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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변인팬클럽 Oct 08. 2021

대기업을 떠나 아프리카 작은 나라 나미비아로,임주환님

"아프리카 사람들의 일상과 우리의 고객의 삶이 크게 다르지 않아요"

비가 추적추적 오는 금요일입니다. 다들 잘 지내고 계신가요? 

올 9월과 10월은 곳곳에 끼여있는 연휴들 덕에 조금은 여유롭게 가을을 즐길 수 있는 것 같아요. 

저는 매우 무계획, 즉흥적으로 일상을 보내고, 회사에서는 매우 체계적인 계획을 세우는 사람이에요. OKR, KPI 안에서 생각하는 것이 매우 익숙하고요. 회사에선 하루하루가 너무 금방 흘러, 시간에 대한 주도권을 내가 잡으려면 체계적으로 계획을 세워야 하겠더라고요. 1년의 계획을 분기, 월, 주, 일 단위로 쪼개고 중간중간 체크를 하는 것이 속-시원한 사람이 되었어요. 그래서일까, 최근 돌아보니 생각보다 회사에서 제가 계획한 대로 만들어진 프로젝트들이 많더라고요. 신기하고 재미있었어요.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왜 나는 내 인생에 대해서는 제대로 생각해본 적이 없지?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쭉 나열해보고, 그걸 이루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이 없지?’라는 의문이요. 진짜 그랬거든요. 항상 단기 목표, 지금 당장의 입학, 취업, 이직에만 발 동동 이었지 먼 훗날 내가 살아가고픈 모습을 마주한 적이 없었어요. 


그러던 차에 오늘 인터뷰의 주인공을 만났습니다. 잘-다니던 대기업을 그만두고, 공정무역 가게 ‘더 페어 스토리'의 사장님이 된 임주환 님은 결혼 당시 아내 분과 마주 앉아 ‘우리가 앞으로 하고 싶은 것’ 리스트를 쭉 적어보셨다고 해요. 생각보다 빨리 리스트를 완성하고, 퇴사하여  ‘내 몸에 맞는 일'을 시작하실 수 있었다고 하는데요. 끊임없이 머릿속으로 내가 원하는 그림, 내가 바라던 무언가를 계속 그려보셨다고 해요. 설사 그게 ‘정답'은 아니어도, 내 ‘개똥철학'이면 되니까요! 오늘 이 인터뷰를 다 보신 후엔, 모두 자기만의 리스트를 적어보시면 좋겠어요. 




자기소개해주세요 

제가 다른 분들의 인터뷰를 볼 때, 자기소개의 처음을 어떻게 하느냐가 인터뷰의 결을 결정하더라고요. 자기 인식이잖아요. 그래서 잔뜩 고민을 했어요. 

가장 베이식하게 시작할게요. 저는 성수동에서 공정무역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임주환이라고 합니다. 저에게 성수동, 공정무역이 가지고 있는 함의도 있고요. 회사를 운영한다는 것도 큰 부분이고요. 



‘성수동'부터 먼저 시작해볼게요. 성수동에서 공정무역회사를 운영하고 계세요. 이곳을 선택한 이유가 있으실까요?  

특별한 이유가 있죠. 저희 집이 성수동입니다. (웃음) 회사가 집 근처였으면 좋겠었어요. 

나머지는 저희 회사가 공정무역 회사이긴 한데요, 저희가 시장에 맞는 제품을 만들지는 않아요. 

우리 제품은 고객을 위한 것이긴 하나, 브랜드가 가지고 있는 생산자 이야기를 드러내야 하다 보니 매출을 많이 못 내요. 

초기에 매장을 낼 때 이미 인기 있는 상권의 임대료를 내면서 운영을 할 수는 없었어요. 그래서 어떤 색을 가져야 할까 고민하다가, 고객이 우리 브랜드를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는 쇼룸을 내는 것이 저희의 전략이었어요. ‘서울숲 오시는 길에 한번 들러 보고 가세요’라는 멘트를 할 수 있을 정도면 되었어요. 

