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재랑 Nov 04. 2021

'할 수록'은 제발 붙여 쓰세요! - 띄어쓰기의 대원칙

한국어 수업 #1

 글줄깨나 쓰신다는 분들도 자주 틀리는 게 있는데, 자꾸 '할 수록'을 띄어 쓰는 것이다. 나는 '할 수록'을 볼 때마다 가슴이 콩닥콩닥 뛰면서 저거 틀린 거라고 어떻게 말해주지, 라는 마음이 들곤 한다 ...


 '할 수 있다'의 '수'는 의존명사이므로 앞 단어와 띄어 쓰는 게 맞다. 그러나 '할수록'에서는 '-ㄹ수록'이 한 덩어리(어미)이므로 붙여 써야 한다(쓸수록, 볼수록, 될수록 다 마찬가지).


 띄어쓰기라는 게 한국어를 대환장파티로 만드는 것 중 하나이지만, 사실 그 원칙이란 정말 간명하다

: "단어와 단어 사이를 띄어 쓴다. 단, 조사는 단어지만 붙여 씀."

결국 얘가 한 단어냐, 아니냐만 알면 된다. 물론 원칙은 그렇다는 거고 ...


 자주 틀리는 띄어쓰기 몇 가지를 적어보면


1) 그게 좋은지 모르겠다. // 시작한 지 꽤 됐다.

-> 앞의 '지'는 정확히 '-ㄴ지'가 한 덩어리(어미)이다. 어간과 어미는 붙어야만 한 단어가 되므로 '좋은지'는 그 자체가 한 단어이다('좋다'의 활용형).

-> 뒤의 '지'는 '~시간' 정도로 쓰이는 의존명사이므로 띄어 쓴다.


2) 너밖에 모른다. // 집 밖에 좀 나가라.

-> '너밖에'에서 '밖에'는 '그것 말고는' 정도로 쓰이는 하나의 조사이다. 조사는 붙여 쓴다.

-> '집 밖에'에서 '밖에'는 명사 '밖' + 격조사 '에'의 결합 형태이다. '밖'은 명사이므로 앞과 띄어 쓰고, '에'는 조사이므로 앞과 붙여 쓴다.


3) 너만큼 좋은 애가 없다. //공부한 만큼만 풀어 봐.

-> '너만큼'에서 '만큼'은 조사이므로 붙여 쓴다. '~처럼'으로 대체 가능하다.

-> '공부한 만큼'에서 '만큼'은 의존명사이므로 띄어 쓴다.


... 맛탱이 가겠죠? 이것 말고도 이십 개쯤 더 있지만 우선 이 정도로 하고 ...


------


 당연하게도 업자들이 아닌 이상 이걸 다 외우고 살 수는 없다. 그러나 띄어쓰기는 애초에 규칙에 따라 적용된다. 그러므로 몇 가지 규칙만 알고 있으면 이 무수한 경우의 수를 따로 외울 필요 없이 일괄적용할 수 있다.


 띄어쓰기가 헷갈리는 경우들을 쭉 살펴보면 결국은 '어미', '조사', '의존명사' 이 세 가지 개념 때문이다. '어미'랑 '조사'는 붙여 쓴다. '의존명사'는 별개의 단어이므로 띄어 쓴다. 그러니까 헷갈리는 게 셋 중에 무엇인지만 알면 띄어쓰기가 대강 해결된다.


 1) 어미 : 한국어에서 모든 용언(동사, 형용사)은 애초에 '어간+어미' 형태로 존재한다. (+어간은 어미를 활용할 때 변하지 않는 부분이다. 먹고, 먹으며, 먹으니까 ... 에서 어간은 '먹') 어간과 어미는 한 세트이다. 둘은 항상 붙어 다닌다. 고로 무언가가 '어미'라고 한다면 앞에 있는 어간에 찰싹 붙여야 한다.


 어미는 ... 그냥 형태를 외우는 게 가장 좋다. 어차피 헷갈리는 어미는 몇 개 없으니까. '-ㄴ지', '-ㄹ지', '-ㄴ데', '-ㄹ수록' 정도.


 2) 어미가 아니라면 결국 '조사'거나 '의존명사'다. 두 개를 구분하는 핵심은, '의존명사' 앞에는 명사를 수식하는 성분인 '관형어'가 필수적으로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관형어 뒤에는 수식을 받아주는 '명사(체언)'만 올 수 있다. 즉, 관형어 뒤에 조사는 올 수 없다.


a. '공부한 만큼'에서 '공부한'은 명사를 꾸미는 관형어이므로(ex. '공부한' 사람, '공부한' 책, '공부한' 도서관) 그 뒤에는 조사가 올 수 없고 (의존)명사만 올 수 있다.

∴ '공부한' 뒤에 있는 '만큼'은 의존명사이므로 띄어 쓴다.


b. '너만큼'에서 '너'는 관형어가 아닌 명사이므로 그 뒤에 의존명사가 올 수 없다.

∴ '만큼'은 조사이므로 붙여 쓴다.


 물론 '명사'는 '품사'이고 '관형어'는 '문장성분'이기 때문에 정확하게 대응 되는 건 아니다. 명사도 관형격조사를 붙이면 관형어가 될 수 있다 ... 고 말하기 시작하면 너무 길어지므로 궁금하신 분들은 그냥 인강 한 번 보시길 추천 드립니다 ... 여하간 대충 '명사+조사' or '관형어+(의존)명사'의 조합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예제로 복습하겠습니다.


Q1. (너대로//너 대로)

=> '너'는 대명사이므로 뒤에 있는 '대로'는 조사이다. -> 붙여 씀("너는 너대로 살아").


Q2. (배운대로//배운 대로)

=> '배운'은 명사를 수식하는 관형어이므로 뒤에 있는 '대로'는 의존명사이다. -> 띄어 씀("배운 대로 살아").


ㅇㅋ?


------


 존나 어렵죠. 근데 웃긴 건 이거 중2~고1 시험 범위임 ;;;;


 중학교 문법과 고등학교 문법의 차이는 사실 여기 있다. 중학교 때는 걍 외우라고 한다 ... 여러분들도 머리 아프신데 중학생들은 얼마나 힘들겠어요. 고딩 때부터는 왜 그런지 '문법적'으로 설명하기 시작한다. 물론 이걸 기억하는 고딩들은 아무도 없다 ...


 어쨌거나 중고등학교 때 다 가르쳐주긴 했다는 것이다 ... 근데 맞춤법 틀리는 사람들 보면서 "우리나라 국어 교육에 문제가 많네 ㅉㅉ" 이러고들 있으면 막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빡침이 올라오기 시작함. '그렇게 말하는 너는 과연 중고딩 때 배운 맞춤법을 다 기억할까요 ...?' 솔직히 중2 교재에 나오는 문법 개념만으로도 님들 못 맞추는 문법 문제 엄청 많이 만들 수 있음. 근데 왜 우릴 욕해요, 국어 교육에는 문제가 없다고요,,,, 다시는 국어를 무시하지 마라 ...


 그래서 그냥 요즘은 ... "다들 자기 분야가 아니면 멍청한 거니까요;;" 정도로만 생각하기로 하고. 다만 님들께 드릴 수 있는 조언이 있다면 "띄어쓰기 헷갈릴 때는 걍 다 붙여 쓰세요. 괜히 아는 척 해서 틀리는 것보단 나음."


 '할 수록'의 망령을 더이상 보고 싶지 않은 국어 강사 올림 ...


(*박막례 할머니는 이 글에서 제외. 할머니 쓰고 싶은 대로 쓰세요~♡)

이전 13화 단 한 명의 장애인 학생도 만난 적 없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