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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 Aug 23. 2022

(7화) 1학년 핸드폰 꼭 필요한가?

학교에서 걸려 온 수신자 부담 전화

#수신자부담 전화가 걸려 오다.   

  

(02-****-****) 학교가 끝나는 시간 걸려오는 요 알 수 없는 번호는 놓치지 말고 받아야 한다. 학교 본관 도서관 앞에 있는 공중전화에서 걸려오는 하은이 전화다.  

    

“엄마. 나 끝났어요. 친구랑 운동장에서 15분만 놀고 전화할게요.”  

   

초등학교 입학하면 다들 키즈폰을 사줘야 한다는 주변 엄마들 말에 내 팔랑귀가 흔들렸다면 지금쯤 하은이 목에도 핑크색 키즈폰이 걸려있을 것이다. 끝나는 시간에 딱 맞춰 매일 교문 앞에서 하은이를 기다리면서 혹시나 아이를 놓치기라도 할까 봐 눈에 불을 켜고 집중했었다. 어쩌다 집안일을 하다 시계를 보고 늦어서 뻘뻘 땀을 흘리며 달려가며 마음 졸였던 날도 있었다. 그래서 핸드폰을 사줘야 안심이 되려나 고민하던 참에 주변 엄마들이 키즈폰이라도 사줘야 안심이 된다며 나를 부추겼다. 미주 엄마가 수신자 부담 전화를 말해 주지 않았으면 나도 이미 사줬을 거다.   

  

학기초 하은이에게 핸드폰 없는 친구가 몇 명이나 되냐고 물었더니 반에 세네 명 정도 된다고 했다. 하은이 말고도 셋은 더 있으니 안심이 되었다. 미주도 아직 핸드폰이 없다는 말에 내 예상과 다르지 않음을 알았다. 


어느 날 미리 도착해 교문 앞에서 하은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미주 엄마도 조금 뒤 와서 같이 기다리고 있는데 미주와 통화를 하길래 핸드폰을 사줬냐고 물었었다. 도서관 앞 수신자부담 전화기로 전화를 하면 교문 앞에서 만나기도 하고 본인이 늦을 땐 도서관에서 기다리라고 한다고 했다. 그때 학교에 수신자부담 전화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렇게 하은이도 수신자부담 전화기를 사용하게 되어 핸드폰은 사주지 않았다.    


 

(02-****-****) 하은이다.    

 

“엄마. 나 교문 앞으로 갈게요.” 

    

집으로 돌아오며 하은이가 핸드폰 좀 사주면 안 되냐고 졸라댔다. 수신자부담 전화가 줄이 길어 한참 기다려야 한다며 볼멘소리를 한다. 미주 엄마가 핸드폰은 최대한 늦게 접하게 해 주는 게 좋다길래 흔들릴 때마다 핸드폰을 두고 아이와 씨름하는 상상을 하며 단호하게 거절했다.

아직 학교와 집만 오고 가니 핸드폰이 필요하지 않다고 설득하며 달래기용 아이스크림가게로 향했다.

     

학교가 끝날 시간인데 02로 시작하는 번호로 전화가 오지 않아 초초해하고 있었다. 

010-****-****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엄마. 나 하은이. 이거 은진이 핸드폰인데 빌렸어. 운동장에서 15분만 놀게요.”


그렇게 가끔 02 번호가 아닌 은진이 번호로도 전화가 걸려왔다. 

수신자부담 전화 대기줄이 길면 지나가는 친구에게 한 번씩 전화기를 빌려 내게 전화를 했더니 반 친구 이름과 전화번호가 내 핸드폰 연락처에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했다.     


#드디어 터질게 터졌다. 

    

늦은 오후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하은이 엄마세요? 하은이 같은 반 친구 은진이 엄마예요.”    

 

얼떨결에 전화를 받고 당황스러웠지만 모처럼 같은 반 친구 엄마 전화를 받고 가깝게 지낼 친구 엄마가 생기는 줄 알았다. 그런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하은이가 은진이 전화를 빌려서 통화한 게 신경이 쓰였나 보다. 내 입장이야 아이들이 잠깐 전화 한 번씩 빌려 쓴걸 너무 예민하게 군다고 생각이 들었지만 최대한 정중하게 사과했다. 

    

“죄송해요. 제가 하은이에게 얘기할게요. 수신자부담 전화 대기줄이 길어서 그랬나 봐요. 다음부턴 주의시킬게요...”   

  

“아니에요. 제가 은진이보고 모르는 사람에게 전화기를 빌려주지 말라고 교육을 시켰는데 모르는 번호가 몇 번 찍혀 있길래 은진이에게 물어봤어요. 하은이가 쓴 거라고 하길래 하은이는 괜찮다고는 했어요. 그래도 위험하니까 절대로 다른 사람한테 전화기 빌려주지 말라고 했어요.”     


‘지금 뭐래니 이 엄마. 싫으면 싫다 하면 되지. 뱅뱅 돌리면서... 괜찮았으면 나한테 전화를 왜 해? 싫으니까 하지 말란 소리 아냐. 참나.’


     

자존심 상하고 쪼잔한 마음 씀씀이에 짜증이 났지만 최대한 냉정하고 교양 있게 말했다.     


“아니에요. 제가 하은이한테 확실하게 말할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앞으로 그런 일 없을 거예요. 죄송합니다. 신경 쓰게 해서.”     


전화를 끊고 어찌나 마음이 불편한지 애꿎은 하은이에게 화를 냈다.    

 

“하은아. 너 앞으로 은진이 전화로 전화하지 마. 줄이 길어도 수신자 부담 전화로 해.” 

    

“왜? 은진이가 괜찮다고 해서 빌린 건데? 그리고 다른 친구들도 줄 서 있으면 자기 꺼 쓰라고 빌려줘.”  

   

“암튼. 은진이 꺼는 빌리지 마. 은진 엄마가 안된다고 하니까. 알았지?”  

   

하은이는 별일 아니라는 듯 알았다고 대답하고는 방으로 들어갔지만 나한테만 아직도 그날 일이 별일로 남아있다. 좀처럼 벌렁이는 가슴이 가라앉질 않는다.


‘이참에 확 핸드폰 사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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