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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ni May 13. 2019

여성 혐오 여성관의 시대적 변화
[1. 니체]

1부. 19세기 시대정신과 니체의 비시대 정신


니체, 데리다, 프로이트, 마르크스, 푸코, 융..



  철학을 공부하는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지만, 누구도 제대로 이해하기 힘든 철학자들이다.

  필자는 니체와 데리다의 원전을 중심으로 ‘여성 혐오 여성관’의 시대적 변화를 분석하고 그 흐름이 근대 철학자들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대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또한, 어떠한 시대정신에 근간을 두고 해당 여성관이 등장하게 되었는지, 이를 초월하여 당대가 아닌 다른 시대에서는 어떻게 해석될 수 있는지를 알아보고자 한다.

  일반적으로 여성관·여성주의를 이야기할 때 니체는 여성 혐오주의자, 데리다는 이러한 니체의 문체를 재해석한 여성주의자로 간주된다. 왜 그들은 이러한 평가를 받으며 이는 제대로 된 평가일까?

  또한 더 나아가서 철학자들의 주장이 해당 시대정신을 옹호 혹은 반대하는 경우, 자신의 논지 설파와 정치적 선전 혹은 설득의 의도에서 집필한 것인지도 함께 염두에 두면서 글을 읽기를 권한다.



한 철학자의 여성관(혹은 가치관)은
당대의 시대상황과 개인적인 배경사 중
어디에 더 크게 영향을 받을까?



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 ~ 1900)

  

19세기 시대정신:

근대의 성차별과 여성의 낮은 지위

  

  20세기 중반에 와서야 사회 각 분야에서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활동을 하기 시작하였다. 20세기 중반 이전까지는 자신의 능력과 관계없이 대부분의 여성들은 사회의 어두운 구석에 소외되어 머물 수밖에 없었다.



19세기 상황: 가족적 책무가 강조되는 여성, 외부 사회활동 하는 남성



빅토리아 시대,

고질적인 성 고정관념과 여성 편견의 시작


  빅토리아 시대는 영국 빅토리아 여왕이 통치하던 19세기(1837~1901)를 말한다. 이 시기, 영국은 공업국으로 세력을 확장하고 선진 근대국가로서의 제도적 발판을 확실히 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인간을 바라보는 틀은 결혼과 가족이었다.

  푸코는 『성의 역사』 에서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에 걸쳐, 심지어 현대까지도 서구 사회에는 아직도 영국 빅토리아 왕조의 관습이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한다.

  빅토리아 왕조에서 여성들은 자신의 본래의 성을 상실하였으며, 경제적 권리나 법적 권력의 행사 없이 오직 남자의 장식물이자 가정의 천사였을 뿐이었다. 여성 억압의 도구로 사용된 이러한 조장된 이미지 때문에 여성들은 현실에서 어떤 차별에도 불만을 표시하거나 저항할 수 없었고 남성들의 거의 모든 행동은 전적으로 용인되었다. 남자의 바람기는 눈감아주거나 심지어 장려하는 왜곡된 성문화를 가지고 있으면서 여성에게는 금기와 죄악으로 여겼다. 헌신적이지 못한 여성은 철저하게 배척당했으며 급기야 강간에 의해 더럽혀진 여자 역시 자신의 잘못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버림받았다.


  

(좌) 19세기의 매매춘 성문화: 사회·경제 우선 논리에 희생된 여성들

(중간, 우) 빅토리아 시대 옷을 입고 있는 여인들

[중간: 크리놀린 / 우: 코르셋]


빅토리아 시대 화가 리차드 레드그레이브 (Richard Redgrave / 1804~1888) 作

(좌) 추방, The Outcast/ 1851

(우) 하녀가 되러 갑니다, Going into Service/ 1843

         


니체는 정말 여성 혐오주의자인가?
오명인가?



  니체의 저서들 속 어록들은 그가 여성 혐오주의자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쇼펜하우어와 함께 악명 높은 여성 혐오 철학자로 분류되면서 동시에 반은 그렇지만 반은 틀리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많다.

