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벌이로서의 사교육 이야기 #12
한 학생이 화가 났다. 코로나 때문에 학원도 닫고 학교도 닫고 식당도 닫잖아요. 근데 목욕탕은 왜 열어요? 거기선 마스크도 안 끼잖아요. 너무 무책임한 거 아니에요?
마땅한 질문이지만 쉽게 대답해주고 싶지 않았다. 실은 저 질문을 주저 없이 할 수 있는 순진함에 살짝 짜증도 났다. 그 질문이야말로 너의 계급성을 드러낸다는 것을 넌 모르겠지, 이 부르주아야?
어차피 알아듣지 못할 말을 속으로나 되뇌며 나는 떠올렸다. 목욕탕이 꼭 열려야만 하는 이유를, 또 대중목욕탕이 아니면 몸을 씻을 수 없는 사람들을, 혹은 어릴 적의 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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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했다. 그런데 '가난'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으면 조금 민망해지는 것이, 객관적 기준으로서의 빈곤과 주관적 인식으로서의 가난한 삶이란 분명 온도 차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굶진 않았다. 내 부모가 겪은 빈곤과 내것은 분명 달랐다. 비교 대상이 없는 한, 내게 가난이란 불편 정도였지 생활의 불능 같은 건 아니었다.
그러나 불현듯 만나게 되는 가난은 마음을 짓눌렀다. 그 중 아직도 가슴에 서늘하게 남아 있는 충격은 '사람들은 매일 샤워를 하고 산다'라는 것을 서울살이를 시작한 스무 살이 돼서야 알았다는 것이다.
겨울이면 보일러에 기름 넣을 돈이 없어 자주 물을 끓여 썼는데, 집의 화장실이란 알몸으로는 버틸 수 없을 만큼 너무 추웠을뿐더러 그런 몸을 데울 뜨뜻한 물이 매번 공급되지도 않는다는 게 십 대까지 나에겐 너무나 당연한 세계였다. 그러니 당연히 온몸을 닦는다는 건 일주일에 한 번 대중목욕탕에서나 가능한 건데 서울 오니까 가난하다는 청년들도 매일 샤워를 하고 사는 것이었다. 충격이었다. 가난이 나를 더럽게 만들었다는 생각에.
그때 만약 목욕탕이 없었다면. 나는 가난이 선사하는 냄새를 곳곳에 뿌리고 다녔을지 모른다. 생각만으로도 아찔하고 서럽다. 가난이 주는 쭈글함이 있다. 초등학교 때 친한 친구가 우리 집을 보고는 들어오기를 멈칫거렸을 때부터, 나는 그 감각을 이미 체화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모든 기억이, 학생의 질문을 받았을 때 떠오르고 말았다. 나는 그 질문에 쉽게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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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은 분명 사람을 납작하게 만든다. 엄마는 내가 서울로 대학을 가겠다고 했을 때, 그냥 고향에 남아 있으면 안 되겠냐고 했었다. 불투명한 미래로부터 실패를 먼저 떠올리는 것이, 그래서 지금 겨우 붙들고 있는 현재에 매달리는 것이 가난뱅이들의 흔한 삶이었다.
가난은 우리를 우연적 존재로 만들었다. 열정과 노력만으로 삶을 바꿀 수 있다면, 우리 부모는 이미 저만치 앞으로 나아갔어야 했다. 그러나 제 능력과 열의를 온전히 발휘하는 것도, 제 능력을 차분히 쌓아 올리는 것도 가난은 쉽사리 허락지 않았다. 우리 삶을 지배하는 건 팔 할이 운수였다. 모짜르트가 18세기 중국 농촌에서 태어났다면 그런 위인이 될 수 있었을까. 아니, 이미 그렇게 죽어버린 음악 천재들의 시체가 역사 속에 산처럼 쌓여있을 것이다.
허나 이런 가난이 내것일리만은 없다. 대학에서 국가장학금을 받을 때 보니 나는 소득 10분위 중 3분위 가정에 속해있었는데, 그전까진 사실 소득 1, 2분위의 삶을 상상해본 적조차 없다. 그러나 그들은 분명 실재하고 있는 것 아닌가. 오늘도 그 가난이란 누군가의 삶을 좀먹고 그를 더럽게 만들고 있을 것이다.
