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재랑 Sep 01. 2021

오늘 9월 모의고사를 보고 있을 너에게

밥벌이로서의 사교육 이야기 #10



 우린 망했다. 네가 허투루 읽을까봐 분명히 말하자면 1) 우리는 2) 망했다. '우리'라고 묶인 것이 불쾌할지 모르겠다. 내 나이가 서른이다. 너는 열아홉이겠지. 너에게 까마득하게 보일 내 나이가 되면 어떻게 되는지 미리 알려주랴. 정말 놀랍게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서른이 되는 날, 깨달았다. 나는 잉어킹이라는 것을. 너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임을 나는 안다.    


 나는 아직도 10대를 팔며 서른을 산다. 내가 열아홉엔 뭐 했냐면, 운운. 다행인 건 그 짓거리를 하는 게 나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공신'이라는 작자는 아직도 제 대학 이름을 팔아 지금껏 연명하더구나. 요근래 페이스북을 보니 20대의 추억을 팔아 살아가는 4, 50대 어른들 역시 많더라. 나는 너무 반가워서 하마터면 '저도 낄래요!'라고 소리지를 뻔 했다. 과거를 추억하며 현재를 근근히 버티는 건 노소의 문제가 아닌가보다. 네가 그랬었지. "중딩 때 공부 좀 열심히 할 걸." 수능 치고나면 고딩 때를 후회할 것이고, 서른이 되면 20대를 마흔이 되면 30대를 후회할 것이다. 모두가 그런 것이니 괘념치 마라. 역사적으로는 '르네상스'라는 것도 있었단다.    


 그러니 명백하게 망했다. 아니 씨발 아직 시험은 치지도 않았는데 왜 저주부터 하세요, 라고 말하면 사실 할 말은 없다. 들킨 김에 말하자면 나는 네가 처절하게 망했으면 좋겠다. 기왕이면 수능 때 망하는 게 좋겠지만, 아직 수능까진 시간이 좀 남았으니 우선 9월 모평부터 망하길 바란다.    


 잘 생각을 해보렴. 네가 좋은 성적을 받는다는 것은 누군가 좋은 성적을 못 받는다는 얘기다. 그게 뭐 네가 잘 나서 그런 거겠니? 상대평가라는 게 그런 거다. 뽀록도 실력임을 가르쳐주는 것이 수능의 교훈이다. 과연 네가, 다른 사람의 기회를 빼앗아 대학을 가는 게 좋은 일일까? 네가 대학을 가는 것이 그 정도의 가치가 있는 일일까? 만약에 운수가 대통하여 네가 높은 수능 성적을 받아 대학에 갔다고 치자. 그러면 또 얼마나 제 잘난 맛에 살겠냐. 그 꼬락서리를 볼 생각하니 벌써부터 소름이 돋는다.    


 네가 탐내는 대학 타이틀이라는 게 정말 오롯이 너의 '능력'으로 득하는 거겠니? 너 하나 대학 보내겠다고 부모님도 형, 누나도, 친구들도, 심지어 나조차도 눈 오면 추울까, 바람 불면 날아갈까, 널 보며 금이야 옥이야 하고 있다. 나는 돈이라도 받는다지만, 돈 바치면서 욕 먹는 부모님은 무슨 죄니.    


 심지어 네가 쌍욕하는 헬조선조차 네 대학 입학에 지분이 있다. 네가 대한민국에서 태어났다는 그 행운 하나만으로 너의 미래 소득과, 기대수명과, 심지어 학습 능력까지 세계 상위권에 속할 수 있게 되었다(한겨레21, <인생 성취의 8할은 운, 감사하고 겸손할 이유>). 혹시 "내가 대학을 가는 건 내가 똑똑하기 때문 아닐까?"라는 착각이 든다면 명심해라. 너보다 훨씬 똑똑한 아프간의 한 여학생은 지금도 학교에 가지 못하고 히잡을 두른 채 집에 갇혀있다.   


 또 이런 말을 하면 "아, 위대한 대한민국. 두유 노 BTS?"라고 지껄일까봐 덧붙인다. 핵심은 네 혼자 이룬 업적이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공정한 경쟁 따위는 더욱 의미 없는 이야기이다. 더 좋은 사람들과 함께 살 수 있었던 행운이 네게 주어졌을 뿐이다. 심지어 너는 나도 만났잖니(찡긋).    


 너의 노력을 전부 부정하진 않겠다. 시험 전날 밤새 공부했다는 네 호들갑이 같잖지만 나는 어른이니까 그 정도는 눈 감아주겠다. 그러나 그 노력만으로 너의 성취를 다 설명할 거라면, 그냥 망해버려라. 그게 세상에 더 도움되는 일이다. 지금 망해버리지 않으면, 너는 8월에도 과잠을 입고 배달노동자에게 개소리를 지껄이는 '명문대생'이 될 게다. 생에 자랑할 거라곤 그 과잠밖에 없는 애들이 얼마나 하찮은지는, 자랑할 거라곤 군대 갔다온 것밖에 없는 복학생들을 네가 대학에서 만나보면 알게 될 것이다.  


 ----    


 너에게 행운이 잠깐 찾아온 것을 너의 실력인 양, 네 노력의 결과물인 양 여기면 안 된다. 그 까닭에 너에게 찾아오게 될 불운 역시 너의 실력이나 네 부족한 노력 때문만은 아니다. 우린 망했고, 망하고 있고, 망할 것이다. 손톱만큼의 성공과 팔뚝만큼의 실패를 겪을 것이다. 그 중엔 네가 어찌할 수 없었던 일도 분명 있을 것이다.   