  예컨대, "여자를 만나러 갈 때는 몽둥이를 잊지 마라."라는 니체의 유명한 말은 명백한 여성 혐오 같지만, 그의 개인사를 고려했을 때 이는 성차별에서 비롯되는 단순한 혐오가 아니라 자신에 대한 강박적인 의무감과 혐오, 더 나아가 성 역할에 대한 거부의 발현이라 볼 수 있다. 그의 개인사와 어록들을 통해 그를 여성 혐오주의자라고 볼 수 있을지 아닐지 고민해보자.



니체의 개인사와 여성들

  

  5살 때 아버지와의 사별 이후, 니체는 일생동안 여자들(할머니, 두 고모, 젊은 엄마, 누이동생 엘리자베스)과 함께 자랐고 이러한 발달 환경 속에서 선천적으로 건강하지 않은 신체와 함께 니체는 예민하고 소심하고 여성적이며 날카로운 감수성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니체는 남성적인 철학과 초인의 강인함을 추구하게 되면서도, 실제로는 여성들에게 의탁하여 사기가 저하된 상태로 지냈다.



(좌) 1861년    |    (중) 연도 미상    |    (우) 1869년

  


  니체는 일생 5명의 여자(헤드비히 라베, 코지마 바그너, 말비다 폰 마이젠부크, 마틸데 트람페다하, 루 살로메)를 사랑했다. 하지만 그의 소심한 성격 탓에 대부분 짝사랑으로 지나갔다. 특히, 루 살로메에게 청혼을 거절당하면서 미움과 사랑이라는 극심한 감정과 광기에 빠지게 되었다.

  결국, "신은 죽었다!"라고 말한 니체를 서서히 죽인 건 신이 아니라 여자, 특히 루 살로메였던 것이다. 루 살로메로부터의 버림이 니체로 하여금 평생을 방랑과 절대 고독 속에서 전전하게 만든 것이다.

  출처 참고: 니체와 여자들 / 니체와 릴케가 사랑한 여자(루 살로메의 마력)



(좌) 코지마 바그너    |   (우) 루 살로메
(좌) 니체와 그의 어머니   |    (우) 왼쪽 루 살로메와 오른쪽 니체



당대의 여성해방 논조에 대하여

  

   니체는 그의 저서에서 당시의 시대상 중 하나인 여성 해방론에 기반하여 본인의 생각을 표출했다. 그는 여성 해방론자들이 주장하는 참정권과 고등 교육 등은 피상적인 목표일 뿐, 실상은 그것이 여성들이 바라는 요구가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이는 단지 아이를 생산해야 하는 여성들에게 부재한 ‘남성’이라는 수단에 대한 분노를 표출한 것이었으며, 오히려 이러한 시대적 상황이 여성들로 하여금 득이 되기보다는 실을 만든다.

  여성 해방론자들에 따르면, 남성들로부터 해방된 자신들만이 이성적이고 진정한 여성인데, 이는 동시에 남성들과 함께하는 동시대의 다른 여성들을 부정하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또한 ‘아기’와 ‘임신’이라는 여성의 의무와 역할 속에서 존재하는 한, 남성으로부터 해방은 자유가 아닌 혼돈과 무정부 상태를 야기할 수 있다.

  따라서 니체는 그의 저서를 통해 만연하던 당시의 시대 상황을 분석함으로써 그것이 의도와 다를 수 있다는 논지를 다른 시각에서 펼쳤다.  


여성은 진리를 바라지는 않는다

여성에게 진리가 무슨 중요한 일이란 말인가! 여성에게는 처음부터 진리보다 낯설고 불쾌하고 적대적인 것은 없다.ㅡ여성의 큰 기교는 거짓말이요 그 최고의 관심사는 가상이며 아름다움이다. 우리 남성들은 고백하도록 하자 : 우리는 여성의 바로 이러한 기교와 이러한 본능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것이다 […] 우리 남성들은 여성이 계몽에 의해 스스로 웃음거리가 되는 일이 계속되지 않기를 바란다. 교회가 '여성은 교회 안에서 침묵해야만 한다!'라고 선언했을 때, 이는 남성이 여성을 배려하고 아끼는 마음이었다. 나폴레옹이 너무 말이 많은 드 스탈 부인에게 "여성은 정치에 대해서는 침묵해야만 한다!"라고 시사했을 때, 이는 여성의 이익을 위해 일어난 일이었다.ㅡ그리고 오늘날 "여성은 여성에 대해 침묵해야만 한다!"라고 여성에게 소리치는 사람이야말로 진정 여성의 친구라고 나는 생각한다.