그 당시에 임대료도 쌌고요. 그래서 오케이! 그런데 의도하지 않게, 이 동네가 뜨면서 큰 노력하지 않아도 적당한 매출을 내주는 구조가 되었어요. 상권만큼은 못 내지만, 원하는 것 이상은 내고 있어요.



회사의 목표를 적절하게 잡으신 것 같아요. 크고 대단한 목표를 잡기 보다는요. 그게 쉽지 않은데요. 

제 그릇이 그 정도인 것 같아요. 

처음에 대기업을 퇴사하고 창업하면서 구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MD, 세일즈, 디자인 모든 파트 별로요. 그러다 보니 초기에 매출 한 달에 오백만 원 나오는데 사람은 네다섯 명이 있었어요,초기에. 투자라고 생각했었어요.(웃음) 작은 회사를 운영하는 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던 거죠. 이 시간을 초기에 겪었고요 내 옷에 맞는 회사를 세팅해야겠다로 정리했어요 크던 작던 우리 살림에 맞게 구조를 짰어요.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새롭게 구조를 만드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으셨나요?

회사를 15년 넘게 다니는 동안 언젠가는 창업할 거야 생각했어요. 

대리 달기 전에는 ‘최소 대리는! (해야) 업무 전문성이 생기지'라고 대리 다니까 ‘과장은 달아야 해!’  과장되니까 ‘더 배울게 많아’ 했고요, 그 뒤엔 ‘팀장은 달아야 해 팀을 관리해봐야!’ 이러면서 올라왔어요. 

그런데  회사를 나오고 나니까 전혀 다른 게임이더라고요. 대기업을 하는 것과 조그마한 회사를 하는 건 달라요. 본질적으로. 어떨 때 (대기업에서 배운 것이) 도움이 안 될 수도 있고요, 오히려 너무 배운 게 많아서 틀린 게임을 할 수도 있어요. 지금 나오세요! 하고 싶은 게 있으면! 



그렇게 고민이 많으셨는데요, 어떻게 하다 다니시던 회사를 그만두게 되셨어요?  

제가 S 통신사에 다녔어요 다들 부러워하는 회사 복지, 선망 모든 게 좋은. 그런데 저는 제가 너무 꿀단지 안에 있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계속 꿀에 발이 담가져 있는 거죠. ‘아 이러다가 내가 못 날아오를 수도 있겠네’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 자체가 얘는 생각이 틀린 거예요. (웃음) 우리말로 싹수가 노란 거죠. 

또 하나는 제가 조직 지향적이 아닌 것 같긴 해요 지나고 나서 알게 된 거죠. 이런 생각이 드니까 일정 이상 몰입이 멈추는 거예요. 

회사는 시키는 일을 아무 무리 없이 챠르르륵 해야 하는 곳인데요. 제가 대한민국의 대기업 직장인의 전형이 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 들었어요. 저는 개인주의적이고 호불호에 대해 되는대로 하는 스타일 이거든요ㅡ 그러다 보니 예측 가능하지 않죠. 그런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회사원은 예측 가능해야 하잖아요. 그래야 중용될 수 있고요. 저는 그게 안돼요.


 

그런 것 치고 오래 일하셨는데요?

회사를 한다는 건 매일매일 고민할 수밖에 없어요. 제 스스로 동기를 만들어야 해요. 

매일 물어봐요 ‘너 오늘 출근하고 싶어?’에 대한 답이 있어야 해요. 그리고 일 년에 한두 번씩은 ‘내가 이 회사를 제대로 운영하고 있는 건가?’ ‘이게 나에게 맞는 옷인가?’를 물어봐요. 오늘 회사를 때려치운다면 나는 무얼 하고 싶은지를 생각해보는 거죠. 근데 그게 딱 이 자리예요. 회사를 그만두고 다시 한다 해도 요런 거 (지금 하고 있던 거) 하겠네 라고 다시 시작해요. 

내가 미련이 남아서 회사를 그만 못 두는 게 아닌가, 매몰비용 때문에 내가 잡혀서 더 나쁜 결정을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해봐요. 일 년에 한두 번씩. 그래도 딱 요기 지금 하는 일에요. 그래 맞다 일 년 더 해보자 라고 결심하고 다시 해요. 



그런 확신을 어떻게 얻으세요? 

