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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 Aug 25. 2022

(9화)오늘 내 기분은 롤러코스터

하나 되면 하나가 안되고

#이게 된다고?     


아침에 눈을 뜨고 식탁에 앉은 하은이가 눈을 못 뜨고 천정을 바라보고 앉았다. 변함없이 사던 무난한 딸기맛 대신 리치 맛 요플레를 샀다. 나에게도 적지 않은 변화가 사소한 요플레 맛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다. 막상 뚜껑을 따면 아이가 좋아하는 리치 알맹이가 겨우 한알 다져놓은 것 밖에 안 들어 있지만 향만큼은 리치 열 알이나 들어있는 듯하게 풍겨 나온다.     


요플레를 한입 입에 넣더니 눈이 조금씩 떠지는가 보다. 두 스푼 입에 넣을 때쯤 식탁에 올려둔 <장수탕 선녀님>을 곁눈으로 쳐다본다. 그러더니 책 표지를 넘겨본다. ‘쓱’ 보더니 다음장을 읽는다. 한 장에 글이라고 해봐야 몇 줄 되지도 않는 책이다. 그런데 그림이 얼마나 웃기는지 내가 읽어도 너무 재미있다.


    


 

‘아~ 엄마랑 목욕탕 가면 뜨거운 물에 얼마나 들어가기 싫었는지... 살이 벌겋도록 때 밀고 나서 마시는 요구르트가 얼마나 시원 달달 새콤했는지 몰라.’     


이런 생각에 빠져들 만큼 엄마인 내가 읽어도 재미있다. 신기하게도 책은 그냥 재미없고 읽기 싫다던 애가 요플레를 숟가락으로 떠서 입에 넣으면서도 눈은 계속 책에 가있다. 심지어 먹던 숟가락을 입에 물더니 한 장, 또 한 장 넘기는 게 아닌가. 내가 살다가 이런 광경을 볼 날이 오다니. 그것도 독서록을 쓰기 위해 읽는 책이 아닌 아침 밥상머리에서 읽는 책이라니.

    

‘이 시시한 방법이 된다고?’   

  

# 뽀송하다 못해 빠짝 마른 습도 0도인 기분   

  

하은이 학교 보내고 집에 와서 빨래를 돌리러 베란다로 갔다. 세탁기에 하얀 빨래를 골라 넣으며 세탁기 위에 놓인 건조기를 보니 미소가 절로 나온다. 비올 듯 흐린 날씨지만 우리 집 집안 습도는 0도인 듯 기분도 뽀송하다. 건조기를 사지 않았을 때는 건조기 좋다는 소리를 들으면     

 

“나는 그래도 햇빛에 하얀 빨래 바짝 말리고 개서 정리할 때 기분이 좋더라. 옷감도 상하고 많이 구겨진다던데...”     


이런 소리들이나 하며 건조기를 못 산 나름의 핑계를 댔었다. 햇빛은 무슨, 비 오는 장마철이며 한겨울 햇빛도 안나는 영하로 내려가는 날씨엔 어쩔 건데. 물론 옛날엔 다 그러고도 잘 살았다. 하지만 지금은 더 편히 잘 산다.

남편을 조르고 졸라 12개월 할부로 들여놓은 세탁기와 건조기를 타워로 올려놓으니 마음이 단숨에 올라가는 63 빌딩 엘리베이터급이다.     

끝난 세탁물을 건조기로 올려 넣고 건조기용 섬유유연 시트 한 장 넣고 버튼을 눌렀다.




커피 한잔 내려서 한 숨 돌리려는데 문자 알림이 왔다. 3일 후 우리 카드 결제일이라며 친절하게 1원 단위까지  잘 적혀있다.


‘그러네 카드 결제일이네. 잠깐, 예빈이 엄마가 빌려 간 돈 주기로 한 날이 어제 아니었나?’

    

#예빈 엄마 그러면 안 되지~

    

톡으로 예진 엄마에게 입금은 어찌 되는지 묻는데 꼭 내가 돈을 빌린 사람 같다. 받는데 당당하게 말하지도 못하고 돈 독촉하는 사채업자 같을까 봐 최대한 예의 있게 톡을 남겼다.

그런데 읽지를 않는다. 불안하다. 커피를 마시면서 자꾸 톡만 확인하게 된다.


열흘 전 예빈 엄마가 어렵게 200만 원만 빌려달라는 소리를 할 때 거절했어야 했다. 유치원 때부터 알던 하은이 친구인데다 급하게 친정엄마 병원비가 모자란다며 남편 월급이 열흘 후에 들어오니 그때 준다는 말을 믿었다. 카드로 쓰면 안 되냐고 나름 거절도 해봤다. 이번 달 카드를 많이 써서 본인 카드 한도가 안된다길래 안쓰러워 빌려줬는데...     


‘제발, 예빈 엄마 톡 좀 읽어. 응? 아니지? 줄 거지? 나도 안돼. 남편한테 생활비 받아서 빌려주고 카드 쓰고 결제하는 건데... 수입차 탄다고 나 돈 많은 거 아니야~ 하...’  

   

혼잣말만 중얼거리며 카톡만 바라본다. 마셔보진 않았지만 사약이 있다면 지금 마시는 커피맛과 같을 것 같다.    

  

35층 아파트에 산다지만 내 집이 아닌 은행이 주인이 집에 빌려 사는 입장이다. 수입차를 끌고 나가니 다들 부러운 시선으로 보지만 안에 타보면 10년이 넘은 중고차다. 악착같이 생활비 아껴 조금씩 모은 돈에 생일날 남편한테 조금 보태달래서 2년에 하나 산 명품백 몇 개가 나를 보여주는 자존심일 뿐이다. 가진 게 없다.  

    

드디어 예빈 엄마가 톡을 읽었다. 그런데 답이 없다.

한참 지나서 답이 왔다. 정말 정말 미안하다며 친정 일이라 남편한테 얘기를 못했다며 생활비를 현금으로 안 주고 카드로 줘서 현금이 없단다.  

   

‘하. 예빈 엄마 이럼 안돼. 나도 없는 건 마찬가지야. 나도 남편한테 생활비 받는 전업주분데 당장 카드 결제일인데...’     



갑자기 식은땀이 난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돈 나올 구석이 없다. 돈거래는 절대 하지 않는 건데 내 잘못이다. 뽀송했던 마음이 갑자기 먹구름이 잔뜩 끼다 못해 벼락 맞은 기분이 되었다. 풍족하진 않지만 남편이 주는 생활비 내에서 한 달 알차게 잘 꾸려 왔던 나인데. 돈 걱정은 해보지 않았는데 갑자기 카드결제를 못 할 상황이 되니 손이 떨리고 심장이 벌렁거린다. 남편한테 말할 수 있을까?


‘명품백이라도 하나 당근에 내 놓아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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