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부조화를 일으킨 당혹스러운 명반
Tracklist.
01. 동네 한 바퀴
02. 야경
03. 즉흥여행 (feat. MC몽)
04. 내일 할 일
05. 같이 가줄래
06. 벗어나기
07. O My Baby
08. She's Not Here
09. 무감각
10. 나에게 하는 격려
11. 즉흥여행
참 오랫동안 살아남는 목소리이다. 특별할 것도, 대단할 것도 사실 없는데 말이다. 윤종신이 오랜 시간 동안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는 다름아닌 '꾸준함'이다. 그것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꾸준한 창작력. 그 창작의 샘은 지금까지도 마르지 않고, 2010년에 처음 시작한 월간 윤종신 프로젝트는 15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해서 유지 중이다. 대한민국의 어떤 뮤지션도 한 달에 한 곡씩 써서 발표하지 않는다. 윤종신이 유일하다.
월간 윤종신을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계기가 바로 이 앨범, 11집의 실패 때문이라고 한다. 청자인 나로서도 도저히 이 앨범이 실패할 거라곤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앨범 수록곡 그 어느 하나도 걸러낼 것 없이 훌륭한 퀄리티를 자랑하고 있고, 무엇보다도 윤종신 음악의 핵심인 '노랫말'까지도 윤종신이 여태껏 발표한 다른 앨범들에 뒤처지지 않을 만큼 아름다운데 말이다. 창작자인 윤종신 입장에선 오죽했겠는가. 앨범을 발표한다는 것 자체에 회의가 들었을 것이다.
당시 윤종신은 뮤지션보다는 예능인 이미지가 강했다. '라디오스타(MBC)', '패밀리가 떴다(SBS)' 등 그가 나오는 예능 프로그램은 반드시 일정 수준 이상의 재미를 보증했다. 하지만 윤종신은 예능 보증수표이기 이전에 뛰어난 가수이자 작곡가였다. 그런 자신의 정체성을 한 번도 잃은 적 없다는 듯, 예능 프로그램 출연도 잠시 쉬면서 심기일전하여 만들어 내놓은 앨범이 바로 이 11집이다. 하지만 앨범은 잘 되지 않았다. 왜 그랬던 걸까.
이 앨범을 발표할 당시 사람들이 윤종신에게서 보고 싶었던 모습이 있었을 것이다. 아마 그것이 가수 윤종신은 아니었던 것 같다. 수록곡의 퀄리티 문제는 아니었을 것이다. 조금 더 냉정하게 말해 볼까. 이 앨범의 타이틀곡 '내일 할 일'은 같은 노래를 조금 매만져 몇 년이 지나 성시경의 목소리로 다시 발표했는데, 그때 반응은 굉장히 좋았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이것이다. '노래는 다 좋은데, 윤종신이 불러서 좀...'
우리가 기억하는 윤종신은 015B 1집 '텅 빈 거리에서'로 처음 데뷔해서 '너의 결혼식', '오래전 그날', '부디', '환생' 등의 명곡을 연달아 발표하며 뛰어난 음악성을 자랑하는 뮤지션이다. 서태지, 신해철, 신승훈, 김건모 같은 뮤지션들이 최고의 기량을 펼치던 90년대에 당당하게 이름을 올릴 수 있었던 가수이다. 대단한 가창력을 갖고 있지 않더라도 특유의 감정 표현력으로 결국 듣는 이를 설득해 내고야 마는, 윤종신은 그런 가수였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의 대중들은 윤종신을 그렇게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예능에 자주 나오는 말 잘하고 웃기는 사람. 그게 그 당시의 윤종신을 가리키는 표지였다. 그때 이 11집은 대중들에게 인지부조화를 일으키는 당혹스러운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 여러 가지로 아쉬울 따름이다.