대한민국 사회에서 내가 맞는 길인지 잘 모르겠어요. 어떻게 보면 관계없어요. 내가 선택하고 내가 누리고요. 일종에 개똥철학이죠. ‘임주환 잘하고 있네' 스스로 생각하면 되는 것 같아요 맨날 내가 힘들어하고 있고 왜 하고 있는지 모르는데 계속하고 있는 건 정말 멍청한 짓이라고 생각해요. 아무도 그걸 원하지 않아요. 본인은 왜 이 일을 하는지 고민하고 있어야죠. 안 그러면 그건 아무도 구제해주지 못해요.

 

주체성이라는 성향을 살면서 배우셨나요? 아니면 타고나신건가요? 

제가 문제 해결하는 방법 중 한 개가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거예요. 힘들었던 원인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져요. 예를 들면 사람들이 콤플렉스 있잖아요 저는 서울의 K대를 나왔는데 대기업에는 K대가 콤플렉스거든요. 그것도 서울대 경제 경영이 걸 따지니까요 엉망이죠.(웃음) 디프레스 되면 어디까지 내려가는지 내려가 봐요. 그날 물어봐요 스스로에게. ‘왜 디프레스 됐어?’ ‘내가 그걸 어떻게 극복하지’ ‘다른 사람들 더 안 좋은 대학 나와도 잘 살고 있잖아’ 나 혼자 나랑 그 얘기를 끝까지 해요. 스스로 기분을 좋게 하지 않고요 실제로 마음 상한 게 맞으니 그걸 피하지 않고 끝가지 밀고 내려가요. 끝까지 내려가 봤자 저 밑까지는 실제론 내려가지 않아요. ‘그래서 뭐 바꿀 거야?’ ‘그게 인생에 뭐?’‘그러면서 밑바닥을 딛고 올라올 수 있더라고요. 제가 그 대학을 나왔다는 게 바뀌진 않잖아요. 


다시 하시던 ‘업’의 이야기로 넘어갈게요, 왜 공정무역을 시작하게 되셨어요? 

일 년에 한 번 나미비아로 직접 출장을 가요. 매년 비행기 안에서 스스로에게 똑같은 질문을 하는 거예요. 내가 왜 펜두카를 하고 있을까 하는 질문이요. (웃음) 


펜두카는 남미비아라고 하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나라에 있는  20년 된 단체예요. 그 단체는 일단 들어오면 10년 넘게 일하는 거예요. 현지 사람들에게는 너무 좋은 직장인 거예요. 그 회사 때문에 자기가 잘 살고 있고요. 

사실 객관적으로 들어가면, 이 일의 시작점을 ‘아프리카에서 가장 못 사는 나라가 어디지?’ ‘거기서 제일 도움이 필요한 단체는 뭐지?’ ‘어디가 제일 적합하지’ 이렇게 접근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저는 그런 복잡한 구조가 중요치 않아요.자기 자신 안에 이유가 있어야 해요. 우연히 알게 된 단체가 있었고, 가보니 너무나 열심히 일하고 그래서 도와주고 싶다. 그걸로 충분해요 윗사람이 시키는 게 아니잖아요. 


그러면서 언제가 제일 즐거웠지 생각해보면 딱 한 장면이 생각나요.  


매년 펜두카에 갈 때, 네덜란드 설립자분이랑 같이 스케줄을 맞춰서 가요. 피스콥이라고 미국에 있는 우리나라의 코이카 같은 단체 분들도 와계세요. 현지 매니저분들도 계시고요. 오면 ‘해지는 저녁 보면서 맥주 마셔야지'라고 하고 삼삼오오 모이기 시작해요. 

파운더, 친구분, 나, 우리 집사람, 피스콥, 현재 매니저 가 모이는데요, 다 인종과 나라가 달라요. 여행지에서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사람이 아니잖아요. 몇 년째 같이 활동하고 있는 사람이죠. 일 년에 한두 번밖에 못 보는 관계이기도 하고요. 이 사람들과 가족 얘기 펜두카 얘기도 하고요. 내가 어디 가서 이런 사람들과 이런 모임에서 이런 얘기를 할 수 있을까. 그러다 내가 십 년 뒤에도 이런 자리에서 이렇게 놀고 있으면 된 거지 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만큼 이상적인 게 뭐가 있어요. 이렇게 흘러가면 되지요.  



