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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변인팬클럽 Sep 10. 2021

프로게이머 지망생에서 한예종 연출학과로,정진웅님

"단 한 명 만을위한 비효율적인 공연이죠 (웃음)"

“난 원체 무용한 것을 좋아하오. 달, 별, 꽃, 바람, 웃음, 농담 뭐 그런 것들. 그렇게 흘러가는 대로 살다가 멎는 곳에서 죽는 것이 나의 꿈이라면 꿈이오.” 

벌써 3년 전, 재미있게 보았던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입니다. 당시 회사를 다니면서 하루에 제일 많이 스스로에게 던졌던 질문은 “어떻게 하면 더 매출을 많이 발생시킬 수 있을까?” “지금 너무 비효율적으로 일하고 있지 않나?”는 고민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어느 순간부터는 ‘효율'’ 매출'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기가 빨리는 느낌이었어요. 그래서인지 무용한 것, 그 어떤 다른 목적이 아닌 그저 아름답거나, 그저 즐거운 무언가에 대한 갈망이 있었습니다. 


프로게이머를 꿈꾸다, 지금은 한국예술 종합학교에서 연극을 연출하고 계신 정진웅 님은 누군가에겐 늦은 나이 서른에, 누구보다 흥미로운 이야기를 펼쳐가고 계셨어요. 그가 글을 쓴 연극은 단 한 명 만을 위한 거리극 ‘몬몬'입니다. 누군가에겐 돈 안 되는 비효율적인 연극, 하지만 누군가에겐 세상에 단 하나뿐인 이야기인 것이지요. 그 어떤 연극보다 더 극적인 진웅님의 이야기를 오늘은 들어봅니다.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저는 정진웅이고 서른 살이에요. 지금 한국예술 종합학교 연극원 연출과 에 지금 재학 중이고요,  학교에서 만난 친구들이랑 ‘북극 귤’이라는 이름의 공연팀에서 연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30살에 학생이기 쉽지 않은데, 어떤 연유로 지금 30살에 학생이신지 여쭤봐도 돼요?

네. 저는 원래는 일반 대학교에서 예술과 관련 없는 전공을 하며 뮤지컬 동아리를 했어요. 뮤지컬 동아리를 하는데 너무 좋아서 학교를 다시 간 거죠.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스물네 살 때 다시 입학했어요. 

 


앞서 말씀해주신 “북극 귤”이 무엇을 하는 집단인가요?

저희는 지금 ‘팝업 북 연극’을 하고 있어요. 이것이 ‘팝업 북’인데요,

저는 글을 썼어요.  팝업북이 이렇게 펼치면 뭔가 튀어나오는 책인데요.  지금은 들려드릴 수가 없지만, 공연 때는 퍼포머(연기자)가 앞에 앉아 있는 형태예요. 관객이 회당 한 명이예요 그래서 책 앞에 앉아 있는 관객이 직접 책을 읽는 거예요. 가끔 가다 이렇게 글이 없는 페이지는 퍼포머가 직접 내레이션을 틀어줘요.  그러면 관객이 헤드셋을 끼고 듣기도 하고, 이 책 속의 이야기가 이 퍼포머에 의해서 주변의 지형지물을 이용해서 펼쳐져요. 말하자면, 관객이 직접 자기가 책을 읽으면서 이야기를 접해 나가는 그런 식의 공연이에요. 

 

와, 이거 어떻게 만들었어요?

 하나하나 다 그리고 붙여서 만들었어요. 장인정신 ㅎㅎ



 

제목이 뭔가요?

제목은 ‘몬몬읽기’ 예요. 주인공 이름이 몬몬이고 그의 기억에 관한 내용들이거든요.

 

저는 이런 팝업 북 공연을 태어나서 처음 봐요. 전에 없던 것을 새롭게 시작하시는 건가요? 아니면 기존에 있는 형식을 채택해서 하신 건가요?

 

팝업 북 아티스트들은 더러 있는 것 같은데, 이것을 한 이야기로 연극이랑 접목시킨 거는 잘 보진 못했어요.  아마 저희가 최초로 하고 있는 작업인 것 같아요. 단  한 명의 관객만을 위한 매우 비효율적인 (웃음) 공연 이죠.

 

공연의 러닝타임이 어떻게 되나요?

30분 정도. 효율이 낮다 보니 하루에 여러 번하거든요. 하루에 6번에서 8번씩 한 적도 있는데, 그렇게 해봐야 관객 8명을 만나는 거예요



 

장소는 어디에서 진행하나요?

