H에게
"어! 얼굴이 빨개졌는데 많이 놀라신 거 아니에요? 병원 안 가보셔도 되겠어요?"
물었다. H는 자신도 모르는 낯선 감정에 놀라며
"괜찮아요! 잠시 놀라서 그런 거 같아요~"
대답하고는 다시 학교 안으로 뛰어 들어가 버렸다.
그것이 H와 B의 첫 만남이었다.
B는 K 대학 수학과에 합격을 하고 근처에 자취방을 구해서 오늘 짐을 옮기고 대학 캠퍼스 구경이나 할까 하고 자취방을 나와 캠퍼스를 거닐고 있었다. 잠시 후 비가 부슬 부슬 내리기 시작했다.
'우산을 안 가져 나왔는데, 참 집에 가봤자 우산도 없지?ㅋ '
짐이라고 해봤자 이불이랑 옷 몇 개 배낭에 넣어서 가지고 온 게 다였기 때문이다. 주말 동안 밥솥이랑 냄비, 그릇, 버너 등 밥해 먹을 장비들을 사야 한다. 그러려고 일찍 자취방으로 온 것도 있었다. 자취방에 다시 들어가기도 애매한 상황이다. 그렇게 캠퍼스를 거닐고 있었는데 자기랑 똑같이 우산을 안 쓴 여학생이 긴 생머리에 이어폰을 꽂고 걸어가는 게 보였다.
뭔가에 홀린 듯이 B는 자기도 모르게 그 여학생 따라 걷고 있었다. 그렇게 횡단보도에 이르러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아무래도 그 여학생의 모습이 불안해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신호가 바뀌고, H는 이어폰을 꽂고 있어서인지 주위 상황을 전혀 모르고, 막 횡단보도를 건너려 했다. 저만치 오토바이가 속력을 줄이지 못하고 오는 모습을 같이 보고 있던 B는 얼른 뛰어가 그 여학생을 뒤로 잡아당겼다.
이것이 B와 H의 첫 만남이었다.
이렇게 운명적인 첫 만남에서 헤어진 두 사람은 똑같이 자책을 하며 후회를 하고 있었다.
'연락처라도 물어볼걸! 바보!'
서로 가던 길을 가다 말고 뒤를 돌아봤지만
둘은 이미 멀어진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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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 봄비 -5화-에 이어집니다.
많이 부족하지만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