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니크 Oct 22. 2023

경력직 첫 면접

만 28살, 6년 차 여자. 합격일까?

그렇게 잊고 있던 몇 차례 서류 탈락의 쓴맛을 보고 있던 어느 날. 헤드헌팅 업체로부터 메일을 받게 되었다.

"경력과 모집부문의 희망이력이 유사하여,
이력서를 보내주시면 해당 기업 인사팀에 검토 요청 하겠습니다"

콩닥콩닥 뛰는 가슴을 부여잡고 나는 앉은자리에서 한큐에 이력서를 완성했다. 준비된 경력 취준생은 필력을 뽐내며 원서를 제출했다.



그렇게 수월하게 1차 면접 날짜 얘기가 오가던 중, 갑작스러운 비보가 찾아든다.

"니수대리, 미국 출장 좀 다녀와야겠어."

"갑자기요..?"

"아 본부장님이 당장 보내라고 난리시잖아. 안 가고 괜찮겠어?"

입이 삐죽 나온 팀장님이 나를 보며 말씀하신다. 대리한테 질투하는 부장이라니.



"해외 출장 때문에 면접을 온라인으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헤드헌팅 이사님께 문자를 한다. (오히려 유능한 인재로 봐주게 되는 더 좋은 기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오, 미국! 조심히 잘 다녀오세요. 제가 잘 말해 두겠습니다." 밝은 뉘앙스의 답장을 보며 나는 안심하고 출장준비에 몰두한다.



<1차 면접>

간신히 날짜를 맞춘 날은 공교롭게도 비행기 착륙 후 약 5시간 뒤. 렌트하고, 1시간 운전, 호텔체크인까지 간신히 한 뒤, 주재원분과의 미팅 시간도 쉬겠단 이유로 스리슬쩍 미뤄본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마치 쌩쌩한 아침인 양 씻고 화장까지 마친다. 다급히 노트북 세팅을 완료하고, 준비된 멘트를 상기시켜 본다. 온라인 면접이 처음이다. 고요한 호텔방에서 심장 뛰는 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온다.



팀장, 이사급과의 면접이 한 시간 가까이 이뤄졌다. 생각보다 까다로운 질문들이 들어왔으나 무리 없이 잘 대처했다. 일부 답변에는 끄덕이며 공감하는 그들의 표정이 나를 뿌듯하게 하기도 했다. 좋은 결과가 기대되는 상황이었다.


나의 예상대로 무난히 통과된 1차 면접 이후, 번거로운 작업들을 걸쳐야 했다. 외국어 면접도 해야 했고, 인성면접도 봐야 했고, IQ테스트 비슷한 온라인 테스크까지 거쳐야 했다. 거기다가 최종면접 보기 전에 해야 하는 건강검진이라니? 매번 시간 잡기도 까다로운 직장인은 어떻게든 재택근무 제도를 이용해 보려 애썼다. (다행이었다.)



<2차 면접>

귀국과 동시에 잡힌 2차 면접 일정. 임원 면접은 본사로 와야 한다고 했다. 대중교통으로는 동선이 복잡해 차를 렌트한다. 회사에는 무리한 출장 일장으로 탈이난 것 같다고 뻥을 친다. (실제로 잠을 충분히 잘 수 없던 장기간의 일정이었다.)


번쩍번쩍한 본사 건물을 보며 면접대기실로 들어간다. 도착해 인사담당자의 손끝을 따라 인원수를 보니, 경력직 2차 면접이라 예상대로 후보는 5명도 채 안된다. 나는 자신만만했다.


면접실. 영상에서 보던 팀장과, 처음 보는 본부장이 앉아있다. 젊은 인사팀 직원도 함께다.  

"연봉 *천? 잘 받고 있는데, 왜 이직하려 해요? 그냥 계속 다니지?" 앉아있지만 키가 작아 보이는 본부장이 말한다.

더 좋은 기회, 더 큰 시장, 지금 담당 업무의 구조적인 한계 등. 준비된 멘트를 한다.

"여기는 오지로 출장 갈 일이 많은데, 갈 수 있겠어요?"

이 질문의 답은 정해져 있다. "네. 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물어보는 사람의 의도는 정해져 있다.  

"다들 그렇게 얘기하지." 본부장이 읊는다.


팀장이 실무를 묻는다. 내가 듣기에도 모든 것이 완벽했다. 준비를 많이 한 면접이었다. 

팀장은 눈빛으로 내게 마음을 표현하는 듯했다. 난 잘하고 있다.


"결혼할 계획은 있나요?" 본부장의 멘트에 젊은 인사팀 여자 담당자의 눈썹이 씰룩인다.

"당장은 없습니다." 저걸 물어보네,라고 생각하며 나는 대답한다.

"그래도 언제 할지 모르는 게 사람이지." 

돌아오는 대답에 나는 최대한 '이것이 무례하지 않은 질문이며, 임원으로서 당연히 할 수밖에 없는 멘트'라고 생각하려 노력한다.


"정말 다행히 지금으로서는 아무런 계획이 없고, 만나는 사람도 없네요.ㅎㅎ" 나는 웃으며 대답한다.

"사람 일을 어떻게 아나? 지하철 타고 가다 옷깃이 스칠 수 있는 거고."

"오늘은 차를 몰고 와서요."

"차 타고 가다 사고 난 사람이랑 눈 맞을 수도 있지?"

나는 더 이상의 언쟁을 하지 않기로 생각한다.



직무적인 대답, 지원동기, 업무 이력과 성과.

해당 팀의 니즈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증명. 

객관적인 면에서 나는 그들에게 꽤 완벽했다.


그러나 나는 깨달아야만 했다.


나는 "적령기 여성"
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여자 성비 10%가 채 되지 않는 회사에 지낸 6년.

나는 특별히 힘듦을 느낀 적이 없었다.

그러나 밖으로 나와서는 알 수 있었다.

어쩌면 유리천장은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2차 면접 뒤.

헤드헌터 이사님이 내게 소식을 전한다.

"이상하네요, 보통 최종면접이 끝나면 1~2일이면 결과가 나오거든요."

"내부적으로 고민이 많으신가 보네요." 내가 말한다. 

누가 고민 중인지 훤히 보인다. 아, 고민도 안 하고 있나.

"네... 사실 실무자들 선에서는 니수씨를 뽑고 싶어 하는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런데 윗분들이 고민이 많으신가 봐요."


'고민이라도 많아서 영광이네.' 나는 생각한다.

나를 엄청 마음에 들어 하는 걸 열심히 티 내준 남의 회사 팀장과 이사님한테 새삼스레 감사하다.



결과발표.

탈락.

예상한 바다.


'그 본부장만 아니었어도 붙는 건 따상이었는데.

나는 연봉 협의 얼마 할지가 고민이었는데. 당연히 붙을 줄 알았던걸.'


쳇.


그냥 인연이 아니라고 생각하자.


힘이 빠진다.



그렇게 첫 경력 취직 시도가 끝이 났다.

이전 16화 이직 준비, 땅!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