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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광석 Sep 06. 2024

지식의 저주, 아는 게 병이다

1990년 미국 스탠퍼드대학의 대학원생 엘리자베스 뉴턴은 ‘두드리는 자와 듣는 자’라는 실험을 했다. 그녀는 실험에 참가한 두 무리의 사람들에게 각각 ‘두드리는 사람’과 ‘듣는 사람’의 역할을 주었다. 두드리는 사람은 노래 제목이 적혀 있는 목록을 보고, 그 노래들 가운데 하나를 골랐다. 두드리는 사람은 자신이 고른 노래를 이어폰으로 들으면서 박자에 맞추어 탁자를 두드리고, 듣는 사람은 그 소리를 듣고 어떤 노래인지 맞히도록 했다. 뉴턴은 두드리는 사람들이 생일 축하 노래나 크리스마스 캐럴처럼 누구나 아는 음악을 이어폰으로 듣고 탁자를 두드리는 실험을 120번 반복했다. 듣는 사람들은 그중 세 번만 노래 제목을 알아맞혔다. 정답률은 겨우 2.5퍼센트에 불과했다.



그런데 이 실험의 핵심은 다른 데 있다. 두드리는 사람에게 예행 연습을 시킨 후 듣는 사람이 노래 제목을 맞힐 확률을 예상해 보라고 했다. 흥미롭게도 두드리는 사람들의 대답은 50퍼센트였다. 실제로는 마흔 번 중에 한 번만 맞혔는데도 두 번 중에 한 번은 맞힐 거라고 짐작한 이유는 무엇일까? 두드리는 사람들은 노래를 들으면서 탁자를 두드린다. 머릿속에 익숙한 선율이 흐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듣는 사람들에게는 그 음악이 들리지 않는다. 그들의 귀에 들리는 것은 조금 이상한 모스부호처럼 아무런 의미도 없는 ‘딱딱’ 소리뿐이다.



일단 정보(노래 제목)를 알고 두드리는 사람은 더 이상 ‘알지 못한다’는 느낌을 이해할 수 없다. 두드리는 사람은 탁자를 두드릴 때, 듣는 사람의 심정을 헤아리지 못한다. 듣는 사람이 음악이 아닌 단순하고 단절된 몇 개의 타격음밖에 듣지 못한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지식의 저주’다. 무언가를 알고 나면 알지 못한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상상할 수 없게 된다. 이러한 '저주'는 우리의 지식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기 어렵게 만든다.



지식의 저주는 주로 직장에서 상급자(선임자)가 하급자(후임자)를 대하거나 학교에서 교사가 학생을 가르칠 때 발생한다.



상급자는 오랫동안 직장생활을 하면서 많은 경험을 통해 이미 상당한 지식을 지니고 있다. 이에 비해 하급자는 경험도 적고 지식도 부족하다. 특히 신입사원은 업무에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거의 대부분 새롭게 배워야 한다. 그런데도 신입사원에게 업무 내용을 상세히 설명하거나 지시 사항을 충분히 전달하는 상급자는 드물다. 간혹 상급자가 열심히 알려 주었는데도 불구하고 상대방이 이해하지 못하면 답답함을 느낀다. 이런 일이 흔히 일어나는 이유는 상급자가 알고 있는 것을 신입사원도 웬만큼 알고 있다고 오해하기 때문이다. 즉 아는 게 병이 되는 것이다.



내가 아는 것을 상대도 안다고 착각하는 지식의 저주를 잘 표현한 말이 바로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라는 속담이다. 이 속담이 강조하는 것처럼 신입사원 시절에 모르는 게 많아 어려움을 겪고 실수했던 일들을 떠올리지 못하는 상급자는 하급자와 의사소통할 때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지식의 저주는 대통령, 최고 경영 책임자 등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리더가 소통에 나설 때 빈번하게 나타난다. 리더는 자신의 머리에 들어 있는 정보와 귀에 들리는 멜로디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 그래서 사람들의 머리에는 리더가 아는 정보가 들어 있지 않고, 귀에는 ‘딱딱’ 소리만 들린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



미국은 1969년 7월 16일 유인 우주선 아폴로 11호를 발사하였다. 선장 닐 암스트롱, 사령선 조종사 마이클 콜린스, 달 착륙선 조종사 버즈 올드린이 탄 우주선은 7월 20일 달에 착륙하였다. 닐 암스트롱과 버즈 올드린은 달에 발을 디딘 최초의 인류가 되었다. 당시 콜린스는 달 궤도를 돌고 있었다. 아폴로 11호는 7월 24일 무사히 지구로 귀환하였다.



