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예보
그날 현미래랑 헤어진 후 백광현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현미래가 살짝 어깨에 기댔을 때 났던 샴푸 향이 코끝을 떠 나지 않았다. 그리고 현미래가 했던 말이 머릿속을 계속 맴돌았다.
'벚꽃'
'머리 위'
'사귀자'
'사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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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귀자'
혼자 히죽히죽 웃기도 하고 심장이 혼자 미친 듯이 뛰기도 했다가 얼굴에 열이 나기도 했다가 몸이 제멋대로였다.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백광현의 몸과 생각은 이랬다가 저랬다가 통제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수업 시간이 다 되어 서야 겨우 강의실에 도착했다. 현미래와 지희영, 손영찬 모두 먼저와 있었다. 현미래와 지희영은 앞쪽에, 손영찬 뒤쪽 혼자 앉아있었다. 백광현이 힘없이 손영찬의 옆자리에 가방을 내려놓고 앉자, 손영찬이 백광현을 보고 말했다.
"야~니 몰골이 와 이 모양이고? 눈은 와 또 퀭하고? 밤 샜나? 술빙 났나? 그래, 내 그랄 쭐 알았다. 인마! 현미래 술까지 흑기사 해가면서 받아 묵을 때 알아봤다. 내가 볼 땐 니보다 현미래가 술이 더 쎈거 같더만~"
"그런 거 아니야! 말 시키지 마! "
백광현은 만사가 귀찮아서 책상 앞에 엎드려 누우며 말했다.
"아니긴 머가 아니세요? 딱 봐도 술빙 맞구만! 이 행님이 마이 겪어봐서 안다. 시간이 약이다.
시간이 다~~~해결해 줄 끼다! 수업 시간에 엎디리 자라! 그라마 쫌 나을 끼다~교수님이 물으마 아프다 캐줄게!"
그때 백광현과 손영찬이 얘기하는 소리를 듣고 현미래와 지희영이 뒤돌아 보며 해맑게 손을
흔들었다.
'뭐지? 왜 이리 해맑지? 혹시 기억 못 하는 거 아냐? 술 취해 그냥 해본 소린가? 아이씨! 뭐
야? 술 주정에 혼자 밤새 고민한 거야? 아닌데.... 멀쩡해 보였는데......'
백광현은 같이 손을 흔들며 오만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백광현의 머릿속은 마치 전쟁터처럼 혼란스러웠다. 말 그대로 지금 B의 머릿속에 비하면 6.25 때 난리는 난리도 아니었다.
수업 시간 내내 이런 생각 저런 상상 혼자 온갖 소설을 다 쓰고 있는 백광현이었다.
사실, 현미래도 평소에 일찍 오던 백광현이 오지 않자, 내심 걱정 하고 있었다.
‘어제, 내가 한 말 때문에 잠을 설쳤나? 아님 내 술까지 다 받아 마시더니 술병이 났나? 늦는 애가 아는데 왜 안 오지?’
이런 저런 생각들로 걱정을 하고 있던 찰나에 뒤에서 얘기하는 소리가 들려 보니 백광현이 부스스한 모습으로 책상에 엎드려 손영찬과 얘기하고 있는 모습이 보여서 안심한 현미래였다.
‘풉~ 귀엽네~’
수업이 끝나자 교수님이 나가시면서 백광현과, 손영찬을 보며 한 마디하셨다.
“백광현! 손영찬! 요즘 수업 태도가 안 좋아! ”
비록, 웃으시면서 하시는 말씀 이였지만, 학기 초부터 교수님께 찍힐 판이었다.
“네! 조심하겠습니다.”
손영찬이 넉살 좋게 대답했다. 백광현은 엎드려있다가 깜짝 놀라며 상체를 일으켰다.
현미래가 그 모습을 보고 웃으면서 지나가며 인사를 했다.
"호! 호! 안녕. 얼굴이 안 좋네~잠 못 잤어?"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웃으면서 말했다. 마치 왜 잠을 설쳤는지 다 알고 있다는 것처럼...
"아니, 괜찮아~!"
백광현이 대답하자 현미래가 낮은 목소리로 얘기했다.
"벚꽃! 알지? 약속한 거다! 갈게~참! 너 교수님께 찍힌 거 같다~"
현미래는 마치 백광현의 머릿속을 다 꿰뚫어 보고 있는 듯 말하고는 웃으며 가버렸다.
"벚꽃? 그게 뭐야? 그게 뭔 소리야?"

옆에서 둘의 대화를 듣던 지희영이 궁금해죽겠다는 듯이 현미래에게 치근대며 물었다.
"ㅎㅎ그런 게 있어~~ㅋ"
그렇게 현미래랑 지희영이 가버리자
"야! 머꼬? 머냐고?"
이번엔 손영찬이 의자를 툭툭차며 또 추궁을 해댔다.
"뭐? 몰라! 나도! 머리가 터질 거 같아!"
백광현은 다시 그 자리에 엎드리며 말했다.
"야~~인마 이거 뺑끼 써네~은근슬쩍 구렁이 담 너머가 듯 너머 갈라 카지 말고 이 행님한테 솔직히 불어라! 냄새가 나는데....귀신은 속여도 내는 못 속인다! 둘이 머꼬?"
손영찬은 몸뚱이는 곰 같은 게 눈치 하나는 귀신이었다.
"미래가 사귀제!"
"뭐??????? 가가와?????"
"몰라 나도! 근데 조건이 있어!"