명함에, 스토리 텔러라는 단어가 있어요. 어떻게 하다 이런 직함을 가지게 되셨어요? 

펜두카의 본질이 뭘까를 고민 많이 해요. 

처음엔 제품이라고 하는 매개체를 통해서 아프리카의 사람들 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 목표였어요. 그래서 당시엔 호기롭게 명함에도 story teller 이렇게 적었었어요. 사람들이 공정무역을 잘 모른다고 생각했고요. 공정무역에 대한 이야기를 잘 전달하면 사람들이 이해해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한 5~6년 되어도 우리의 코어 고객이 생기지 않는 거예요. 5년이나 떠들었는데 왜 이럴까 고민이 생기기 시작된 거죠. 

그때부터 ‘메시지 양은 중요하지 않다, 고객 공정무역이 무엇인지 모르지 않다.라고 생각했어요. 슬로건을 정하고, 키워드를 정해서 매년 고객이 먹기 쉽게 잘 전달해야 가능한 것이지, 물량으로는 안된다는 것이 저희의 변화한 생각이었어요. 저희 제품이 아프리카에서 만든 자수가 기본이잖아요. 이 자수로 일상을 표현해요. 고기 잡는 거 요리하는 거 애 혼내는 거.. 등등이요.  그 일상이 한국의 우리 고객의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거든요. 그 감정도 같이 느끼고요. 그러면서 아프리카의 일상 중 재미난 이야기를 끌고 와서, 우리 고객들에게 새로운 영감을 주는 지점을 찾아보려고 하고 있어요. 

그러고 나서 이제 인스타나 댓글에서 우리가 의도한 고객들의 반응이 들어와요. 

공감의 메시지들이요. 아 이제 조금씩 펜두카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공감하는 사람들이 쌓이고 있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을 느껴요. 



앞으로는 또 어떤 방향들을 생각하고 계세요? 

자수제품이 많지만, 자수 자체가 우리 브랜드의 메인은 아니거든요. 거기 있는 사람들의 삶, 그들의 이야기 그것들을 가지고 한국에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이 중심이고요. 

그래서 다른 것이라도 돼요 그래픽, 영상 이라도요. 그걸 우리 고객들에 맞게 어떻게 잘 찾아볼 수 있을까 고민이에요. 

자수는 어떻게 보면 되게 재한 적인 매게체라서요. 그래서 다른 어떤 것들을 통해서, 아프리카에서 봤던 우리가 보았던 재미있는 이야기를 어떻게 잘 전달할 수 있을까 가 고민인 것 같아요. 


반대로 아프리카에 계신 펜두카 분들도 한국의 펜두카에 대해 알고 계신가요? 그 반응도 궁금해요. 

제가 펜두카에 가면 파운더가 무조건 PT 시간을 만들어요 그래서 다음날 아침 열 시에 다 모여요. PT 자료를 만들어서 ‘ 나 한국에서 왔고 한국은 여기이고요. 여기서 만든 자수는 한국에서 이렇게 팔리고요 여기서 자수 패치는 이런 가방과 상품에 붙여서 팔리고요” 이런 얘기를 해요 

사실 펜두카에 계신 분들 중 끝단에 계신 분들은 천을 받아 자수만 하시거든요. 그 자수가 쿠션 커버인지 테이블 매트로 만들어지는지 몰라요. 재단해서 오니까요. 그게 재단 끝나면 센터에서 와싱하고 미싱 하거든요 그러면 제품이 만들어져요. 그래서 제품이 뭔지 모르세요. 

완제품을 못 보니, 사진으로 실제로 판매되는 상품을 보여주는 의미도 있지만 

평생 그곳에서 자랐고, 일하는 분들에겐 일단 아시아에 온 누군가가 오는 것도 처음, 내가 만든 제품이 한국에서 이렇게 팔린다는 것도 처음 경험해보는 것이에요. 그래서 그것 자체가 영감이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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