칩 힙스와 댄 힙스는 《스틱!》에서 지식의 저주를 뛰어넘은 사례로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이 1961년 의회 연설에서 달 착륙에 대해 주창한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앞선 과학과 기술을 지닌 국가라는 자부심이 강했던 미국은 1957년 소련이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자 엄청난 충격에 휩싸였다. 미국은 뒤늦게 인공위성을 발사하며 대응했지만, 소련은 우주 개척 분야에서 선두를 달리며 줄곧 최초의 기록들을 세워나갔다. 1961년 4월 소련의 우주비행사 유리 가가린이 세계 최초로 우주인이 되었다. 미국의 우주비행사 앨런 셰퍼드는 한 달 뒤에 그 뒤를 따랐다.



1961년 5월 25일 존 F. 케네디가 의회의 특별회기를 맞아 연단에 올랐다. 의회 연설에서 케네디는 “앞으로 10년 안에 인간을 달에 착륙시키고 무사히 지구로 귀환시키겠다”고 선언했다. 존 F. 케네디가 평범한 최고 경영 책임자였다면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른다. “우리의 사명은 팀 중심적 혁신과 전략적인 주도권 확립으로 항공우주 산업 분야에서 국제적인 리더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케네디는 오늘날의 최고 경영 책임자들보다 훨씬 뛰어난 직관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불분명하고 관념적인 사명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거나 고취시키지 못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분명하고 구체적인 표현으로 메시지를 전달했다. 케네디가 달 착륙 사명을 선언한 것은 ‘지식의 저주’를 모범적으로 뛰어넘은 사례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이후 10년 동안 수백만 명의 행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진정 탁월하고 아름다운 메시지였다.(칩 히스․댄 히스, 《스틱!》)



기업이 지난 경험을 통해 얻은 정보에 지나치게 얽매이는 경우에도 지식의 저주를 불러올 수 있다. 일본의 전자회사 소니는 1975년 비디오 규격 경쟁, 1992년 레코딩 규격 경쟁에서 각각 경쟁사에 패배했다. 성능과 기술 면에서는 소니의 제품이 월등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저렴한 가격도 중시하는 가전시장의 흐름을 외면한 채 쓸데없이 높은 품질을 고집한 게 패인으로 꼽힌다. 1980~1990년대 세계를 제패한 일본 전자회사들은 2000년대 들어 삼성전자에 주도권을 빼앗겼다. 뛰어난 기술력으로 제품을 개발하여 세계 시장을 휩쓸었던 과거의 경험에 안주한 나머지 변화하는 시대에 대응하는 데 뒤처졌기 때문이다.



교사라면 누구나 학생들을 잘 가르치고 싶어한다. 하지만 잘 가르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지식이나 기능, 이치를 깨닫게 하거나 익히게 하는 교육은 다양한 요소들과 결합되어 있다. 교사가 학생들을 잘 가르치는 일이 어려운 이유들 가운데 하나로 교육 현장에서 날마다 지식의 저주가 일어나는 것을 꼽을 수 있다.



지식은 교육이나 경험, 또는 연구를 통해 얻은 사물이나 상황에 관한 정보이다. 배경지식은 어떤 일을 하거나 연구할 때, 이미 머릿속에 들어 있거나 기본적으로 필요한 지식이다. 교사들은 자신이 가르치는 교과 내용에 관한 지식을 이미 가지고 있다. 게다가 배경지식이 풍부하여 새로운 것을 배울 때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학생들은 처음 배우는 내용에 대한 지식이 없고 배경지식도 부족하다. 교사가 이런 점을 면밀히 고려하지 않으면 학생들의 지식과 이해 수준에 맞추어 가르치는 일이 어렵기 마련이다.



내 머릿속에 들어 있는 정보가 아니라 상대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정보에 집중하고, 내 귀에 들리는 멜로디가 아니라 상대의 귀에 들리는 소리에 주목할 때 우리는 ‘지식의 저주’에서 벗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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