"먼 조건? 하늘에 별이라도 따오라 카더나?"
"장난치지 말고! 벚꽃이 만개하는 날 러브로드를 같이 걷제! 그래서~"
"그래서? 뭐? 빨리 좀 말해 바라 인마!"
손영찬이 답답하다는 듯 끼어들었다.
"그래서 러브로드 끝까지 걸었는데, 둘 다 머리 위에 벚꽃 잎이 얹혀있으면 사귀제!"
"야~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 카더만, 인마 이거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인마 이거 완전 복권 됐네.... 술값은 내가 냈는데..."
말은 그렇게 하고 있었지만 손영찬도 웃고 있었다. 그러고는 백광현을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야~ 인마! 그라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네! 연습하러 가자! 얼른 일나라~~"
"야! 야! 왜이래? 갑자기 자다 봉창두드리는 거도 아니고, 뭔 연습?"
"머긴 뭐야? 벚꽃 머리 위에 얹는 연습이지!"
"야~! 그게 연습한다고 되냐? 운명 같은 거지?"
"인마 이거 또 배부른 소리 하네~ 운명도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모르나? 무식하기는...가자~"
"어? 하늘도 아니야?"
"그게 그거지 인마! 다 하늘이 운명도 점지해 주는 기라~ 고마 말하고 가자~ 근데 벚꽃 언제
피지?"
손영찬은 신이 난 듯 백광현을 끌고 가면서 말했다.
그날 이후 백광현과 손영찬의 유일한 관심사는 벚꽃이 언제 피는지?
벚꽃이 떨어질 때 어떻게 하면 머리에 잘 얹힐 수 있는지? 였다.
아침에 눈을 떠 면 벚꽃이 폈는지부터 확인했다. 시기상 필 때가 안 된 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마음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야~~야~~~머리를 맨드리하게 요래하지 말고 헝클어 바라! 인마! 벚꽃이 못 빠져나가게~ 맨드리 하마 얹혔다가도 미끄러지게따!"
손영찬이 그러면서 백광현을 잡아 당겨 머릴 헝클었다.
"야 그런 게 어딨어? 하지마! "
백광현은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라며 머리를 피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몇 주가 지나 드디어 벚꽃이 피기 시작했다.
백광현은 손영찬의 코치대로 벚꽃 아래에서 최대한 자연스럽게 벚꽃을 머리로 받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야~요즘 쟤들 맨날 저기서 뭐 하냐?"
이 모습을 지나가다 보고 지희영이 현미래에게 물었다.
"몰라~나도!"
현미래는 뭔가 알겠다는 듯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ㅋ 귀여운 줄은 알았지만, 생각보다 더 귀여운 구석이 있네~ 풋~'
현미래의 눈에는 백광현이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다 귀엽게 보였다.
그러기를 며칠, 벚꽃은 정말 급속도로 폈고 드디어 만개하기 시작했다.
백광현에게는 매일이 설렘과 긴장의 연속이었다.
‘문자왔숑~문자왔숑~~’
아침부터 백광현의 핸드폰이 울렸다. 현미래였다.
‘오늘은 나 부모님과 약속이 있어서 학교 못 가! 저녁까지 연락 안 될 거야. 미안~ 연습 많이 했지? ㅎ 내일 오전 10시 러브로드 시작 지점에서 봐~♡‘
부모님과 약속이 있어서 오늘 못 본다는 문자였다. 오늘 못 보는 건 아쉬웠지만 평소 보내지 않던 하트 표시를 보자 심장 박동 수가 또 올라가는 백광현이었다. 그래서 백광현도
‘알았어~그때 봐~♡’
라고 하트를 붙여 답장을 보냈다.
‘어! 근데 연습한 건 어떻게 알았지? 영찬이가 얘기했나? 짜식! 비빌로 하기로 해놓곤.....’
백광현은 바로 손영찬에게 전화를 했다.
"야~문디. 너는 잠도 없나 인마! 먼 일이고? 전쟁이라도 났나?"
손영찬은 자다 전화를 받았는지 짜증부터냈다.
"야~ D-day 정해졌어! 드디어 내일이다. 내일 미래랑 보기로 했어~참! 너 그리고 우리 연습하는 거 미래한테 얘기했냐?"
"아니! 내가 그걸 머할라꼬 말하노? 인마! 그리고. 머라꼬? 내일 보기로했다고? 전쟁보다 더 큰일이네~ 쪼매마 기다리라 오늘 최종 리허설 한번 해야지~금방 가꾸마!"
잠시 후 도착한 손영찬이 큰 목소리로 난리를 치며 방문을 열었다.
"야! 클났다! 인마! 우짜노?!"
"왜 그래? 뭔 일인데?"
"버스 타고 오다 들었는데 오늘 밤에 비 온단다 억수로 많이, 바람도 억수로 쎄게 분단다ㅠㅠ"
‘헉! 비바람이 불면 만개한 벚꽃이 다 떨어져 버릴 건데........’
백광현은 머리가 하얘졌다.
"빨리 전화해서 오늘 보자 해라"
"그래........."
말을 하다 말고 백광현은 굳어버렸다.
"와? 인마! 와 카노? 떨리서 카나?"
"그게 아니라 오늘 부모님이랑 약속 있어서 학교도 못 온다 했어. 저녁까지 연락도 안 된다고 했는데........."
창문을 열어 하늘을 보니 먹구름이 잔뜩 끼여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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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 봄비 -제8화-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