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운재미 Jan 24. 2021

2. 내가 헬창이라고 느낀 순간

'적당함'에 대하여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말이 있다. 내 옷이 ‘헬창’이라는 비에 흠뻑 젖어가는 줄도 모른 채 나는 언제부터인지 모를 비를 맞고 있었다. 친구들이 ‘옷 젖었어.’라고 알려주어도 그저 비를 맞는 것이 즐거웠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누구에게나 처음이 있다.


처음부터 웨이트 트레이닝을 좋아했던 것은 아니었다. 체육대학을 졸업했지만 졸업할 때까지도 운동과는 거리가 멀었던, 말 그대로 공부만 했던 학부생이었다. 스포츠의학 동아리 활동 때문이었는지 재활과 움직임 기능 자체에 관심이 많았던 나에게 헬스, 그리고 PT라는 개념은 소위 '몸만 좋은 사람들이 하는 세일즈맨'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그 당시만 해도 체육대학 내에서는 ‘사람의 몸을 만든다’라는 개념 하에 직업의 부류가 둘로 나뉘었다. 팀 혹은 재활센터의 트레이너와 일반 피트니스 센터의 트레이너였는데, 예를 들자면 '나누리병원 스포츠메디컬센터'의 운동 선생님과 '스포애니'의 퍼스널 트레이너로 나눌 수 있겠다. 전자의 경우는 보통 근육의 기능 회복을 통해 몸을 끌어올리는 퍼포먼스적인 부분에 포커스를 두는 반면, 후자의 경우는 눈에 보이는 육체미를 향상시키는 것에 중점을 둔다. 둘 다 올바른 운동법을 지도한다는 것에 공통된 목적은 있지만, 엄연히 추구하는 방향이 다르다.


병원 내 메디컬센터 / 선수트레이닝센터 / 일반 피트니스센터 (내가 어디있느냐에 따라 트레이닝 분위기가 정말 다르다!)


학부생이었던 내가 접했던 것은 온통 스포츠의학과 관련된 이론과 세미나였기 때문에 나의 생각은 당연히 전자에 가까웠다. (체육대학이라고 해서 꼭 웨이트 트레이닝을 전문적으로 접하진 않는다.) 그리고 대학 졸업과 동시에 선수 트레이너를 꿈꾸며 선수 전문 재활센터에서 인턴생활을 시작하였는데, 이게 뭐람! 우연히 만나게 된 회원님을 트레이닝하게 되면서 나의 생각은 바뀌었다. 굉장히 우아하고 고상하신 60대 어머님이셨는데, 매일 밤 허리 통증으로 잠을 설치기 일쑤였고, 진통제로 그 통증을 버티곤 하셨다. 어느 날부터인가 걷기도 힘드셨던 회원님이 트레드밀 위에서 빠른 속보를 하는 모습을 보고, 나는 선수가 아닌 일반인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에 더 흥미가 있구나라고 느끼게 되었다. 아직도 그 모습이 잊히지가 않는다. 퇴사 후 나는 일반인들이 많이 찾는, 우리가 아는 흔하고 평범한 피트니스 센터에 출사표를 던졌다. 재활센터 외 일반 피트니스 센터에서 일한다는 것은 나에게 있어 고향을 버리는 것과 같은 내 프라이드에 대한 배신이었다. 그렇지만 그게 중요하진 않았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열정만 가득했던 내가 귀여워 보였던 걸까? 매니저님의 채용으로 나와 웨이트 트레이닝의 만남은 시작되었다.


학부생 시절 열심히 공부했던 운동학 서적과 학교선배에게 어설프게 배웠던 첫 웨이트 / 재활센터 근무시 재활밴드운동 연습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지.


“피트니스 시장에서 트레이너는 어쩔 수 없다. 보여지는 직업이다. 네가 공부한 것, 다 좋다. 그렇지만 여기서는 너의 몸으로 그걸 증명해야 해. 보여줘야 한다. 당장 운동 시작하자. 보디프로필까지 찍자.”  

