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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별 May 22. 2024

# 은행나무 바람

책방 앞에서 동쪽으로 고개를 살짝 돌리면 은행나무들이 나란히 줄 지어 있다. 나는 은행나무가 좋다. 왜냐고 나에게 물어봤는데 답을 찾을 수 없었다.


5월 중순 어느 날 책방으로 갔다. 날이 좋아서 책방 앞 데크에 놓친 의자에 앉았다. 은행나무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시원한 바람이 나뭇잎을 훑으며 지나갔다. 바람이 일어나면 나뭇잎들이 일렁거렸다.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뭇잎들은 아마 '아, 시원하다... 매일 오늘 같으면 좋겠다, 아까 그 아기 봤어? 너무 이쁘지?' 이런 말들을 하는 것 같았다. 1시간 동안 나무를 봤다. 보고 또 보아도 좋았다. 남편이었으면 무덤덤했을 것이고 친구라면 이야기를 나누었을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즐거웠다. 공기도 공짜, 바람도 공짜, 나무도 공짜였다.


은행나무는 가을이면 노랗게 물든다. 책방 앞 은행나무 길을 지나 욱수초등학교에서 신매 초등학교 사이의 4차선 도로는 황금 은행잎으로 물든다. 황금잎은 원숙한 여인 같고 5월 초록잎들은 열두어 살 된 아이 같다.


나무는 매일 매일 즐거울까? 나처럼 힘이 드는 날도 있을까? 옆에 있는 히말라야시다에게 송진가루 날린다고 투덜거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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