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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운재미 Jan 25. 2021

3. 운동에 집착하는 이유

'성취감'에 대하여



남들보다 못나면 못났지 잘난 것 하나 없는 나의 삶. 남들과 비교해서 이길 것 하나 없는 지극히 평범한 내가 유일하게 이길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나 자신 뿐이었다. 나의 라이벌이 나라는 것은 어쩌면 선택을 가장한 필수요소였을지도 모르겠다.




뽕. 


'러너스 하이'라는 스포츠 용어가 있다. 미국의 심리학자인 A.J 맨델이 1979년 발표한 논문에서 처음 사용된 용어이다. 대개 운동을 30분 이상 지속할 때 발생하는데, 운동으로 체력의 한계에 다다르는 어느 시점에서부터 몸이 편해지고 오히려 경쾌해지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되는 시점을 말한다. 이게 참으로 재미있는 게 마약과도 비슷한 구석이 있다. 오죽하면 운동중독이라는 말이 있으랴. 이 러너스 하이를 경험한 사람들은 보통 "하늘을 나는 것 같다." 혹은 "꽃길을 걷는 것 같다.'라고 표현한다. 극한에 달했을 때 누구나 멈추고 싶어 한다. 그러나 이 고비를 넘기면 마치 내가 둥둥 떠다니는듯한 느낌을 받는데, 그때 느끼는 희열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듣기만 해도 운동이 하고 싶어 몸이 근질거리지 않는가? 나는 평발이다 보니 러닝을 하면 발에 피로가 금방 쌓인다. 그러다 보니 자주 즐기는 편은 아닌데 거기서 얻는 운동의 즐거움이 있다 보니 종종 라이딩이나 러닝을 찾곤 한다. 러닝화를 신고 나서서 달리다 보면 처음엔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멈추고 싶다는 생각이 확 들곤 한다. 매번 적응이 되지 않는 괴로움이다. 그러나 이 10분을 넘기고 달리다 보면 어느새 그 힘듦이 사라지고 가볍게 경보하는 듯한 느낌이 드는데, 그 상태로 운동을 마치면 처음 무거웠던 느낌은 온데간데없이 온몸이 정말 가볍고 개운하다. 이게 정말 마약을 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라고 한다면, 합법적인 마약인데 한 번쯤 해볼 법하지 않을까?  


일출과 함께하는 라이딩은 내 마음까지도 솟구치게 한다.



인생의 태도를 비춰볼 수 있는 거울이 있다면, 그것은 운동일 것이다.


여동생이 나에게 운동을 알려달라고 했던 적이 있다. 흔쾌히 근처 헬스장을 방문하여 호기롭게 운동을 시작했다. 동생은 힙업이 대세라며 엉덩이 운동을 하고 싶다고 했다.


나: 이거 할 거야. 자, 시작! 하나, 둘, 셋...

동생: 악! 힘들어!!!! 못하겠어. 딴 거 할래.

나: 아니, 힙업 하고 싶다며!! 할 수 있어!!!! 나도 하잖아!!!

동생: 아 언니는 원래 잘하잖아!!! 


그날 운동은커녕, 씻고 나와서는 집에서 치콜(치킨과 콜라)을 시켜먹었던 것 같다. '원래 잘한다'라는 말이 있을까? 내가 처음부터 운동을 잘했다면 나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지도 않을 것이다.(그럼 정말 좋겠다.) 그리고 원래 잘했다면 이만큼의 재미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잘한다는 것은 숙련되어 있다는 것인데 그만큼 많이 반복했다는 증거다. 처음에는 행위 자체에 의의를 두기 마련이지만 그것이 두 번 세 번 반복되면 그때부터는 익숙해지게 된다. 자연스럽게 배인 익숙함을 보고 상대방은 원래 잘했던 사람인 것 마냥 나를 보게 된다. 그 숙련의 과정은 수많은 '못하겠어!!!!!!'를 딛고 오른 계단 정상이라는 것을 모른 채 말이다. 일도 반복되는 업무이기 때문에 곧 숙련되기 마련이지만, 운동과의 가장 큰 차이점은 '정신력'이라는 것이다. 운동은 매번 내 몸의 한계치를 테스트하기 때문에 순간순간 나와의 싸움을 하게 된다. 한 마디로 토너먼트 대결에서 한 게임 이기면 쉬는 시간도 없이 바로 다음 대결이 이어진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 결과, 무엇이 좋냐고? 인내가 생긴다. 버티는 힘, 즉 맷집이 생긴다. 운동에서 배운 인내는 삶에서도 연결된다. '내가 이 것 하나도 못하면서 다른 건 할 수 있겠어?'라는 생각이 덤벨을 한 번 더 들게 하고, 그 세트가 끝나면 이미 나는 천군만마를 얻은 사람이 된다. 마지막 1회에 덤벨을 들어 올리는 것을 실패했어도 상관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다. 그 정신력은 다른 무언가를 할 때도 좀 더 버티고 좀 더 해보는 자세를 만든다는 것에 나는 적극 동의한다. 지금도 나는 운동을 통해 인내를 배우고 자신감을 얻기 때문이다.


