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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변인팬클럽 Jul 23. 2021

세상에서 가장 멋진 사무실에서, 파일럿 한슬기님

정해진 답이 없어서 도전할 수있었어요.답이없기도,전부답이기도 하고요


‘여행은 생각의 산파다. 움직이는 비행기나 배나 기차보다 내적인 대화를 쉽게 이끌어내는 장소는 찾기 힘들다. 우리 눈앞에 보이는 것과 우리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생각 사이에는 기묘하다고 말할 수 있는 상관관계가 있다. 때때로 큰 생각은 큰 광경을 요구하고, 새로운 생각은 새로운 장소를 요구한다. 다른 경우라면 멈칫거리기 일쑤인 내적인 사유도 흘러가는 풍경의 도움을 얻으면 술술 진행되어나간다.’ 

알랭 드 보통이 쓴 '여행의 기술'의 한 부분입니다. 


밤과 밤 사이를 날아가는 비행기 안, 캄캄한 기내에서 조심스레 창을 열어 펼쳐진 하늘을 보며, 한국에 두고 온 숱한 고민과 걱정들이 사라지고 다시금 새로운 나 자신이 된 것만 같이 느껴졌던 순간이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개인적으로 고민과 망설임이 많았던 요즘, 더더욱 그 순간이 그리워졌던 것 같습니다. 그러던 와중 오늘의 주인공 한슬기 님을 만났습니다. 정해진 답이 없어 오히려 더 도전을 하고 있다는, 자칭 ‘답이 없다’는 그녀는 파일럿이 되기 위한 훈련을 받으며 1000시간의 비행시간을 채워가고 있었는데요. ‘세상에서 가장 멋진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는 그녀의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합니다.  


https://youtu.be/DwcFLyBO6O0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울진 비행훈련원 한국항공전문학교”에 소속되어 훈련을 받고 있는 한슬기라고 합니다. 조만간 훈련을 수료하고 교관이 되기 위한 준비과정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교관이 되는 것과 파일럿이 되는 것은 어떻게 다른가요?

사실 파일럿은 조종사 자격증이 있다면 파일럿이라고 불릴 수 있습니다. 

다만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민간항공사 파일럿이 되기 위해서는 충분한 비행시간이 필요합니다. 보통 LCC 항공사들은 250~300시간 정도의 비행시간이 필요하고, 대형 항공사들은 1,000시간의 비행시간이 필요합니다. 대한항공이나 진에어 같은 한진 계열의 항공사는 (입사지원자가) 교관으로서 1,000시간 이상 비행시간을 쌓기를 원하기 때문에, (저는) 훈련원에서 교관이 되어 시간을 채운 후, 입사 지원을 하는 프로세스로 가고 있습니다.     


1,000시간이라는 훈련 기간이 얼마나 긴 시간인지 정확히 가늠이 안되는데, 어느 정도의 기간인가요?

보통 학생으로서 (조종사) 자격증을 따는 데까지 걸리는 훈련 시간이 200시간이 조금 안됩니다. 

그 기간이 정말 빠르면 1년, 보통은 1년 반에서 2년 정도 걸려요. 이후 교관이 되어 1,000시간을 채우는데 걸리는 시간이 3~4년 정도 걸립니다. 따라서 학생 때부터 최소 5년 이상은 지나야 파일럿이 될 수 있습니다.



현실적인 질문을 또 드리자면, 파일럿이 되는데 많은 돈이 드는 걸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그 비용을 충당하셨나요?

일단, 이곳 울진 훈련원에서 훈련을 하는데 드는 비용은 초반에 6,200만 원 정도예요. 조종사 자격증이 ‘자가용’, ‘계기’, ‘상업용’ 이렇게 3가지로 나뉘는데, 이 과정을 전부 다 하는 데까지 드는 비용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예전에는 개인이 해당 비용을 전부 자비로 부담하는 게 일반적이었는데, 제가 들어올 때쯤 “하늘드림 장학재단”이 만들어졌어요. 이후 학생들의 신청을 받아 저금리로 대출을 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정말 형편은 어렵지만 꿈을 이루고자 하는 학생들을 선발하여 전액을 지원하는 장학제도도 있어요. 

저 역시 운이 좋게 기준에 부합하여 저금리로 대출을 받을 수 있었고, 필요한 생활비등은 그동안 다른 일을 하며 모아뒀던 돈으로 충당하고 있습니다.     