- 『선악의 저편』 중에서


여성 해방에 대하여

여자들이 사랑하는 데, 그리고 찬성하거나 반대하거나 똑같이 느끼는 데 그렇게 익숙하다면, 그들은 도대체 고정할 수 있을까? 따라서 그들은 또한 어떤 사태에는 드물게 홀딱 빠지지 않지만, 사람에게는 자주 홀딱 빠진다. 그들이 사태에 홀딱 빠질 경우, 그들은 곧바로 이것들의 당파적 추종자가 되고 그로서 이것들의 순수하고 무구한 작용을 망쳐버린다.

-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중에서





니체의 비시대 정신     


  니체는 19세기를 지나 20세기 ~ 21세기 오늘날의 지성사에서도 여전히 적시성과 중요성을 가지며 철학적 담론의 중심에 있다. 더욱이, 니체의 사상은 철학에만 국한되지 않고, 문학, 음악, 미술, 무용, 건축, 정치학, 사회학, 신학, 심리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정신사와 문화사 전 영역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친다.

  실제로, 『선악의 저편』이 집필된 1886년 당시 니체는 해당 서적이 ‘2000년 경’에야 읽힐 수 있다고 말했다. ‘미래 철학의 서곡’이라는 책의 부제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니체는 인류의 미래 정신사를 그려보고 제안하려는 의도에서 이 책을 저술하였다고 생각된다. 『선악의 저편』은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선행으로서 생명, 건강, 고귀한 덕, 자유, 몸, 지혜, 대지, 위버멘쉬, 디오니소스, 영원회귀 사상 등과 미래 철학에 대한 새로운 대안을 알려주고 있다.



  니체는 왜 본인의 책이
100년도 더 지난 후에야
제대로 읽힐 수 있다고 생각하였을까?



  혹자는 말한다. 니체는 헤겔의 시대정신의 반대편에서 비시대 정신을 이끌었고, 자라투스트라라는 인물을 통해 서구 사회가 종교에서 분리되는 데에 마지막 정점을 찍었다. 종교를 가진 사람의 입장에서는 불온서적일 수도 있지만, 인류의 인식 범위를 발전시키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한 책과 철학자다.

  니체의 저서에는 과거와 현재, 미래를 구성하는 다양한 개념이 많이 언급된다. 특히 니체의 ‘비시대성’은 헤겔의 ‘시대정신’과 대조를 이루고 있는데, 『법철학』에서 “모든 사상가는 자기 시대의 아들”이라고 말한 헤겔을 반박이라도 하듯이 니체는 『교육자로서의 쇼펜하우어』에서 “참된 철학자는 가장 깊은 의미에서 비시대적이다”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한 작품이 시대를 넘어서지 못하고 그 시대의 ‘습한 공기’를 담고 있는 한 그것은 결코 위대한 작품이 될 수 없다”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어떤 작품을 그것이 만들어진 시대와 똑같이 파악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그러나 그렇게 파악하지 않을 때가 기쁨도 많고 놀라움도 많다. 또한 그것으로부터 배우는 것도 많다. 어떠한 새롭고 좋은 작품이라도 그 시대이 습한 공기와 접촉하는 한 최소의 가치밖에 갖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는가. 더욱이 그것이 “우리” 시대의 공기와 접촉하는 한 시장, 적, 최신 의견 등의 냄새, 그리고 내일도 모르는 모든 무상한 것들을 지닐 수밖에 없음을 모르는가. 나중에 작품이 건조해져 시대성이 사멸할 때, 비로소 깊은 빛남과 좋은 향기를 얻게 된다. 그것이 자기 때를 발견할 때 중요한 영원의 눈도 얻게 된다.

- 『서광』 중에서


  위대함은 시대성이 아니라 비시대성에서 나온다. 니체는 위대한 전기(傳記)는 시대에 순응하는 자의 것이 아니라 시대를 거스르는 자의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대들이 전기를 구한다면, ‘모씨와 그의 시대’라는 통상적인 제목이 붙은 전기가 아니라, 속표지에 ‘그의 시대를 거스르는 투사’라고 쓰일 수밖에 없는 전기를 구하라

- 『삶에 대한 역사의 공과』 중에서



'2부: 니체의 저서에 나타난 여성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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