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봄비 09화

-제9화-

첫진료

by 백운


‘드르르륵 드르르륵.....’

사고 이후 얼마나 깊게 잠이 들었든지 항상 아침 일찍 눈을 뜨는 백광현이었지만 그날은 문자 진동소리를 듣고 나서야 일어났다.











현미래 의사 선생님께서 월요일로 진료 예약을 잡아서 문자를 준다고 하시더니 그 문자가 온

모양이다.

'도대체 몇 시나 된 거야? 그리고 왜 집이 조용하지?'

뜨지지 않는 눈을 억지로 비벼 폰 액정을 보니 9시 20분이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시간이 많이 지난 걸 알고 백광현은 일어나려고 몸을 일으키다가 온몸이 뻐근함을 느꼈다.

'어이쿠야! 살짝 부딪친 거 같은데 장난 아니네? 그래서 교통사고는 후유증이 무섭다고 하는구나!‘

그래도 억지로 일어나려고 하니 마치 녹슨 기계가 움직이는 거처럼 여기저기서 삐거덕, 삐거덕 소리가 났다.

겨우 겨우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와 보니 아무도 안 보였다.

'그래. 9시 20분이면 벌써 다 교회 갔겠군!'

아니나 다를까 식탁엔 밥상이 차려져있고 노오란 포스트잇이 붙어있었다.

‘우리 교회 가니까 일어나면 밥 먹고 싱크대에 넣어둬! 설거지는 하지 말고 그냥 두고 푹 쉬

고 있어~’

윤예지였다. 잠귀가 밝은 백광현이라 웬만하면 윤예지랑 애들이 씻고 준비하는 동안 깨지 않

았을 리가 없는데 사고 충격이 있긴 있었나 보다. 혼자 식탁에 앉아서 밥을 먹으면서 어제 일을 되짚어 보았다.




'사고가 났고 잠시 기억을 잃었었고.... 그리고 경윤 대학병원 응급실, 그리고 현미래? 누굴

까? 나를 잘 아는 거 같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에 없단 말이야ㅠㅠ 사고로 기억이 안 나려면 다 안 나야 할 건데, 어떻게 현미래라는 이름만 기억에 없을 수 있지?'

그때 떠오르는 이름이 하나 있었다. 바로 손영찬이었다.

'같은 과, 같은 학번이라면 영찬이가 모를 리 없지?'

그래서 급히 폰을 뒤져 손영찬의 카톡을 열어보니 카톡 상태 메시지에

‘2월 17일부터 3월 2일까지 유럽 여행 중! 연락 x’

라고 되어있었다.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 더니, 하필이면 이때에~~역시 돈 많은 백수는 다르네~?'

백광현은 하필이면 이때 연락이 안 된다고 카톡에 올려놓은 손영찬이 야속했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대학 때 동기는 따로 더 연락하고 지내는 사람도 없어서 궁금증은 접기로 하고 손영찬에게 카톡이나 한통 보내 놓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모르니 카톡이나 한 통 보내 놓자'

"재밌냐? 카톡 보면 연락해~"

이렇게 카톡을 남겨 놓고 아침을 다 먹은 후 설거지까지 해 놓고 백광현은 다시 잠이 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잘 다녀와~ "

"안녕히 다녀오겠습니다~"

누워있는 백광현의 귀에 아이들의 등교하는 소리가 들렸다.

'앗!!! 시간이 얼마나 지난 거지?'

폰을 들어 시계를 보니 아침 8시가 지나고 있었다.

'헉! 도대체 몇 시간을 잔 거야?'

백광현은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나려고 하는데 온몸이 몽둥이로 두드려 맞은 것처럼 아팠다.

'어이쿠!! 어제보다 더 심해졌구나ㅜㅜ'

그래도 다행히 못 움직일 정도는 아니었다.

백광현이 문을 열고 나오니 윤예지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어본다.

"괜찮아? 자면서 잠꼬대도 심하게 하고 ㅜㅜ 너무 피곤해 보여서 깨우지도 못 했는데 ㅜㅜ 안색이 영 안 좋네 ㅠㅠ 배는 안 고파?"

생각해 보니 어제 아침 먹고 거의 22시간이 지난 후였다.

"어~어제 보다..... 아! 어젠 못 봤구나! 그때보다 더 안 좋네! 몽둥이찜질 당한 거 같네 ㅜㅜ 혹시 잘 때 나 밟았어? 아니면 때렸나?"

"어이그! 걱정할 정도는 아닌 거 같네. 실없는 소리 늘어놓는 걸 보니. 아직은 살만한 모양이

야! 교통사고는 후유증이 심하다고 다들 자기 걱정하던데....병원은? 문자 왔어?"




“다들? 다들 누구? 나 교통사고 난 거 아는 사람이 있나? 우리말고?”

“어제 교회 갔는데 자기가 안보이니 다들 물어봐서 내가 얘기해줬지! 그리고 병원에서는 연락 왔냐고?”

"아~ 그랬군....어~~참! 오늘 오전 9시 50분 오래! 얼른 밥 먹고 씻고 가야겠다."

"8시 50분? 왜 이리 빨라? 난 오전이라 해서 한 9시 30분이나 10시나 될 줄 알고 지금 큰애

학년 상담 기간이라 얼른 상담 다녀오려고 큰애 담임 선생님이랑 상담 약속 8시 40분으로 잡아뒀는데.... 선생님께서 겨우 겨우 맞춰주셨는데....... 어쩌지?"

"괜찮아~~괜찮아~~~혼자 택시 타고 잠시 다녀오면 돼! 신경 써지마~!"

