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구두구 서류발표 결과는?
지원서 거의 10통을 채울 즈음. 신입 취준생 때 마주했던 그 싫고 싫던 감정들이 올라왔다. 패배주의적인, 우울감과 자존감 저하. 나는 이 땅의 능력 있는 경력직이라는 생각 하며 스스로를 계속해서 다잡는다. 그럼에도 어딘가에서 계속 “거절” 당하는 상황에서, 그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대기업에서 대기업 이직. 비슷한 계열 혹은 업종으로 갈 수 있는 옵션은 매우 적었다. 매번 회사 홈페이지에서 직접 취업공고를 눈에 불을 켜고 확인할 수 밖에 없었다. 끊임없이 접속과 리프레쉬를 시전하던 어느날, 드디어 내가 지원해 볼만한 공고가 올라왔다. 직무만 비슷했고, 업종이 달랐다. 정말 많은 스터디가 필요해 보였다. 나는 그 업계에 대해 하나도 몰랐으니까. 동종업계가 아니라는 뜻은, 나는 그 기업에 대해 잘 모르지만, 상대도 나에 대해 제한적으로 알 수 밖에 없는 얘기와 동일하기도 했다.
서류부터 정성 들여 써야 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아무리 면접에서 끝내주는 말솜씨를 뽐낼 수 있다 한들, 서류에서 떨어지면 모든 것이 말짱 도루묵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서류하나 잘 쓴다"는 말은, 철자에 비해 훨씬 힘이 드는 일이다. 제한된 글자 안에 내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줘야 하며, 당신의 회사에서 내가 얼마나 잘할 수 있는 사람인지를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나를 면접에 부를 수밖에 없게끔" 글을 쓰는 일을, 아마도 필력 좋은 작가 또한 공을 들이고 용을 쓸 수밖에 없는 일일 것이다.
기존에 쓰여있는 나의 자기소개서를 베이스로 잡고, 어떻게 해야 인사담당자의 심금을 울릴 수 있는 서류를 쓸 수 있을지 고민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각종 책과 유튜브, 온라인에서 찾을 수 있는 모든 자료, 찾을 수 있는 모든 지인을 인터뷰하며 정보를 수집했다. 내게 어울리는 방식으로 소화하기 위해 머리를 싸매는 시간이 점점 길어졌다. 잘 만든 문장이라는 생각이 들어도, 앞뒤 문맥이나 전체 맥락상 쉽게 읽히지 않으면 과감하게 삭제하며, 나만의, 나만을 위한, 회사를 위한 빛나는 글들을 적어 내려갔다.
새벽같이 야근을 하고 들어와 지원서를 들여다보는 날에는 이게 뭐 하는 짓인가, 하고 너털웃음이 나올 만큼 현타 오는 날도 많았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이러고 있나." 싶다가도, "보여줘야지. 세상에 내가 쓸모가 많은 사람이란 걸 증명해야지", 하고 되뇌며 계속 글귀를 다듬는 작업을 반복해 나갔다.
특히 지인들의 약속을 애써 피하며 집에 올 때는 그렇게 쓸쓸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난 해내야만 했다. 그만큼 이직이 간절했기 때문이다. "이 정도의 간절함이 있어야 할 수 있다, 이것도 못하면 난 정말 기회가 없을 것이다." 하고 때때로 흔들리는 내 마음을 다독이고 다잡았다.
머리를 싸맨 채 며칠을 흘려보낸 날들이 흐르고. 원서 제출 기한이 다가온 그날, 드디어 내게도 만족스러운 지원서가 나왔다. 이렇게 애를 써서 작성한 경력직 서류도 거의 처음이었지만, 이렇게 만족스러운 자소서 또한 처음이었다. (물론 서류 쓰는 건 매번 힘들었다)
왜인지 이번에는 서류정돈 찰떡으로 붙을 수 있을 듯 한 기분 좋은 느낌. 그렇게 정말로 기분 좋은 지원서 합격 통보! 그런데 웬걸, 전혀 다른 직무로 면접을 보라고 회신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