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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선 Apr 21. 2024

법으로 보는 유럽

법은 계속 있어왔지만 변해왔다

1. 유럽의 난민 문제
2. 법 없이도 살 수는 없다!


1. 유럽의 난민 문제


현재 유럽은 난민 문제가 골칫거리다. 전 세계 난민 숫자는 작년 1억 1400만 명을 넘어섰는데 2015년에 6천만 명이 넘었다는 기사가 있었으니 10년 만에 2배가 늘어난 것이다. 최근 우크라이나에서만 700만 명의 난민이 발생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주변국이라고 할 수 있는 나라가 중국과 일본밖에 없으니 이 문제에 대해 무디고 기껏해야 쿠바 보트피플 정도만을 떠올릴 텐데 유럽은 아니다. 나라들의 경계가 다닥다닥 붙어있고 서유럽, 동유럽, 아프리카로 나뉘는 경제 격차가 엄청나기 때문에 '아메리칸 드림' 정도의 이민이 아니라 '유럽 헤븐'이라고 할 정도로 자신들의 본국에서 탈출을 감행하고 있다. 올해 지중해를 건너 유럽에 도착하려다 사망한 사람이 18명 당 한 명 꼴이었다고 하니 그들의 입장에서는 정말 목숨 건 순례길이라 할 수 있다.


여하튼 이러한 문제를 유럽에서는 방관할 수만은 없다. 이타주의도 중요하고 인권도 중요하지만 자국민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덮어두고 받았다가는 자국 내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단순히 경제 문제만이 아니다. 문화적으로도 갑작스러운 난민과 이민자들의 증가는 기존 내국인과 동화가 어렵고 서로 간에 적응기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에 유럽에서도 칼을 빼들었다. 지난 4월 10일 새 이민·난민 협정이 유럽의회에서 통과된 것이다. 요지는 난민을 좀 더 엄격하게 받고 국가들마다 일정 비율로 할당한다는 내용이다. 난민으로 고충받는 국가들은 대환영이다. 이미 이탈리아, 영국, 독일과 같은 나라들은 망명을 원하는 난민들을 자신들이 본국이 아닌 제3국으로 인도하고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당연히 제3국에는 난민 한 명 당 일정 비율의 돈을 지급하기에, 보통 아프리카 저개발국가에 속한 나라에서는, 외화벌이로 이러한 협약을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과연 이 협정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을까. 미래는 알 수 없다.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변하지 않은 법이란 없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법이 앞으로도 계속 유효하리라는 생각은 안 하는 것이 맞다. 법은 로마 때부터 혹은 함무라비 때부터 계속 존재해 왔지만 우리가 알게 모르게 변해왔고 현재 사는 사람과 호흡하고 있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악법을 비난하지만 사실 악법을 비난하기에 앞서 그러한 악법을 탄생하게 만든 당시의 국민들을 먼저 규탄할 필요가 있다. 2차 대전 전후 시대 독일에서 유대인을 포함해 인종을 계급화한 법을 만든 게 과연 히틀러 한 명의 잘못으로 볼 것은 아니며 그러한 법이 시행됐다고 그것을 따른 당시의 국민들이 100% 용서될 수 없는 것도 그 이유 때문이다.


2. 법 없이도 살 수는 없다!

우리는 너무 착하고 좋은 사람에게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고 한다. 그런데 과연 법 없이도 살 수 있을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는 홉스의 말처럼 인간은 경쟁의 동물이고 모든 사람이 비슷한 행동을 한다는 보장이 없다. 단 두 사람이었던 아담과 이브 시절에도 튀는 행동이 나왔는데 80억 명이 넘는 인구가 법 없이 산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당장 내일 지구 종말이 일어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가정이다. 그렇기에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는 말은 사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정말 잘 살고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이 결국에는 법을 제일 잘 지키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자 참 아이러니하면서도 결국 우리는 법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라고 다시금 느낀다.

한편, 요새는 법치주의의 붕괴라는 말을 자주 한다. 정치에서는 여야를 떠나 서로에 잘못을 헐뜯으며 비난하고 있고, 사회적으로는 중범죄의 발생이 빈번해지자 지금의 양형 정도가 약하다는 의견들도 많아 이런 언급을 하는 것 같다. 하지만 법치주의를 살리기 위한 방법으로 국민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양형의 강도가 아니라 기준의 명확성일 것이다. 법이 변한다는 것은 시대를 떠나 사회적 분위기에 맞춰 생명체처럼 진화한다는 뜻이지, 같은 시대 내에서 카멜레온처럼 상황에 따라 변하는 것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정치권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 중 하나인 '내로남불'이 법이라는 공간에서 횡행하고 있다.

이번 <법으로 보는 유럽>을 읽으며 법의 변동성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 법이라는 것이 참 경직된 것이긴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알게 모르게 우리와 소통을 하며 변화, 발전하는 과정이 있다는 게 흥미로웠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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