"그래도..... 진짜 혼자 괜찮겠어?"

아무래도 아픈 B를 혼자 보내는 것도, 그 현미래라는 의사선생님도 맘에 걸리는 윤예지였다.

"아임 오케이! 노 프라블럼!"

하지만 겨우 맞춰주신 큰애 담임선생님과의 약속을 미룰 순 없는 노릇이었다.

"그럼 마치고 전화할게~~"

"오케이~~"

"참! 밖에 비와 우산 챙기고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히 다녀~ 차 조심, 오토바이 조심하고"

"오케이 오케이! 걱정마! 내가 애야?"

“어이구...말이나 못하면....주위 잘 살피고....”

그렇게 아침을 먹고 윤예지가 먼저 출발하고 백광현도 씻고 대충 준비해서 택시를 호출하고

나갔다. 세상 좋아졌다. 앱으로 택시를 부르면 2~3분 이내면 온다. 카드 등록해 놓으면 계산

도 자동으로 된다.

준비를 마치고 내려가 보니 벌써 택시가 기다리고 있었다. 폰에 찍힌 차 번호를 확인하고 택시에 올랐다. 뒷좌석에 앉아 창문 밖을 보는데 비 오는 거리 풍경이, 비에 젖은 산이 예뻤다.





근데 그때

'택시 안~~먹구름, 비바람.......... 비에 젖은 산....... 이 광경이 낯설 지가 않다'

갑자기 백광현은 머리가 쪼개질 듯이 아파졌다.

'왜 이러지? 교통사고 후유증인가?'

다행히 두통은 오래가지 않아 없어졌다. 진료시간에 겨우 맞추어 진료실로 들어가니 현미래가 밝고 화사한 얼굴로 맞아 주었다.








"좀 어떠셨어요? 몸은 좀 괜찮으세요? 보호자는 같이 안 오셨어요?"

여러 질문을 한꺼번에 쏟아붓는 현미래였다.

"네~ 아내는 약속이 있어서 혼자 왔고, 몸은 그땐 괜찮았었는데 오늘은 몽둥이로 두드려 맞은 것처럼 아프네요ㅠㅠ"

"오토바이랑 부딪치고 넘어지면서 바닥에 머리를 박아서 지금 경추, 요추가 많이 경직되어 있는 상태라서 그럴 거에요. 근육들도 많이 놀라있을 거고요. 뇌진탕이라 두통도 있을 겁니다. 가끔씩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플 수도 있어요~"

현미래는 백광현의 몸속에 들어갔다 나온 거처럼 정확히 알고 있었다.

"어? 어떻게 아셨어요? 아침에 택시 타고 오면서 잠시 머리가 쪼개질 듯 아팠어요! 괜찮아지겠죠?"

"뇌진탕이라 뇌가 잠시 흔들렸다 다시 제자리를 잡는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나타날 수는 있어요. 증상이 지속되면 정밀 검사를 받아봐야 하고요."

"아~~네! 감사합니다"

"CT 판독 결과는 다행히 정상입니다. 근데 말씀 드렸듯이 교통사고는 증상이 뒤늦게 나타나는 경우가 많아서 일주일이 지났는데 두통이 지속적으로 생기거나, 다른 증상들이 이어진다면 MRI를 찍어서 정밀 검사를 해봐야 합니다."

"네~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늘부터 입원하셔서 안정을 취하시면서 물리치료도 받고 경과를 지켜보시죠?"

"네에? 입원요?"

갑작스러운 입원이라는 말에 백광현은 깜짝 놀랐다.

"네에! 지금 이 상태로 일하시는 건 무리입니다. 사고 당시는 괜찮았는데 지금은 몽둥이로 두드려 맞은 것처럼 아프다면서요? 최소 일주일 정도는 입원하시면서 치료도 받고 경과도 지켜보는 게 좋습니다."

"아무 준비도 안 하고 왔는데...... 일도 해야 하고요.........."

"아내 분한테 오실 때 챙겨오시라고 하면 되고요~일주일 정도 일 쉰다고 큰일 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시죠? 환! 자! 분!"

현미래가 너무나 단호하게 말씀하시는 통에 백광현은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네에........."

"자! 오늘 첫 진료는 여기까지고요. 내가 일찍 부른 이유가 있겠죠? 아직도 내가 기억나지 않

으세요? 둘밖에 없으니 솔직히 말해보시죠?"

"네에? 네에........ 전 정말 기억이............. 아무리 생각해도.........."

"나야 나! 현미래! 잘 봐! 나 현미래라고?"

현미래는 답답하다는 듯이 울먹이며 얘기했다.

"어떻게 날 기억 못 할 수 있지? 그날 이었던 일 때문에 기억을 못 하게 된 거야? 설마?"

"아무리 생각해도 지희영, 손영찬, 수학천재 박만수..... 다른 애들은 기억이 나는데 현미래라는 이름은 기억이.......? 그리고 그날 일이라뇨?"

"지희영이랑 손영찬, 박만수까지 기억하면서 나를 기억 못한다고? ㅠㅠ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아님, 무슨 일이 또 있었던 거야? 그 동안 ㅠㅠ"

현미래의 눈에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때

"똑! 똑! 교수님~ 백광현 환자분 보호자분 오셨는데 들어오시라 할까요?"

간호사 선생님이 진료실 문을 두드리며 열었다.

"네~~들어오시라 하세요~~"

다행히 현매래의 얼굴은 모니터에 가려져 있어 눈물 흔적은 백광현 외에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소설 : 봄비 -10화-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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