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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변인팬클럽 Sep 13. 2020

요르단에서 자신의 알을 깨고 나온 26살 심현아님

이 친구들이 나의 말로 조금이라도 자신감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https://youtu.be/hPae0WfozyM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소설 데미안의 유명한 구절이지요. 저는 개인적으로 성장은 반드시 아픔을 동반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아프다고 해서 성장하는 것 아니겠지만요. 비 오는 날 제 무릎이 아무리 쑤셔도 더 이상 키는 크지 않는 것처럼요. 하지만 조금 더 나은 나 자신이 되었던 순간들은 보통 잠 못 이루는 밤들과 함께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 이야기들을 듣는 것을 참 좋아하나 봅니다. 깊은 고민 끝에 자신의 알을 깨고 나와, 단단한 날개로 훨훨 날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요. 그중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그 알을 깨고 나오는 순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 만난 현아 님에게서도 자신의 세계를 깨뜨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섬세한 고등학교 시절, 낯선 환경에서 바닥까지 친 자존감을 차곡차곡 채워올려 새로운 자신이 된 현아 님이 참 단단해 보였습니다. 

https://youtu.be/hPae0WfozyM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성인 되고 나서 자기소개가 참 어려운 것 같아요. (웃음)

저는 지금 현재 스타트업에서 열심히 세일즈를 하고 있고요. 계약기간이 끝나서 곧 퇴사를 앞두고 있는 26살 심현아라고 합니다.


현아 님께 인터뷰 요청했던 데엔, 프로젝트 시민 활동에 대한 궁금증이 컸어요. '청년이 만드는 시민교육'이라는 모토로 다양한 형식의 청소년 시민 교육을 진행하고 계시다고 들었어요. 

저는 지금은 활동하지는 않고요, 초창기부터 일 년 반 정도 함께 했어요. 지금은 멘토로 간간이 활동하고 있어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어요?

사실 전 그전까진 정치에 관심이 없었어요. 그러다 친한 친구가 같이 정치 프로젝트를 해보자고 해서 시작했어요. 


저는 대학교 내내 학생 멘토링을 하면서 프로그램 개발을 했던 경험이 있었거든요. 학생들이 재미있는 역할 놀이라고 느낄 수 있는 시민교육을 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더 시티즌-내 손으로 바꾼 시민사회'를 함께 만들게 되었어요. 




https://blog.naver.com/projectseeimin



역할 놀이라, 어떤 게임이었나요? 

정치를 하는데 필요한 분류를 정당, 시민단체, 선거관리위원회, 언론 네 역할로 나누고, 실제로 정치를 위한 프레임을 짜보는 게임이에요. 


정당 역할을 맡은 학생에게는 어젠다를 주었어요. 예를 들면 “학교 폭력 해결" 이런 이슈죠. 2~3개의 정당으로 나뉘어 각 정책들을 만들어 내었어요. 


또 시민단체는 학부모, 선생님 등으로 나누어 그들이 보는 학교폭력의 실태와 해결책 등을 주장할 수 있도록 했어요. 언론은 정당의 정책을 시민들이 정책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는 역할을 부여했어요. 

선관위의 경우는, 정치게임에 돌아가는 룰을 만들었어요. 부정선거의 기준 같은 규칙들을 만들게 했어요. 이런 롤플레잉을 하면서 어떤 정당이 선택을 받느냐가 최종 결론이었어요. 



와, 쉽지 않은 게임처럼 보이네요. 누구를 대상으로 진행했나요? 

맞아요. 제대로 시도하려다 보니, 고등학생이 적합하다고 생각했어요. 서울에서도, 광주 강릉 여기저기에서 진행했었어요. 



게임의 이름이 더 시티즌인 만큼 현아 님이 생각하시는 현대사회에서 시민은 어떤 사람인가요?

저희 맨날 이거 학생들한테 물어봤는데 대답을 못하더라고요. 왜 못하는지 알겠어요.(웃음) 시민은… 대화하는 방법, 조율하는 방법을 아는 사람 같아요.  



현아 님께 이 경험은 어떤 의미로 다가왔나요?