비용과 시간이 많이 필요한, 파일럿이란 직업을 선택하는 건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거 같아요. 어떤 부분이  가장 큰 고민이었나요?

단순히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뿐만 아니라 그 시간 동안 경제적인 활동을 거의 하지 못하면서, 동시에 결혼과 같은 일반적인 삶의 흐름을 미뤄야 한다는 것이 고민이었어요. 또, 파일럿이 되려고 하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그중에서도 내가 선발되어 5년 후에 진짜로 파일럿이 될 수 있을까? 만약 그 결과가 좋지 않다면 그 나이에 또 어떤 일을 찾아야 하지?라는 고민이 가장 큰 고민거리였어요.      



그런  고민들도 무릅쓰고 파일럿을 해야겠다는 결정을 내리셨네요. 

그런 고민들과, 도전을 하지 않아서 나중에 느낄 후회를 비교했을 때, 왠지 후회가 더 클 것이라고 느껴졌어요.

지금까지 해온 것들을 돌아봤을 때, 평범하게 살아오진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주변에서 말리는 사람도 많았고, 걱정하거나 꾸짖는 사람도 많았어요. 하지만 여태껏 그걸 다 이겨내고 하고 싶은 것들 다 도전하며 살아왔는데, 겨우 몇 살 더 먹었다고 도전을 겁내 한다는 것이 ‘앞으로의 인생을 너무 안정적으로만 살아가려 하는 게 아닌가?’라는 물음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여태까지 내가 해오던 대로 하자!’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백세시대라고 하잖아요. 스무 살 때 봤을 땐 서른이 엄청 어른이라고 느껴졌지만, 서른이 넘어가고 보니 그렇지도 않게 느껴졌어요. 즉 현재 제가 (만약 과정을 끝마치고도 파일럿이 되지 못한다면) 마흔이 늦은 시기인 거 같아 새로운 것을 시작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마흔 또한 새로운 것에 도전하기에 충분히 젊은 나이라고 느낄 것이란 확신이 들어서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용기 있는 도전으로 훈련을 받고 계신 와중에, 최근 코로나로 인해 항공 산업이 많은 타격을 받았어요. 이 같은 외부 요인이 큰 부담으로 다가올 것 같아요. 이런 부담을 대하는 슬기님의 마음은 어떤가요?

제가 교육을 받기 시작한 초반 경에 코로나가 시작되었어요. 사실 이렇게 길어질 줄도 몰랐고, 금방 나아질 줄 알았어요. 그러나 (예상과는 다르게) 1년 넘게 지속되면서 자퇴하는 친구들도 많아지고, 지켜야 할 가정이 있어 꿈을 포기하는 분들도 많았어요. 그런 모습들을 보며 저도 고민을 많이 했어요.

마인드 컨트롤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저만의 방법이라고 한다면 기도예요. 제가 여기까지 온 것도 종교적인 인도가 있었다고 생각해요.‘지금까지 과정이 내 힘 만으로 온 것은 아니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여기에 오게 된 이유가 있을 테니 그 이유들을 찾으며 버티고 있습니다.



만약에 상황에 대비한  슬기님만의 플랜 B가 존재하나요?

저희들끼리도 “너는 플랜 B가 뭐니?”라는 말을 굉장히 많이 해요. 사실 저는 아직까지는 플랜 B가 없어요. ‘언젠가는 플랜 B가 있어야겠지.’라는 생각은 해요. 그래도 아직까지는 벌써 플랜 B를 가져버리면 마음이 떠버릴 것 같아서 같아서… 해보는 데까지는 해보고, 정말 안되면 그때 가서 생각하자는 주의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플랜 B가 없어요.



슬기님이 생각하시기에 하늘에서 생활하는 직업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우선, 항공기가 특수한 장소이기도 하고, 사무실같이 한 곳에 머무르는 게 아니라, 내가 여기서 출발했지만 조금 있다가 다른 나라의 다른 풍경을 볼 수 있다는 것이 너무 매력적으로 느껴졌어요. 그리고 하늘에서 보는 풍경도 너무 멋있었고요.

기장님들도 조종실에서 바라보는 야경이 정말 멋있다 보니, 종종 이렇게 말씀하세요. (조종실은) “세상에서 가장 멋있는 사무실이다.”라고요.   

