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부엌, 아버지의 부엌

시처럼 읊어볼까 편지로 적어볼까

by 까마귀소년

사진 출처: www.pixabay.com




부엌에서는
언제나 구수한 냄새가 나요.
한 가족의
사랑이 익어가는 냄새


문정희 시인의 <작은 부엌의 노래> 일부를 허락 없이 조금 빌려다가 최신판으로 개정해 보았다. 세상의 모든 부엌들이 여성의 전유 공간도, 설움과 애모의 공간도 아니기를 기원하는 마음을 담았다.


어렸을 적, 시골에 계신 할머니 댁에 가끔 놀러갔다. 지금만큼 연로하지 않으셨을 때였고 짧으면 이틀, 길면 1~2주에 걸쳐 머무르다 돌아왔다. 시골집의 풍경은 옛날 기와집 그 자체였다. 삼촌들이 묵던 건넛방, 농기구와 쌀이 쌓여있던 곳간을 ㄱ자로 꺾어 지나면 바로 정지가 있고, 다음은 아랫목이 절절 끓는 안방, 반질반질 윤 나게 닦인 대청마루, 골방 순이었다.


장손인 나는 할아버지와 함께 항상 안방의 아랫목을 차지했다. 아랫목이 너무 뜨거워 오래 앉아있기도 힘들 지경이었다. 할머니는 젖먹이였던 나를 업고 동리를 돌며 첫 손주 얼굴을 자랑하셨다고도 들었다. 이래저래 장손 프리미엄을 톡톡히 누린 셈이었다.


집안 어른들의 둥개둥개 귀한 아이 대접을 태어날 때부터 받아서인지 나는 시골집에만 가면 엉덩이가 무거웠다. 가장 연소한 자로서 바쁜 할머니의 일을 뭐라도 거들어야 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특히 할머니가 정지라고 부르셨던 부엌은, 밖에서 놀다가 문득 출출하여 군것질거리가 필요하거나 너무나도 심심한 나머지 아궁이 앞에 주저앉아 불을 쑤석거리고 싶을 때에만 들어오는 곳이었다. 식사 준비 중인 정지에 들어가는 경우가 있어도 할머니는 내게 아무 도움이 필요 없으니 여기 오지 말고 안방에 가서 쉬라 이르실 뿐이었다.


반면에 할머니는 정지를 들락날락하시느라 한자리에 오래 쉬는 법이 없으셨다. 그리고 그건 당신을 위함이어서가 아니라 모두 나와 아버지, 할아버지가 먹을 식사를 차리고 방에 불을 때기 위함이었다. 아랫목에서 TV를 보고 있으면 부침개를 지지고 청국장을 끓이는 구수한 냄새가 장지문을 타고 방으로 들어온다. 끼니마다 맛있는 음식을 배불리 먹이시고 그 배가 미처 꺼지기도 전에 달디 단 배며 삶은 땅콩을 쟁반에 가득 담아 오시곤 했다.


내가 철이 제법 들고나서도 할머니는 내게 뭔가를 시키는 법이 없으셨다. 명령형의 문장이라고 해도 전부 손자를 편하게 하시는 말씀뿐이었다.


여기 위험하니까 오지 말고 안방 가서 놀고 있어라.
부침개도 먹고 청국장도 먹어 봐라.
뭐든 많이 먹고 쑥쑥 커라.
이걸로 맛있는 거 사먹어라.
엄마 아빠 말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해라.
예쁜 아가씨 만나서 잘 살아라.
아기 엄마랑 사이좋게 지내라.

시간이 꽤 흐르는 동안 할머니의 명령(바람)은 대체로 실현되었다. 젖먹이였던 나는 장성했다. 밥과 반찬을 가리지 않고 먹어치우는 대식가가 됐다. 효자라 하긴 뭣해도 부모님 말씀을 그런대로 따랐다. 예쁜 아가씨를 만나서 어엿한 일가를 이루었다. 아기와, 아기를 낳은 엄마와 사이좋게 산다.


그 사이에 시골도 느릿느릿 계속 변했다. 기와집은 헐리어 일반 주택으로 다시 지어졌고, 정지의 무쇠솥도 아궁이도 모두 사라졌다. 대청마루에서 지내던 조상님들 제사는 아버지 집으로 옮겼다. 집을 지키는 누렁이는 갈 때마다 다른 개로 바뀌었다. 그리고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여기저기 편찮은 나이가 되셨다.


바뀌지 않은 것도 있다. 할머니는 여전히 며느리에게 살가우시고 손자며느리에게 자애로우시다. 그리고 정지에서 안방으로 흘러들어오던 구수한 사랑이 나의 곳간에 그득그득 쌓여 있다. 그 사랑에 대해 보답할 방법은, 그저 할머니의 말씀을 오래 기억하고 잘 따르는 것이려니 한다.


우리집 부엌은 할머니 댁 정지와 달리 거실과 연결돼 있다. 부엌일을 하는 사람이 춥지도 쓸쓸하지도 않다. 그리고 부엌일은 나와 아내 어느 한 사람의 역할로 고정된 법이 없다. 두 사람의 컨디션과 퇴근 시간에 따라 매우 유동적이다.


결혼 전까지만 해도 밥을 짓고 설거지하는 일에 미숙하기 짝이 없었다. 그건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각자의 집에서 귀한 아들과 딸이었기 때문이다.


우린 처음부터 새롭게 배워야 했다. 퇴근하면 함께 장을 봤다. 전기밥솥 사용설명서를 읽고 요리서적에 나온 레시피에 따라 밥을 지어먹었다. 전부 미숙하지만 생각보다 먹을 만했고 그에 비하면 설거지는 어렵지 않았다.


아내와 지낸 세월이 익어감에 따라 이젠 밥도 설거지도 손에 익었다. 내가 부엌에 서 있는 광경은 거실 소파에 앉아 TV를 보는 광경만큼이나 자연스럽다. 아이는 내가 밥을 하든 아내가 밥을 하든 조금도 개의치 않고 곧잘 먹어준다.


더 이상 부엌이 할머니와 어머니, 아내의 공간으로만 기억되지 않기를 기원한다. 적어도 지금부터는 이곳이 남편의 부엌이자 아버지의 부엌으로, 나아가 할아버지의 부엌으로도 기억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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