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간 모자란 게,,,'
아파트 1층에 배부된 마라톤 교통통제표 하단에 구간별 도착 예정 시간이 있었다. 무슨 엉뚱한 생각을 하면서 봤는지 10km 후미 출발을 9시 30분으로 읽었다. 어젯밤에 3만 명이 참가한다는 말을 듣고 그 생각을 굳혔다.
'바보 같은 소리냐...'
아침에 하루 산책을 시키고 8시에 어슬렁거리면서 자전거를 끌고 스타디움으로 갔다. 떠들썩한 소리가 들렸다. 스타디움 앞쪽에 도착해 보니 풀코스, 20km는 출발했고 10km 참가자들이 열을 지어 대기하고 있었다. 급하게 자전거를 적당한 곳에 세우고 지하도로 내려갔다. 잠바와 가방을 맡겨야 되는데 스타디움 안까지 들어가면 늦을 것 같았다. 조금 망설이다가 화장실 근처 기둥에 묶어놓았다.
'설마 가져가겠냐.. 가져 가도 할 수 없다... 당근에서 산 2만 원짜리 봄잠바...'
서둘러 화장실을 다녀오고 출발선으로 뛰어가서 5km 참가자들과 함께 시작했다. 출발선에서 시지고등학교까지는 내리막이었다. 내리막을 더 조심해야 한다. 천천히 뛰었다. 그리고 5km 그룹은 걷는 사람이 많다. 그 사이를 헤치면서 조심스럽게 뛰어야 했다. 시지고등학교에서 유턴을 하고 오르막을 올려보니 빨간 티셔츠 물결이 장엄했다. 차도를 꽉 채운 2만 8천 명의 열기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유모차를 밀면서 뛰는 젊은 아빠가 있었다. 아이는 아빠의 붉은 티셔츠와 깔맞춤을 한 빨간 아디다스 3선 잠바를 입고 있었다. 젊은 아빠의 대퇴사두근은 햇살아래 펄떡거렸다. 내 근육은 그를 흉내 내었다. 오르막에서 나와 페이스가 비슷한 중년을 만났다. 나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그의 뒤를 따랐다. 페이스가 비슷한 사람과 뛰면 저절로 다리가 움직여진다. 그가 나를 끌어주었다. 잠시 뒤 나는 그의 앞으로 나갔다. 앞지르는 것이 아니었다. 이제 내가 그를 끌어줄 차례였다. 내 앞에서 많은 사람들이 나를 끌어주고 있었다. 동시에 나도 내 뒤에 오는 사람들을 끌어주었다.
길 가장자리에서 우리를 응원해 주는 사람들이 소리치고 있었다.
"파이팅!, 파이팅!"
사냥할 호랑이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이 길 끝에 돈이 있는 것도 아니다. 모두 자발적으로 참가해 뜀박질을 한다. 이 놀이에 모인 2만 8천 명과 함께 나는 다른 세상으로 건너갔다.
잠바와 손가방은 그대로 있었다. 우리나라는 좋은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