동생과의 운동에서 남는 것은 사진과 음식 뿐...



혼자 가는 열 걸음보다 함께 가는 한 걸음의 가치


운동은 혼자도 하지만 함께 하는 경우도 많다. 운동 종목 특성상 수영, 양궁과 같은 개인종목도 있고 축구, 배구처럼 팀 종목도 있는 것처럼 말이다. 웨이트 트레이닝도 대부분은 혼자 하는 이미지를 떠올리곤 하지만 조금만 관심 있게 둘러보면 파트너십이라고 하여 서로 보조해주며 함께 하는 경우도 꽤 많이 발견할 수 있다. 혼자가 아닌 누군가와 운동을 하게 될 경우 서로의 호흡이 굉장히 중요해진다. 살 부딪치며 서로 싸우기도 하고, 상대의 부족함을 채워주며 더 지칠 수도 있다. 생각만 해도 피곤하다고 느낄 수 있다. 편하게 혼자 하면 될 것을 왜 같이 하냐고 묻는다면 대답해주는 게 인지상정.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되고,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된다는 말이 있다. 운동의 힘듦은 반이 되고, 운동으로 얻는 효과는 배가 된다. 일단 내가 생각하지도 못한 나의 한계를 더 쉽게 끌어내어 나 자신에게 놀랄 수 있다는 게 첫 번째. 그리고 맞춰 가다 보면 그 나름대로의 즐거움과 배려가 생긴다는 것이 두 번째다.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솔로 플레이와는 다른 게 상대방을 생각해볼 수 있는 이해심, 더 나아가 여러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 나의 루틴에서 안주하지 않게 된다. 다양한 부분을 보고 느끼며, 나 자신도 그만큼 시야가 넓어진다. 혼자 가면 바삭한 바게트 빵 위를 걷듯 빠르고 편하다. 내가 보고 싶은 부분만 보며 재빨리 지나갈 수 있다. 함께 가면 푹신한 팬 케이크 위를 걷듯 천천히 넓게 보게 된다. 조금은 더디지만 더 풍족한 과정이 될 수 있다. 둘 중에 어떤 것이 더 좋고 나쁘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운동은 이 두 가지를 모두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릴레이 팀으로 참가하여 수영-라이딩-마라톤 중 수영 종목을 맡았던 2019 통영 철인 3종 대회 기념 컷. (맨 왼쪽 '운재미')



"야, 나두 할 수 있어."


생각이 행동을 낳고, 행동이 결과를 낳는다. 우리는 생각 자체에 굉장히 큰 힘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할 수 있다.'라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우린 이미 머릿속에 해내고 있는 모습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흔히 아는 스포츠 용어 중 '이미지 트레이닝'이라는 말이 있다. 내가 어떠한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머릿속에 그 운동이나 동작을 그려보는 것인데, 그만큼 어떠한 것을 이미지화시킨다는 것은 굉장히 큰 힘을 가지고 있다. 내가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면서 가장 크게 느꼈던 것은 '나도 할 수 있다.'였다. 세상 모든 것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한 세상 속에서 유일하게 운동은 내가 생각한 대로 할 수 있다. 맘먹은 대로 말이다. 누구나 할 수 있다. 마음만 먹으면. 



말하는 대로 말하는 대로 될 수 있단 걸 눈으로 본 순간

믿어보기로 했지

마음먹은 대로 생각한 대로 할 수 있단 걸 알게 된 순간

고갤 끄덕였지

...

그대 생각한 대로

도전은 무한히

인생은 영원히


'말하는 대로 - 처진 달팽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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