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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운재미 Feb 05. 2021

5. 외롭지만 풍족한 헬창의 삶

'감사함'에 대하여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그대여, 외로운가? 사무치는 외로움 속에서도 무언가 꽉 채워지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는가? 그 모순이 이 자리에 있다. 고독하고 외로운 자신과의 싸움 속에서 울려 퍼지는 무언의 승리가가.


혼자 남은 센터에서 운동을 할 땐 적막함 속 평온함이 느껴진다.


외롭다.


밥시간이 되면 누구나 밥을 먹어야 하는 것처럼, 나도 똑같다. 제때 운동을 해야 하는 것 또한 예외는 아니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방식으로 폭발한다. '스트레스받아서 그래.'라는 합리적인(?) 이유로 폭식을 하듯이. 제때 끼니를 챙겨 먹지 못하고 운동하지 못해 생기는 시간의 압박감은, 시계침 위에 고스란히 쌓여 그 무게에 가속이 붙는다. 그렇다 보니 퇴근 전후 즐거움에 시작한 하나의 취미는 어느새 의무가 된 지 오래다. 다른 친구들은 8시간 일할 때 나는 운동을 포함해 11시간 일을 하는 셈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만큼 지인들을 만나는 시간이 적어질 수밖에 없다. 그뿐인가.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의 식사 자리에서도 계속 단백질을 따진다. 이따금씩 눈치를 챈 친구들이 먼저 물어본다. 


친구: 지금 뭐 관리해? 너 이건 먹어? 

나: 아니 괜찮아 다 먹어~~

친구: 그럼 김치찌개 먹을까?

나: 그 집 김치찌개에 돼지고기 들어가나?

친구: 돼지고기 없으면 안 돼?

나: 아니 있으면 좋지. 근데 괜찮아!

친구: 그럼 가자!


이크, 돼지고기가 없다. 나는 부족한 단백질을 채우고자 밑반찬으로 계란찜을 주문한다. 가리는 건 없다면서 꼭 식사자리에서 한 마디씩 덧붙인다. "단백질은 먹어줘야 돼." 친구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는다. 내가 생각해도 참 만나기 피곤한 스타일이다. 데이트를 할 때도 똑같다. 김치찌개, 부대찌개도 한두 번이지 어느 정도 만나다 보면 연어덮밥을 먹고 싶다더니 갑자기 샐러드를 먹어야겠단다. 그래서일까? 점점 만나자는 말이 줄어드는 이유가 본인에게 있다는 것도 눈치채지 못한 채, 오늘도 운동을 마치고 집에 들어와 눕는다. '오늘 하루도 잘 보냈다.'는 자화자찬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며 자기 전 카카오톡을 켠다. 운동하느라 보지 못했던 연락에 답장을 하고, 지인들 카카오톡 프로필을 보다 보니 친구들은 연인과 줄곧 연애도 잘하고 있어 보이고, 결혼을 앞두고 있는 친구들도 몇몇 보인다. 좋아 보인다. SNS에는 친구가 업로드한 디저트와 당이 가득한 라떼 사진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맛있겠다'는 생각도 잠시, 유명한 해외 보디빌더 선수의 운동 영상이 다음 피드를 대신한다. 와 정말 멋있다. 문득 오늘 운동 중에 찍었던 내 사진들이 생각난다. 사진첩엔 어두컴컴한 조명 아래 조금이라도 오늘의 펌핑감을 간직하고자 셔터를 누른 수많은 흔적들이 가득하다. 아, 오늘 운동이 좀 덜 된 것 같다. 아쉬우니 내일은 좀 더 일찍 가서 여유 있게 한 세트 더 해야겠다. 핸드폰을 내려놓고 눈을 감는다. 오늘따라 쉽사리 잠이 들지 않는다. 특별히 못난 하루를 보낸 것도 아닌데 오늘따라 이 밤, 왜 이렇게 외롭지? 



풍족하다.


퇴근 후 어김없이 나의 발걸음은 헬스장으로 향한다. 물통 가득 물을 받으며 헬스장을 슬쩍 둘러본다. 사람도 많지 않고, 분위기도 나쁘지 않다. 평소보다 잠을 몇 시간 더 자서일까 오늘따라 몸이 조금 더 가볍다. 평소엔 하지도 않던 스트레칭으로 워밍업을 충분히 해주었다. 그래서인지 오늘 이상하게 근육에 자극이 잘 느껴진다. 몸에 힘을 줄 때마다, 거울 속 근섬유가 똘똘 뭉치는 모양새가 꽤 볼만하다. 평소 들리지 않던 무게가 오늘따라 들린다. 와, 내가 이 무게를 들다니!

내 근육에 펌핑감이 차오를수록 내 안에 자신감도 차오른다. 내 호흡이 가빠질수록 내 자존감은 가파르게 상승선을 그린다. 세상에 오롯이 나 혼자만이 존재하는 느낌이 든다. 내면에 무언가 꽉 채워지는 느낌이 내 피를 뜨겁게 달군다. 운동을 통해 채워지는 이 풍족함은 내가 언제 외로웠냐는 듯 어젯밤의 나를 위로한다. 인생을 살다 보면 희로애락이 없는 인생은 없을 터, 외로움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 외로움을 사람에게만 의지할 수는 없다. 운동을 통해 채워지는 이 긍정적인 감정은 흘러넘쳐 주변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렇게 건전하고 순수한 사람이 어디 있는가! 

주말 낮, 할 게 없어 뒹굴뒹굴 누워 SNS를 보다 보면 남들의 화려한 인생에 내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우린 절대 초라하지 않다. 내가 나를 초라하다고 생각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페르소나가 하나의 문화가 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포장된 내 모습에 나 조차도 내가 누구인지, 내가 무슨 삶을 살고 싶은지조차 헷갈릴 때가 있다. 이 고민이 끝없이 되풀이되는 삶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자의 숙명이다. 그 안에서 본연의 나를 마주하고 싶거든, 정말 살아있는 나를 느끼고 싶거든, 내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꿈틀거리며, 격렬히 들이내쉬는 가빠진 호흡을 다듬으며, 문득 내가 살아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끼고 싶거든 일단 나가자. 공터를 찾든 헬스장을 찾든 움직일 수 있는 어디든 가자. 그럼 채워질 것이다. 


처음 장거리 라이딩을 한 날, 끝없는 오르막을 오른 뒤 헛웃음 내뿜는 토할뻔한 운재미



감사함을 느끼는 것은 정말 쉽다. 내가 당연하게 누리던 것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느끼면 된다.

운동장을 한 바퀴만 전력질주해보아라. 숨이 턱까지 차오르면, 내가 이렇게 숨을 쉴 수 있다는 것에 제일 먼저 감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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