장소는 크게 구애받지는 않아요. 사실 이게 거리극이에요. 거리에서 이루어지는 공연이고, 실내공연도 가능해요. 그래서 (공연을 할 때) 그 주변 공간의 구조나 사물들을 이용하는 퍼포먼스들을 해요.  이제 저희는 Site Specific Performance라고 불러요. ‘장소 특정형 퍼포먼스.’ 그 장소의 기본적인 특징이나 구조를 그대로 이용하는.  가령 (주변에) 계단이 있으면 계단을 이용하고 구조물이 있으면 그걸 이용하는 식이요. 마주 앉을 테이블과 의자만 있으면 공연을 할 수 있어요.

 

연출가의 삶도 생계가 이어져야 지속할 수 있을 텐데, ‘몬몬 읽기’라는 극은 단 한 명을 위한 공연이고 그러다 보면 경제적으로 효율을 내기는 어렵지 않나요.

맞아요.  ‘몬몬 읽기’는 그런 고민을 안 하고 만들었어요. 지금 이 공연은 저희가 좋아서 하는 거예요. 이거는 돈 되는 공연은 아니에요.

 

코로나로 인해서 문화계에서 입을 타격이 매우 클 텐데, 이런 시국으로 인해서 생활이 어떻게 달라지셨나요?

공연할 수 있는 기회들이 확 줄어든 것.  그리고 그 방식들이 촬영 위주로 바뀌어서 이렇게 현장감이 있는 그런 공연들을 잘 못하게 되는 게 아쉬워요.

 

한편으로는 위기가 기회라고, 공연계에서 다른 시각을 가져볼 수 있을 것 같기도 해요.

지금 청춘 마이크에서 (연극을 영상으로) 촬영하는 작업을 하다 보니까 확실히 영상으로서 재미있을 만한 포인트들을 새롭게 발견하는 것 같기는 해요.  원래 공연으로 했을 때는 안 했던 것들을 많이 시도해 보고 있거든요.  또 고민도 하고요. 그런데 사실 위기는 그냥 위기인 것 같아요. 저는 위기가 빨리 끝나면 좋겠어요.



 

다른 공부를 하시다가 연극 공부를 위해 재진학 하셨다고 하셨어요. 원래는 어떤 공부를 하셨나요? 

네, 원래는 그냥 대학생이었어요. 프로게이머 지망생이었다가 다시 입시 공부를 해서 일반 대학교에 진학했어요.

 

본인이 하던걸 과감히 관두고 어떻게 다른 진로를 걷게 되었나요?

그때가 고1 때였는데, 17살도 어린 나이지만 저보다 어린데도 잘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거예요.  초등학교 6학년 정도의 친구들도 실력이 뛰어나고요.  그런 걸 보니까 ‘이게 진짜 재능이 있어야 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후 위기감을 느껴서 그냥 그만뒀어요.

 

미련 없이 그만두셨네요.

고2 때부터 공부를 시작했어요. 그동안 너무 공부를 안 했죠. ‘난 이걸(프로게이머) 하고 살 거야!’라는 목표가 없어지니까, 뭘 하고 살아야 될지 몰랐죠. 공부해서 대학 가는 게 그때는 일반적인 목표잖아요. 그래서 공부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일반 대학에 진학하셔서 재밌어 보여서 들어간 뮤지컬 동아리에서 또 인생이 바뀌셨어요.

네, 너무 좋았어요.

 

뭐가 그렇게 좋으셨어요?

뭐가 좋았는지 모르겠는데.  그냥 공연을 올리는 것, 공연을 보는 것, 공연을 만드는 과정 자체가 다 너무 좋았어요. 되게 낭만적인 그런 순간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다들 스무 살 스물한 살 막 이럴 때 아침 10시부터 밤 10시까지 붙어 있으니까. 공연 후에 회식하고 그런 게 생각이 많이 나고 (지금도) 힘이 많이 되죠.

 



그렇게 공연에 매력을 느껴 한예종에 진학하셨어요. 진학해서는 또 느낌이 다를 텐데, 예술 전공을 하며 더 좋았던 점 혹은 새롭게 느낀 어려움이 있었을지요?

한예종이라는 학교가 갖고 있는 시스템은 너무 좋아요.  시설이나 시스템 그리고 비슷한 관심사의 사람들을 다양한 분야에서 만날 수 있어서 너무 좋은데 벽이 크게 느껴졌어요. 열등감 혹은 예술 창작에 있어서 (다루어지는) 어떤 가치들에 관한 것이요. 그래서 휴학을 했어요. 휴학을 하고 워킹홀리데이를 갔어요.