"가난은 죄다. 가난한 부모가 애를 낳는다는 건 죄악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가난과 가난한 자를 분별없이 혐오하는 사람들의 말을 들으며, 나는 생각한다. 가난이 죄라고 말하신다면, 나는 이 세상을 무고죄로 고발하겠다. 가난한 자들이 죄다 착하다거나 도덕적이라는 말이 아니다. 그러나 가난이라는 죄를 왜 우리만 뒤집어써야 하는가. 가난의 다른 말은 우연이었다. 처참하리만치 지독한 우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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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세의 청년이 '존속살해' 혐의로 법정에 섰다. 뇌출혈로 쓰러진 아버지의 수천만 원어치 수술비를 감당해야 했고, 삼촌은 퇴직금을 털어 병원비를 보탰으나 곧 한계에 부딪혔다. 시급 7000원짜리 알바로는 생활조차 유지할 수 없었다. 집에 돌아오면 누군가가 죽어야만 끝날 간병노동이 시작됐다.
아들의 삶을 지켜본 아버지는 움직일 수도 없는 몸으로 겨우 말했다. "필요한 거 있으면 아버지가 부를 테니까, 그전에는 방에 들어오지 마." 그렇게 아버지가 죽어가는 동안, 청년은 자기 방에서 혼자 울었다. 아버지의 자살을 방조했다는 이유로 청년은 1심에서 징역 4년 형을 선고받았다.
기사를 읽으면서 가슴이 계속 내려앉는다. 내 가난이란 고작 내 몸이 조금 더러워진 정도였다지만 당신의 가난은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을 아버지의 대변 냄새를 당신에게 주었구나. 그건 정말 우연이었다. 그 지독하고 처참한 우연 때문에 당신과 나의 삶은 이렇게 달라졌다. 당신이 죄를 범했다는 것은 자명하다. 허나 죄를 범하도록 당신을 계속 부추긴 다른 죄악들은 정작 어디에 있는가. 죄의 경중을 심판 받는 것은 왜 당신만의 몫이어야 하나, 그렇게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이 비극은 지극히 우연한 이유로 강도영(가명) 씨에게 갔을 뿐입니다. 강도영 씨의 비극은 우리 공동체가 함께 감당해야 한다는 것을 재판장께서 부디 깊이 헤아려주시기를 바랍니다.”
내 가난의 냄새로 당신 가난의 냄새를 겨우 상상해본다. 학생이 ‘목욕탕을 열어야 하는 이유’를 제 삶에서 도저히 떠올릴 수 없었듯, 우리는 당신과 너무 떨어져 있어 당신 가난의 냄새를 미처 맡을 수 없었다. 얼마나 쓸쓸했을지. 설명할 수 없는 슬픔으로 나는 그저 탄원서에 몇 자 얹을 뿐이다.
세상은 단순하지 않다. 강자에게도 선이 있듯 약자에게도 악이 있다. 모든 가난한 자들이 악을 행하지 않는다는 말은 그 자체로 옳지만, 그러나 악을 행하지 않고 버텨낼 수 있을 만큼의 가난 역시 모두에게 허락된 것은 아니다. 내 가난이 당신것보다 더 지독했다고, 당신의 가난은 내것보다 가벼웠다고 누가 쉽게 말할 수 있겠는가.
우리의 가난을 공동체라는 이름으로 함께 감당하는 그 당연한 세상이 와야만, 마침내 우리가 인간으로 같이 살아갈 수 있겠다. 그 때까지 우리는 잊을 수 없다. 가난이 풍기는 지독한 악취를, 당신이 깨끗한 동안 누군가는 더러워야 한다는 이 자명한 현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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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동안 글을 계속 썼다, 지웠다 했다. 나만 가난했던 양 호들갑 떠는 것도 싫고 자기연민으로 비치는 것도 싫었다. 근데 쓰다보니 그리 되고 있는 것 같아 자주 멈췄다. 그러던 중에 강도영(가명) 씨의 일을 알게 됐다. 제일 먼저 그게 나의 불행이 아니라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고, 이걸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내 모습이 그냥 역했다.
어쩌다 통계를 봤는데 우리 부부의 작년 합산소득이 20대 부부 중에서는 상위 10%에 해당한다는 걸 알았다. 엄마 아빠가 미처 달성하지 못한 소득분위에 나는 도달했다. 나는 대학교에 갈 수 있었고, 궁핍하나마 서울살이를 버틸 수 있었고, 해서 내 노력이 발현되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나는 안다. 이 모든 건 내가 들인 노력에 비해 과하게 운이 좋았던 덕이다.
당신에게는 그 운이 없었다. 그 불운에 생이 무너져버릴 때까지 당신의 가난을 방관한 것이 우리의 씻지 못할 죄일 것이다. 댓글에 탄원서 링크를 달아둔다. 8일까지 탄원서를 모아 재판부에 제출한다고 하니 조그마한 손이나마 함께 보태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