 내가 매년 고3들을 만나면서 얼마나 어이 없는 경우를 많이 봤겠니. 단 한 문제 때문에 등급이 떨어지고 대학이 갈리고 재수를 하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그 한 문제를 틀린 건 문제가 애매해서였을 수도 있고 실수였을 수도 있고 심지어 문항 오류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그렇게 네가 대학을 떨어지게 되면 세상 사람들은 너에게 '노력이 부족해서' 그리 되었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안다. 적어도 수능을 가르치는 나는 안다. 그건 너의 실력 때문만도 노력이 부족해서 때문만도 아닐 게다. 하필 그 시험에서만 모르는 문제가 나와서, 그 때만 눈이 좀 침침했어서, 잠깐 집중력이 흩어져서 그랬을 수 있다. 그럴 수 있고, 그래도 된다. 원래는, 그래도 되는 건데 … 그조차도 안 된다고 세상이 자꾸 얘기하는구나. 그 점은 내가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나를 너무 미워하진 말고. 이 세상을 만든 지주 놈들은 저 위에 있고 나는 그 마름일 뿐이란다. 물론 혁명이 일어난다면 가장 먼저 죽는 건 마름이겠지. 그 때 부디 내 명복을 빌어다오.    


 세상에서 말하는 성공이라는 게 그리 우습다. 운만으로 되는 건 아니지만, 운 없이 되는 일도 없는데 어찌나 그리들 잘난 척들을 하는지. 그러니까 제발 유명한 인강 강사들한테서 삶의 교훈 같은 것 좀 얻지 마라. 아니,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을 좋아한다는 윤리강사가 100억대의 통장을 자랑하는 게 '윤리교육학적'으로 말이 되는 거냐?


 성공한 자의 삶은 성공한 후에 포장되는 것이다. 로또에 당첨된 사람이 자기가 당첨된 번호라고 알려주면 넌 그 번호 그대로 로또 살 거니? 그 바보 같은 짓거리를 '자기계발서'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이 사고 파는 거야. 각자의 인생에 주어진 조건과 운이 같을 수가 없는데 같은 행적을 밟으면 같은 결과가 나올 수 있을 거라 생각하다니 차라리 MBTI가 과학적이겠다. ... 아, 미안. MBTI 좋아하는구나. 좋아할 수도 있지, 뭐 …   


----    


 너에게 이런 말을 하는 건 값싼 위로나 동정을 해주고 싶어서도 아니고 지극한 저주를 퍼붓고 싶어서도 아니다. 그냥 우리는 망했다는 게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꽝'이 너무도 많은 주사위를 들고 있다. 태어나보니 그게 대한민국이라는 게임의 규칙이더라고. 넌 이 게임에 얼마나 썼니. 우리 부모는 무과금러였어, 씨팔.  


 그러나 우리에게도 행운이 찾아오지 말라는 법 없지. 이번 판은 나가리였지만 다음에 주사위를 던지면 더블 식스가 나올 수도 있는 거니까. 더 나아가서는 우리가 들고 있는 주사위를 부숴버릴 수도 있다. 지금 있는 주사위들을 다 부숴버리고 '꽝'이 없는 주사위를 만드는 거야. 다들 뭐가 걸리든 적당히는 살 수 있게끔. 그걸 만드는 게 '정치'라는 거겠지. 믿음은 좀 안 간다만.  


 그래서 결국 하고 싶은 말은, 끝끝내 함께 버티자고. 우리에게 이미 찾아온 행운이 있다면 그건 우리가 우리로서 존재하는 것 그 자체 아닐까.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게 이미 행운이라는 것을 깊이 생각할 수만 있다면, 불행한 제 삶을 힘껏 연민하다가 제 풀에 나가떨어지는 일은 없을 테니까. 제 잘난 맛에 요란법석 떠들어대는 것도 꼴같잖지만, 세상 최고의 불행러인 것마냥 연민의 구렁텅이에 제 삶을 집어쳐넣는 것도 나는 눈꼴시려 못봐주겠다.  


 그런 까닭에 나는 오늘도 학원에서 너를 기다릴 것이다. 나 역시 누군가 덕에 안전한 서른을 허락 받았으니, 네가 스무 살이 되기 전까지는 나도 너와 함께 버텨보려고. 그 후에는 까먹든 말든 알아서 하시구요. 너의 행운을 재빨리 잊지 않는 염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비록 나는 그러지 못하였지만. 너로선 놀랄 일이겠지만 나도 아직은 어리니까, 더 노력해 보려 한다.  


 시험 끝나면 연락하고. 술은, 수능 끝나면 사줄게. 제발 국어 시간에 쳐자지 마라. 


 *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 글을 드디어 10개나 썼다(자축의 박수). 이 영광을 전 세계에 3명쯤 있는 내 애독자들에게 돌리고자 한다. 한 명은 내 글을 최고로 많이 읽어준 ‘나’놈이고, 또 한 명은 나때매 브런치 깔았다고 부러 호들갑 떨어주신 중학교 때 국어 선생님(감사합니당), 또 한 명은 … 신원미상. 아직 만나지 못하였다. 있긴 한 건가 …?  


 한 주에 한 개 씩 썼으니 여하간 우울증의 발현을 세 달 정도는 유예한 셈이다. 아무튼 의미 없는 글을 계속 쓰겠다는 본래 의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으니 참으로 의미가 깊다 하겠다.

이전 10화 "나는 국어를 가르친다"는 틀린 문장입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