사실 (파일럿이 되기 전) 승무원으로 일할 때는 (항공기를) 직접 조종하는 게 아니다 보니 막연히 “우와, (새로운 곳에) 도착해서 너무 좋다!”라는 정도였지만, 지금은 훈련을 받으며  직접 조종해보니, “내가 이렇게 크고 복잡한 항공기를 직접 다루면서, 빠르고 안전하게 이동시킬 수 있구나.”라는 성취감을 크게 느끼는 것이 새로운 매력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멋진 사무실!



파일럿을 준비하기 전에 다양한 일을 하셨다고 알고 있어요. 

대학시절 졸업 전에 워킹홀리데이도 다녀왔었고, 대학교 4학년 때는 휴학을 하고 파키스탄에서 핑크 솔트를 수입하는 작은 사업체도 운영했었어요. 이후 승무원으로도 일했었고요. 승무원을 관둔 후에도 마냥 놀기엔 조금 그래서 쇼핑몰도 운영했었어요. 물론 쇼핑몰을 통해 큰돈을 벌지는 못했지만, 어쨌든 그렇게 조금씩 모아뒀던 돈으로 지금 생활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승무원으로의 슬기님


승무원으로서의 경험은 어떠했나요? 

(처음엔) 서비스업이 잘 맞는다고 생각해서 스튜어디스를 하게 되었어요. 고객들을 마주하는 일 자체는 정말 재밌고 잘 맞았는데, 조직 문화가 잘 맞는다고 느끼지 못해서…(그만두게 되었어요). 


그렇지만, 항공업계 일은 너무 마음에 들고, 항상 공항에 가면 설레는 감정이 시간이 지나도 지속되다 보니, 이쪽 일을 계속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계속 고민했어요. 그 와중에 일을 하면서 만났던 기장과 부기장님들과의 대화 속에서 얻은 정보를 종합해 봤을 때, “나도 파일럿에 도전을 해봐도 괜찮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승무원을 그만두고 이 일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이야기를 들어보니 슬기님은 굉장히 단단한 사람 같아요. 본인에 대한 확신이나 단단한 멘털이 생기게 된 계기가 뭔가요?

지금도 (스스로) 단단한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진 않아서 더 단단해지고 싶기도 해요. 사실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굉장히 여리고, 상처도 잘 받는 아이였어요. 그런데, 첫 번째 계기라고 한다면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갔었던 일 같아요. 어떻게 하다 보니 호주라는 땅에 제가 떨어졌는데, 도와줄 사람도 없는 채로 혼자 헤쳐나가려다 보니, 진짜 스스로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곳 사람들이 사는 방식을 보다 보니, “아, 이 사람들은 정말 타인의 눈을 신경 쓰지 않는구나, 자신이 행복하고 자기 하고 싶은 일 하며 사는구나, 그런데도 되게 잘 사네? 정말 아무렇지 않아 보이네? 그럼 지금까지 내가 굉장히 쓸데없는 일에 에너지 소비가 컸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때부터 제 마인드를 바꿔보자 라는 생각을 했고, 지금까지 노력하고 있어요.


호주 워킹홀리데이 시절 슬기님


슬기님의 도전들은 획일적이지 않고, 굉장히 다양한 것 같아요. 그래서 더 멋있는 것 같아요.

사실 얼마 전에 가능성 있는 ‘나’에 도취되어 성취 없이 도전만 하는 것에 대해 비판하는 글을 본 적이 있어요. 예전에는 저도 그런 생각을 했었거든요. ‘너무 내가 한 분야에서 크게 이룬 것도 없이 다양한 분야를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아닌가.’그런데 ‘어떤 한 분야에서 크게 성공하거나 높은 자리까지 가지 못해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며 사는 것이 내가 추구하는 삶의 방식이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나쁘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어요.


요즘 최대 고민은 무엇인가요? 

당장 내가 내일 보는 시험을 붙을 수 있을까? (웃음) 


인터뷰의 제목을 단다면 어떤 제목일 것 같으세요?

너무 어려운데요. 제가 신방과 나왔거든요, 제목이 제일 중요하고 어려운 거더라고요. 음...

‘답 없는 사람’. 답이 없다는 게 되게 부정적으로 쓰이잖아요. 대책 없다 이런 뜻으로요. 근데 정해진 답이 없어서 도전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답이 없기도 하고, 전부 다 답이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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