그때부터 4개월간 하루도 빠짐없이 운동과 식단을 병행했다. 그리고 보디빌딩 국가대표 선수였던 매니저님께 운동을 배우며, 자연스럽게 보디빌딩 그리고 웨이트 트레이닝이라는 것에 매료되고 있었던 것 같다. 어깨의 움직임 범위는 어디까지이며, 이 범위를 만들기 위해 어떤 근육을 이완하고 트레이닝해야 하는가에 대해 공부했던 나였다. 그런 내가 이 근육을 효과적으로 발달시키려면 어떻게 이 근육을 고립시켜야 하고, 근성장을 위해 단백질은 하루에 몇 그램씩 챙겨 먹는 게 좋은가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니 이 얼마나 웃긴 일인가.     

4개월 후 나는 근사한 보디프로필을 남길 수 있었다. 그리고 더 큰 것은 운동이 가져다주는 즐거움을 몸으로 느꼈다는 것이다. 가르칠 줄만 알았지 정작 즐길 줄은 몰랐던 내가 어쩌면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일지도 모르겠다. 운동을 이틀만 쉬어도 근육의 생성과 회복이 멈출 것만 같고, 하루 단백질을 적정량 섭취하지 않으면 온 몸의 근육이 모두 빠져나갈 것만 같은 느낌을 떨칠 수 없는 것도 이때쯤부터였던 것 같다.


퍼스널 트레이너 전향 후 매니저님과 함께 한 트레이닝과 유산소운동 /  보디프로필 촬영 후 선물받은 퍼즐액자



‘한 번도 맛보지 않은 사람은 있지만 한 번만 맛본 사람은 없다.’ 


흔한 광고 문구다. 헬창도 똑같다. 헬창의 맛을 아직 못 느껴본 사람은 있지만 한 번만 느껴본 사람은 없다. 운동을 하면서 차오르는 근육의 펌핑 감과 하지 못할 것 같았던 마지막 개수를 끝까지 채우고 나서의 성취감, 숨이 차고 땀이 흐르고 난 뒤에 오는 개운함. 그리고 일정 시간이 지났을 때 얻는 몸의 변화. 불공평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유일하게 공평한 것은 몸이었다. 내가 스트레스를 극히 받았을 때 결국 운동을 하면 풀리더라.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헬스장을 찾는 빈도수가 늘었고, 자연스럽게 헬스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졌다. 과부하의 법칙이라 하지 않았나. 이것보다 더 큰 무언가를 느끼고 싶다 보니 나의 욕심은 계속 커져갔던 것 같다. 



사람의 기준은 모두 다르다. 


친구의 남자 친구: 나 운동 조금만 하고 올게.

친구: 얼마나?

친구의 남자 친구: 간단하게 두 시간?

친구: 그게 조금이야?!     


언젠가 친구에게 답답하다며 연락이 왔다. 남자 친구가 운동을 두 시간, 세 시간씩 하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실제로 내 주변에 이런 친구들이 꽤 많다. 내가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친구의 남자 친구가 이해되는 이 심정이 무엇일까 생각해봤더니 우린 같은 부류였던 것이었다. 친구에게 이야기했다. "네가 아트센터와 서점에서 쇼핑하는 것에 두 시간, 세 시간씩 보내도 시간 가는 줄 모르는 거, 그거랑 똑같을 거야 아마." 사람마다 좋아하는 것이 다르고,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도 다르다. 다만 내가 친구를 볼 때 친구는 쇼핑광인 것처럼, 누군가 나를 볼 때 내가 헬창일 수 있다는 사실을 친구와의 대화를 통해 알았다. 내가 헬스장에서 보내는 두 시간, 세 시간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누군가에게는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 말이다. 이전까지 나는 계속 부정해왔다. 내가 무슨 헬창이냐며, 나같이 적당히 운동하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그 말을 들은 친구들이 말했다. 너는 적당히가 아니라고. 그렇다. 나에겐 당연한 운동시간, 나에겐 당연한 단백질 식사가 나와 다른 사람들에게는 특이한 것이었다. 항상 나와 같은 사람들 틈에 있다 보니 지극히 평범하게 느껴졌을 뿐.   

이전 01화 1. 헬창이 뭐예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