 

입학 후에 혼자 첫 공연 연출을 한 이후에 ‘나’라는 사람에 대한, 제 작업 스타일 그리고 제 실력에 대해 자존감이 엄청 낮아졌어요.  그러다 보니 자기혐오가 엄청 심해지고. 일단 다 제쳐두고 어디는 가야겠더라고요.  그래서 도피하듯이 1년 정도 갔다 왔어요.  그때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다시 마음을 다잡고 제대로 해야겠다.’ 고 마음먹고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어요.

 

다른 사람이 볼 때 과감히 결정하고 추진력 있게 일을 진행하는 것 같아 보여요.

남이 볼 때 결정도 잘하고 추진력 있게 보일 수 있을 것 같은데, (속마음은) 저도 업 다운 엄청 심하고, 갈등을 하는 시간도 엄청 길어요.  

 

본인이 어떻게 고민하고 결정을 내리는지 궁금해요.

저는 도피를 하는 편이에요. 워킹홀리데이도 제가 정신적인 충격을 받고 도망가듯이 떠났고요, 그런 식으로 현실을 다 제쳐놓고 온전히 나에 집중해서 고민하는 스타일인 것 같아요. 그런데 조금 무책임한 어떤 방법인 것 같기도 해요.  왜냐하면 그 제쳐놓은 것들이 많으니까요. 

  

 

조금 흥미로운 질문을 던져볼게요, 혹시 자기 자신이 주인공인 작품을 연출한다고 가정하면 어떤 극을 만들고 싶으세요?

너무 좋은 질문인데요. 왜냐하면 제가 졸업 공연을 해야 되는데, 졸업 공연의 주인공이 저예요. 그런데 제가 출연하진 않고 제 자전적인 이제 경험들을 재료로 쓴 이제 이야기예요.  그것도 거리극이에요. 제가 살았던 집이  얼마 후 재건축이 되어요.  그래서 이 집 그리고 9살부터 내가 살던 방에 대한 이야기, 쭉 살던 내 방이 없어질 때의 이야기예요. 거기에 드나들었던 사람들부터 시작해서 내가 갖고 있던 그 공간에 대한 기억들, 물건들 이런 것들이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걸까?라는 질문으로 시작을 한 작품을 준비 중에 있습니다.

 

작품을 위해 어떤 준비를 하고 계세요?

연대기를 써봤어요. ‘그 방에서 있었던 일들이 뭐가 있었을까?’라는 그 제 방의 연대기를 써본 경험이 되게 재미있었고, 옛날 생각도 많이 하면서 기억 안 나던 것들을 계속 기억하려고 애쓰다 보니까 새롭게 떠오르는 기억들도 있고, 무엇보다 ‘나’를 돌아봤던 기회였어요.

 


 

흥미로운 이야기 잘 들었어요. 일반적인 질문도 드릴게요, 어떤 삶을 살고 싶으세요?

재작년부터 ‘건강’이 화두였어요. 제가 뭔가를 할 때, 스스로를 갈아 넣으면서 하는 습관이 있어서 어느 순간 엄청 지치게 되더라고요. 또 한 번 소진되면 아예 아무것도 안 하고 싶어 지고.  이런 것들이 자주 반복되다 보니까 건강에 (이상) 신호들도 오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내 건강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작업이든 일이든 뭐든 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요즘 등산을 자주 다니는 편이고 최근에 요가를 시작했어요.

 

최종 목표가 무엇인가요?

최종 목표는 없어요 아까 말했던 건데.  뭔가 목표가 너무 강하고 분명하면 그거를 이뤄야겠다는 마음 때문에 제가 소진될 것 같아 목표를 세우지 않으려 해요

버킷리스트처럼 제가 하고 싶은 리스트들은 있어요. 하나는 에든버러 페스티벌이라고 제가 너무 좋아하는 연극/거리극 축제인데 거기에 참여하고 싶어요. 그리고 제가 살았던 과천이라는 동네를 기반으로 문화 기획 혹은 창작 활동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최근에 생겼어요.



 

오늘의 인터뷰에 어떤 부제가 달렸으면 좋겠나요?

어렵다.(웃음)

 

그냥 제가 요즘 좋아하는 노래. 가사 한 구절 소개할게요.

악뮤의 프리덤이라는 노래 중에 “저질러. 네가 타고난 걸”이라는 구절이 있어요.  그 말이 너무 좋더라고요. 그냥 타고난 게 뭐 재능 이런 말이 아니라 그냥 ‘있는 그대로 너 자신을 그냥 저질러버려라!’ 이런 말인 것 같아서 그 부분을 되게 좋아해요.

 

소름 돋았어요. 너무 좋은데요.

좋아요. 좋습니다. 그 마지막에, 지금 엔딩 크레디트에 그 악뮤 프리덤 깔아주세요.(웃음)

 

저작권 안돼 안돼(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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