무리에서 잘 어울리는 친구가 있고, 잘 못 어울리는 친구가 있어요. 그런 친구들이 눈에 밟히더라고요. 저도 고등학교 때 적극적이거나 의견을 피력하는 사람이 아니었어요. 이 친구들이 나의 말, 글로 조금이라도 자신감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대학교 멘토링부터 시작해서 사람들이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데 관심이 많으신 것 같아요. 어떤 계기가 있으실까요?

저는 늘, 소극적으로 살진 않았지만, 자존감이 하늘을 찔렀던 적은 없었어요. 


고등학교를 요르단에서 살았던 게 엄청난 터닝포인트였어요. 그전까지는 주어진 일을 착실하게 하는 학생이었거든요. 요르단에선 문화권 자체가 너무 달라서 적응하는 것 자체만으로 너무 힘들었어요. 영어도 잘 못했으니까요. 


© Konevi, 출처 Pixabay


처음 갔을 무렵, 한 친구가 얘기를 하는데 잘 못 알아듣고 대답을 못했어요. 그랬더니 그  친구가 "너 영어 하나도 못하는 거구나" 하고 가더라고요. 그 친구가 나와의 대화를 포기하고 간 그 순간이 큰 트라우마로 남았어요. 


그다음부터는 긴장상태로 이야기를 듣게 되고, 긴장하니까 더 대화가 안되고  그 반복되는 과정이 너무 스트레스였어요. 자존감이 떨어졌고 한계를 체감했어요. 


그러다가 수업 시간에 에세이를 쓴 날이었어요. 어색한 표현과 다른 문법이 많았는데도, 선생님이 몇몇 군데 칭찬을 해주시더라고요. 그러면서 조금씩 자신감을 얻었어요. 그런 작은 순간들이 도움이 되었어요. 



너무 대단한데요. 힘든 경험을 통해서 참 많이 단단해지셨네요. 

그래서 학생들에게도 그런 얘기를 해주고 싶나 봐요. '괜찮아 다 지나갈 거야, 너희도 다 이겨내고 나중에  다른 친구들에게 이런 얘기를 해줄 수 있을 거야' 하고요.  이렇게 얘기하면  애들이 잘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웃음) 끄덕끄덕 하긴 하더라고요.  



요르단은 어떻게 가게 되셨어요? 

아버지 일 때문에 갔었어요. 가족 다 같이요. 사실 동생이 발달 장애가 있어요. 그래서 부모님이 더 힘든 결정이셨을 거예요. 

© alexrvasey, 출처 Unsplash


한국에 다시 돌아왔을 때 느낀, 요르단이 바꿔버린 내 무언가가 있으실까요? 

편견이 많이 사라졌어요. 그전엔, 무슬림은 무섭고, 테러리스트라고 생각했거든요. 


요르단엔 대중교통이 잘 안되어 있으니까 택시를 타고 다녔어요. 한 번은 혼자 택시를 타고 가고 있는데, 갑자기 택시 기사가 갓길에 세우는 거예요. 


그 즈음에 부모님이 한인 여자가 혼자 택시 타고 가다가 행방불명이 되었으니 조심해라 이런 이야기를 해주셨거든요. 무서웠죠. 그런데 택시 기사분이 엄청 짧은 영어로, "지금 기도 시간인데 잠시만 기도해도 될까" 물어보시더라고요. 괜찮다고 하니, 택시 뒤 트렁크에서 양탄자를 꺼내서 방향을 맞추어 기도하시더라고요. 다시 돌아와선 '미안하다'라고 하시면서 초콜릿을 주셨고요. 


그때 느꼈어요. 귀찮음과 껄끄러움을 뛰어넘어 여기 사람들은 정말 순수하게 종교를 대한 다는걸요. 


© rumanamin, 출처 Unsplash


그 순간이 너무나 인상 깊었어요. 

우리도 다른 사람들을 볼 때, 장애가 있다거나, 다른 문화권에서 왔다면, 전형적으로 떠오르는 것들이 있잖아요. 장애가 있는 가족이 있으면 힘들겠다. 이런 선입견이오. 


아무런 선입견 없이, 사람을 있는 그대로 생각하려고 노력해요. 아직 완전하게 편견이나 선입견이 없다고 할 수는 없고요. 그렇게 살려고 노력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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