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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선 Feb 17. 2024

이별

30대 중반이 넘고 나서부터 주변 여자 지인들이 내게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요즘 남자들이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나이 들면서 너무 따지는 게 보인다고. 그 말을 처음에는 '아, 그래?' 하고 농담으로 넘겼는데, 여러 사람들이 같은 말을 하는 것을 보고 생각을 해보게 됐다. 여자들이 느끼기에 나이가 들면서 남자들의 행동에 변화가 있다는 것인데... 처음에는 시대의 변화일까,라는 생각을 했다. 팍팍해진 세상이니 남자들이 더 계산적으로 된 것일까. 물론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내 주변의 사람들이 공감한다는 것은 그 비슷한 연배에게 일어나는 무엇인가가 분명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따진다라... 다른 말로 하면 신중해졌다, 잰다,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예전 어릴 때의 고백을 생각해 보면 지금과는 확연히 차이가 나긴 한다. 먼저 중고등학교 때 좋아하던 친구를 생각해 보자. 정말 짝사랑과 상사병이라는 말이 와닿았던 시기였다. 이때의 짝사랑은 내가 좋아하는 상대가 나라는 존재를 전혀 모르고 있는 정말 일방적 짝사랑이었다. 짝사랑이 원래 일방적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때는 그냥 그 아이 존재 자체가 좋았다. 웃는 모습, 친구들과 노는 모습, 공부하는 모습 등이 좋았고 그 이미지가 마음에 박혔다. 그 친구와 대화 한 번 해본 것도 아니고, 나에게 어떠한 시그널을 준 것도 아닌데도 좋아하는 마음을 키웠다.

결국 이러한 짝사랑은 이불킥하는 사건을 만든다. 나라는 존재도 몰랐던 그녀에게 좋아한다고 고백을 해버리는 것이다. 마치 연예인에게 고백하듯이 말이다. 바로 내가 그랬다. 남중, 남고를 나왔기에 여자를 보고, 대화할 수 있는 공간은 학원이 전부였다. 문제는 나와 전혀 다른 반 친구가 눈에 들어온다는 것이다. 친구들을 통해 이름만 어찌어찌해서 겨우 알 게 되고, 몇 개월간 스스로 마음의 준비를 하고 고백을 시행한다. 당연히 결과는 차갑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는 사이도 아니고, 외모가 OK할 만큼 뛰어난 것도 아닌데, 어느 누가 갑작스러운 고백을 받아줄까 싶다. 하지만 그때는 했다. 책상에서 많은 고민을 하고 그렇게 행동으로 옮긴 것이다.


대학교에 올라가면 조금은 달라진다. 나라는 존재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고백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내가 누군지는 아는 사람이 좋다. 대화도 해보고 같이 생활도 해보고 마음을 알아간다. 같은 학과 동기일 수도 있고, 교양 수업 때 선후배일 수도 있다. 조모임, 동아리, MT 활동 등을 통해 서로를 알아간다. 그리고 '아이스크림 먹으러 갈래?'를 시전 해보고 모르는 척 따라 나오는 친구에게 마음이 간다. 소개팅을 해도 3번은 만나보게 된다. 막무가내 고백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주 만나게 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좋다. 한 가지 간과하는 것은 정말 '사람 친구'로서 좋아서 그렇게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때는 남사친, 여사친이 가능할 것만 같은 시기다. 동기라는 이름으로 남녀가 포차에서 늦은 시간까지 소주를 마시기도 한다.

사회에 나오면 어떨까. 누군가 마음이 없다면 우정으로 남녀가 만나는 일이 없다. 같이 술을 마시는 경우는 더더욱이 없다. 이제는 나이가 있으니 '아이스크림' 대신 '커피'나 '식사'를 제안하게 되고, 쉽사리 놀이공원에 놀러 가자는 말도 못 한다. 전시회, 영화관람 등을 같이 간다는 것은 서로 간에 어떠한 시그널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대학생 때는 그렇게 같이 놀러 다니기도 했다. 그렇게 놀고 나서 친구니까,라는 말을 주변에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직장을 다니고 30대가 넘어가면 이러한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새롭게 알 게 된 사람들은 물론, 예전에 알았던 친구라도 그렇게 불러서 놀 수가 없다. 그룹 모임이 아니라면 단둘이 이성이 만나는 일은 어렵다고 봐야 한다.  

고백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상대가 나를 좋아한다는 확신이 있어야 고백한다. 한 번도 말을 못 걸어본 친구에게, 아이스크림 먹으러 같이 나갈 수 있는 동기에게 고백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좋아한다고 확신이 드는 사람에게 고백한다. 두루뭉술하게 좋아하는 거 같을 때가 아니다. 소개팅 3번을 만나보고 서로에게 마음이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혹은 그것도 모르겠다면 주선자를 통해서 상대의 마음을 확인하기도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고백이 나가지 않는다.  


왜 그런 것일까? 서론이 너무 길었는데 지극히 남자적 관점, 아니 내 경험에서 말해보겠다. 나이가 들어보니 주변 여자 지인들이 내게 말했던 것처럼 결국 따지고 재고 신중해지기 때문이 맞는 것 같다. 그래서 고백이 쉽지 않다. 수많은 연애를 하고 헤어지면서 사랑에 대한 어려움을 느끼게 되고 그 사람과 헤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쉽사리 결정을 못 하는 것이다. 너무 낭만적인 시각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조건을 보기 때문에 그런 거면서 솔직하지 못한 거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그 조건의 영역이 꼭 경제적, 외향적인 것만을 말하지 않는다면 그 반문이 맞다. 조건을 본다는 것이다.

나와 같은 경우는 이별의 아픔이 너무 싫어서 주저한다. 사랑보다 어려운 게 이별이라는 것을 나이가 들면서 느낀다. 행복해지지 않는 것과 불행해지지 않는 것 중 선택하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후자를 선택한다. 사람은 보통 보수적인 태도를 취하기 때문이다. 도박적인 선택으로 100을 얻기보다는 안전한 10을  원하는 경우가 더 많다. 아무리 희열이 크더라도 고통이 동반된다면 그것은 안 하고 싶다.

내게 연애는 그런 것 같다. 너무 좋지만 헤어지게 되는 감정과 아픔, 공허함을 또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속된 말로 따지게 된다. 어떻게 보면 순수함이 사라졌다고 보는 게 맞다. 세상이, 사랑이 장밋빛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니 말이다. 그래서 이제는 첫사랑과 이어진 커플들이 제일 멋있어 보이고 부럽다. 이별의 고통을 굳이 느낄 필요 없느니 말이다. 아프다. 지금의 이 고통도 언젠가는 치유되겠지?《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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