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니크 Oct 22. 2023

왜 너만 퇴근하냐

왜 나는 일하고 있냐

“어, 수고하고~ 난 갈게. 먼저 가보겠습니다~”

6시다. K과장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모든 팀원이 자리에 남아있는 상황이다.

진짜 KING 받는 상황이다.



J과장님은 모든 일 앞에서 “모르쇠”를 시전 하는 사람이었다. 우리 팀이 생길 당시, 그는 다른 팀으로 가겠다고 원서를 넣었다. 해당 팀에서 받고 싶지 않아 하자, 뜬금없이 발령을 우리 팀으로 내버렸던 것이다.

발령 첫 해, 그는 늘 “몰라서”를 입에 달고 살았다. 안 해본 업무라 몰라서, 이쪽 일을 안 해봐서 몰라서, 어떤 얘기를 해야 할지 몰라서. 그런데 문제는 첫 해, 둘째 해, 셋째 해가 되도록 계속 그러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심지어 놀랍게도 그는 팀에서 연차가 2번째로 높았다. '처음 왔다'는 핑계는 마치 회사생활이 1년 차라는 뜻인 것처럼 결백했다.



그렇게 허공에 뜬 일을 결국 누군가는 해내야 했다. 그건 항상 “아는”누군가의 일이었다. 할 줄 “아는”사람들의 일은 갈수록 늘어났다. 팀장님의 지시에 따라 연차가 낮지만 일을 아는 사람들이 J과장에게 일을 알려주기도 했다. "이건 이렇게 하는 거고 저건 저렇게 하는 거다. 이렇게 한 번 해보시라." 딱 그때뿐이었다. 그는 늘 “이것 참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해봤지만 이해가 안 된다.” 

뭐랄까, 마치 수식을 알려줬지만 1번 문제밖에 풀지 못하는 사람 같았다. (좀 직접 해보라고 좀!!)


결국 나머지 모두가 일을 쪼개서 떠안게 되었다. 막내인 나도 보탬이 되려 업무를 받았다. 회의자료 작성, 자료 취합, 영문 메일 작성, 양식 채우기 등등. 처음 해보는 업무라 손이 느리기도 했지만 욕심이 있어 조금이라도 잘해보려 애썼다. 중간중간 치고 들어오는 업무들은 계속해서 쌓여갔고, 긴급한 건들은 선배들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힘들지만 뿌듯한 모먼트 들이었다. 조금씩이나마 발전한다는 피드백을 받을 때면 그렇게 기쁠 수 없었다. 그렇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당연히 워라밸은 뭐랄까, 조금씩 망가졌다. 늦게까지 남아서 급한 업무를 처리하고 있는 선배들을 보면 차마 먼저 갈 수 없었다. 한 톨의 도움이라도 드려야 할 것 같아 늘 붙어 있었다. 어쩌다 그들이 퇴근하는 날에는 내가 들고 있는 일들을 계속해서 들여다봤다.


그런데 J과장은 아니었다. '모름'으로 인해 그에게 업무를 부탁하는 사람들은 갈수록 줄어들었다. 알려주는 시간만 잡아먹고, 아웃풋이 없다는 걸 알기 시작했으니까. 시간이 흐를수록 그는 공통업무 - 대외 대응용 회의 파일 만들기, 팀 내 공통 보고서 만들기, 조직문화 이벤트 등 - 만을 대응하기 시작했다. 크게 중요하지 않은, 기한만 잘 지키면 혼날 일 없는 일들이었다.


그렇게 이 바쁘고 정신없는 팀에서 그는 유일하게 워라밸을 지키는 사람이 되었다. 


“어, 수고하고~ 난 갈게. 먼저 가보겠습니다~”

그는 오늘도 6시 정시에 짐을 싼다.

이전 09화 집에 가셨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