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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니룬 Aug 03. 2023

상쾌함을 선물 받다



누가 우리 얘기를 들었나?



누가 설거지망에 샤워쿠폰을 꽂아두고 갔다.

“어머, 왜 이렇게 많이 남았어? 누가 준거지?”



옐로우스톤 캠핑장에서는 체크인 시 샤워 쿠폰을 준다. 1박당 2회를 사용할 수 있게 쿠폰에 체크를 해주는데, 우리는 사이트 2개를 예약했기에 총 8회의 쿠폰을 받은 셈이다. 12명이 2박 3일을 지내야 하는데, 무료샤워는 8번이니 모자라도 한참 모자란 횟수이다. “샤워 한번 하는데 추가 요금이 얼마지?”, “5달러라고? 비싸다!”, "애들은 내일 씻길까?” 등등 샤워에 관련한 얘기를 했던지라 "누가 우리 얘기를 들었나?" 하며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버릴 수도 있었을 종이인데,  얼굴도 모르는 우리에게 전해주고 간 마음이 참 따듯하다.


2박을 보낸 그랜트빌리지를 떠나 캐년 캠프그라운드로 가서 또 한 번의 선물을 받았다. 앞의 2박은 다른 가족들이, 뒤의 1박은 내가 예약을 해둔 것이라 한 번에 체크인이 안되어 텐트와 짐을 한번 옮겨야 하는 상황. 첫날의 직원은 같은 자리 사용이 불가능하다고 했었는데, 둘째 날 다시 문의를 받은 시니어레인저 한 분은 오랜 확인 끝에 한자리에 머물 수 있게 해결을 해주었다. 기쁜 마음에 “You made my day!”를 외치며, 그녀의 친절함에 감사를 전했다. 마침 나에게 줄 샤워쿠폰을 체크하고 있던 그녀는 눈을 찡긋하며 4회짜리 쿠폰을 치우고, 12회짜리 쿠폰을 만들어 내 손에 꼭 쥐어 준다.


첫날의 글램핑을 포함해 옐로우스톤에서 캠핑을 한 일주일 동안 밤의 기온은 3도. 말이 3도이지 한여름 옷을 입고 맞이한 3도의 기온은 영하 못지않게 추웠다. 잘 때마다 점퍼에 침낭까지 꽁꽁 싸매고 자도 새벽이면 머리맡이 차가워 잠에서 깨어났다. 웅크리고 자다 깨서 온몸이 뻐근하고, 찌뿌둥한 그 순간 샤워실에 들어가 맞는 따듯한 물의 느낌을 잊을 수가 없다. 아마 선물 받은 쿠폰들이 아니었다면, 캠핑장에서 매일 샤워를 하는 호사를 누릴 순 없었을 텐데. 우리는 매일 아침 상쾌한 기분을 선물 받았다.


@photo 반상규


일상 속에서 매일 따듯한 물로 샤워를 하며, 그것이 특별하다고 느끼지 못하지만 캠핑장에서는 '당연한' 샤워조차 특별하다. 추운 아침 목욕 가방을 들고 종종걸음을 걷는 기분, 샤워 후 밖을 나섰을 때 그 상쾌한 기분을 잊지 못한다. 누군가 편안한 호텔을 두고 왜 캠핑을 하느냐고 묻는다면, 아마 이 기분 때문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평소엔 그냥 지나치고 마는 사소한 일들의 소중한 순간을 느낄 수 있어서라고.





샤워가 필요한 어린이들의 뒷모습 :)



#연준

엄마가 갑자기 샤워를 하러 가자고 했을 때 좀 충격을 받았다. 옐로우스톤에서는 샤워도 못 할 줄 알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엄마가 거기에 차가운 물 밖에 안나온다고 해서 더 충격을 받았다. 샤워를 할 땐 남자애들과 같이 씻어야 했다. 하지만 막상 들어가 보니 물이 꽤 따뜻했다. 샤워를 하고 나오니 되게 개운했다. 거기서 샤워를 하려면 돈을 내고 샤워 쿠폰을 사야 하는데, 어떤 사람이 우리 텐트에 샤워 쿠폰을 잔뜩 놔두고 가서 샤워를 공짜로 많이 할 수 있었다. 누군진 몰라도 복 받을 사람이다. 그런데 (캠핑장에선) 샤워 쿠폰을 왜 그렇게 조금 주는지 모르겠다. 엄마는 물을 아껴야 하기 때문에 그럴 것이라고 했다.



옐로우스톤의 캠프그라운드


  옐로우스톤에는 총 12개의 캠프그라운드가 있는데, 그중 샤워시설을 갖춘 곳은 3개(Grant Village, Canyon, Fishing Bridge RV Park)뿐이다. 캠핑장 예약은 1년 전부터 가능하며, 편의시설을 갖춘 곳들은 빠르게 마감이 된다. 하지만 1개월 전까지 무료 취소가 가능해 가고자 하는 날의 한 달 전후로 수시로 사이트를 들어가 보면 취소된 자리를 예약할 수 있다.


예약사이트 yellowstonenationalparklodges.com

주요 5개 지역 외의 캠핑장들은 www.recreation.gov에서 예약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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