15년이라는 세월 동안 꾸준하게 창작물을 발표해 온 결과, 윤종신은 예전의 명성을 되찾았다. 예능도 쉬지 않고 음악도 쉬지 않으며 치열하게 노력한 끝에 두 마리 토끼를 기어이 다 잡고 말았다. 똑똑한 사람이다. 어떻게 해야 자기가 갖고 싶은 걸 가질 수 있는지 명확하게 알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것이 아무리 힘들더라도 이를 악물고 해내는 근성까지 갖췄다. 천재가 노력까지 하면 더 무서운 법이다.
Credits & Comments
01. 동네 한 바퀴
작사 윤종신
작곡 정석원
편곡 정석원
앨범 타이틀과 동명의 곡이지만 타이틀곡은 아니었다. 일반적인 발라드보다는 약간 빠른 템포에, 간주 없이 보컬 섹션이 몰아치듯 나오기 때문에 부르기엔 다소 버거운 곡.
02. 야경
작사 윤종신
작곡 정석원
편곡 정석원
잔잔하게 시작하다가 후반부에 풍성한 코러스로 압도하는 정석원 특유의 편곡 능력이 잘 살아 있는 곡.
03. 즉흥여행 (feat. MC몽)
작사 윤종신
작곡 정석원
편곡 정석원
아바(ABBA)나 카펜터즈(Carpenters) 같은 팝 그룹이 선보였던 사운드를 연상케 하는 흥겹고 신나는 곡. 이 버전에는 래퍼 MC몽이 참여했다.
04. 내일 할 일
작사 윤종신
작곡 윤종신, 이근호
편곡 정석원
앨범의 타이틀곡으로, 연인과 이별해야 하는 내일을 담담히 준비하는 노랫말이 인상적이다. 훗날 성시경의 리메이크로 빛을 보게 되는 비운의 명곡.
05. 같이 가줄래
작사 박주연
작곡 윤종신, 이근호
편곡 정석원
개인적으로 이 앨범에서 두 번째로 명곡이라 생각하는 곡이다. 유일하게 윤종신이 작사하지 않은 노래이며, '같이 가줄래 너만 있어 준다면 난 괜찮은 사람으로 살 것 같아'라는 구절이 마음에 큰 울림을 준다.
06. 벗어나기
작사 윤종신
작곡 윤종신, 이근호
편곡 정석원
나른한 리듬으로 자유로움을 전하는 노래.
07. O My Baby
작사 윤종신
작곡 윤종신, 이근호
편곡 정석원
갓 태어난 자신의 아기에게 불러주는 사랑스러운 노래. 곡의 후반부에는 아내 전미라 씨와 아기 윤라익 군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08. She's Not Here
작사 윤종신
작곡 정석원
편곡 정석원
빈티지한 감성이 돋보이는 곡으로, 후반부에 록으로 장르가 반전되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09. 무감각
작사 윤종신
작곡 윤종신, 이근호
편곡 정석원
내가 이 앨범에서 최고의 명곡이라고 생각하는 곡이 바로 이 곡이다. 이별하고 난 뒤에 보통 때는 괜찮은 척, 아프지 않은 척하지만 가끔 미칠 듯한 고통이 엄습하는 모습을 '마취'에 빗대어 표현한 노랫말도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고, 노랫말이 이끄는 감정의 흐름에 따라 바뀌는 편곡 또한 정석원이 혼을 갈아넣은 듯 자신의 기량을 최대한 발휘해 냈다. 이 곡이 이대로 묻히고 마는 건 너무나도 아쉽다.
10. 나에게 하는 격려
작사 윤종신
작곡 정석원
편곡 정석원
앨범의 실질적인 마지막 곡이다. 한 작품을 마무리하기에 딱 적절한, 아련미 돋는 발라드이다.
11. 즉흥여행
윤종신 혼자 부른 버전으로, 솔직히 말하면 랩이 없는 버전을 3번에 수록하고 '나에게 하는 격려'로 마무리하는 편이 앨범 구성상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