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불연속면 Feb 07. 2021

衣. 예쁜 구두가 데려다주는 곳

[빨간 구두], [꽃보다 남자]

인터넷은 고사하고 온가족이 차지하는 텔레비전 외에는 이렇다 할 오락거리가 없는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에게, 신발과 관련된 이야기라고 한다면 역시 안데르센의 [빨간 구두]다. 주인공 카렌에게도, 어린 독자에게도 상당히 잔혹한 내용인 데다 계몽사판 안데르센 전집의 몽환적이면서도 묘사할 건 다 묘사하는 삽화의 이미지가 한 세대가 지난 지금까지도 뇌리에 남아 있다. 디테일한 스토리는 기억나지 않는데, 선물받은 예쁜 빨간 구두를 더럽히기 싫었던 카렌이 진흙탕 위를 흰 빵을 밟고 건너자 그때부터 쉼없이 춤을 추는 벌을 받았었던가. 도저히 춤을 멈출 수 없게 되자 망나니가 춤추는 카렌의 두 발을 잘랐고 피에 젖은 한 쌍의 발은 빨간 구두를 신은 채 계속해서 춤을 추면서 사라져 버렸다.


이 얘기의 교훈은 교만하고 허영을 부리는 사람이 되지 말자는 것 같은데, 새 구두를 더럽히기 싫어서 빵을 밟고 지나간 것 정도로 그렇게까지 가혹한 벌을 준다면 허영이 고쳐지기는커녕 반발심만 생길 것이다. 나는 가난한 가정 출신이라 옷이고 신발이고 친언니의 것을 물려받았고, 어쩌다 새 신을 사는 날에는 깨끗이 신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다시는 새 신을 사주지 않을 거라는 엄중한 경고를 들어야 했다. 빨간 구두 이야기의 배경은 17-8세기 유럽쯤 되었으려나. 그렇다면 음식이 귀하던 시절이었을 테니 빵을 밟는 건 오늘날로서는 상상도 못 할 대죄였을지도. ‘하지만 내가 먹을 빵을 밟고 가든 베고 자든 그건 내 마음 아닌가’라는 반감이 치미는 건 어쩔 수 없다. 아무리 대죄라도 어린애의 두 발을 자르는 것보다 나쁠 수는 없었을 것도 같다. 스티커 얻으려고 포켓몬빵 사서 빵 안 버려봤냐. (사실 포켓몬 세대는 아니긴 한데)


다음으로 기억에 남은 구두 이야기는, 한 시대를 풍미한 순정만화 [꽃보다 남자]에 나온다.

나온 지 20년도 더 됐으니 이제는 서브컬처계의 고전도 아닌 설화급 작품이다. 나는 [오렌지보이]라는 해적판을 손에 넣는 대로 본지라 순서는 뒤죽박죽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여튼 초반에 여주 츠쿠시와 서브남주 루이가 사귈락말락 하던 순간이 있었다. 이때 루이의 소위 그, ‘썸녀’가 등장해 막 성적 긴장감이 싹트기 시작하던 츠쿠시와 루이의 관계에 긴장감을 불어넣는데, 미워할 수도 없이 츠쿠시를 친절하게 대해서 모든 헤테로 연애물에 대해 과몰입하는 경향이 있는 여학생들 사이에도 걔는 쌍년이네 아니네 의견이 분분했다. 이름이 가물가물한 그 썸녀가 가난한 츠쿠시에게 한 켤레의 좋은 구두를 선물하며 한 말이,


“나는 구두만큼은 좋은 걸 신어. 근사한 구두는 너를 근사한 곳으로 데려갈 거야.”


이 비슷한 거였는데. 요즘은 뭐든지 나 좋을 대로 패러프레이즈해서 기억하기 때문에 정확하진 않다.


“신을 아껴 신지 않으면 앞으로는 새 신발 따위 없다”는 경고를 듣는 한편으로, “신을 아끼느라 빵을 소홀히 하면 발목이 잘릴 수도 있다”는 무시무시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동화를 읽으며 자란 나는 그때 처음으로 예쁜 구두를 신고 싶다는 욕망을 긍정하는 캐릭터와 조우했다. 90년대 초반, 일본이 버블의 향수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했을 무렵이었다. 그로부터 불과 몇 년 후에 [섹스 앤 더 시티] 같은 드라마가 나오면서 명품 잡화를 향한 여성들의 욕망을 극대화시켰고, 중국의 경제 성장과도 맞물려 한국의 구두 시장이 급속히 발전했었...나? 전반적으로 삶의 질이 올라가면서 패션 시장에도 그 여파가 미쳤던 것만큼은 틀림없었다. 그 영향을 안 받았다고는 할 수 없겠고, 성인이 되어 스스로 생활비를 벌게 되면서부터는 이왕이면 예쁜 옷에 예쁜 신을 갖추어 신고 싶었다. 키가 작다 보니 높은 구두를 신으면 전철 손잡이를 잡기가 편하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20대를 내내 힐 위에서 살아왔다.


그래서 예쁜 구두는 나를 근사한 곳으로 데려다줬나.

적어도 지상에서 165센티미터 높이의 시야와 산소는 확보해줬다.


작년에 필라테스를 배우러 갔다가 퍼스널 트레이닝을 받았는데, 내가 아주 오랜 시간 정강이는 길어지고 종아리는 짧아지게 만드는 굽 높은 신만 신은 까닭에 종아리 근육과 햄스트링이 덩달아 짧아져 있다는 말을 들었다. 어쩐지 ‘두 다리 뻗고 잔다’는 관용구의 의미가 바로 체감되지 않더라니. 나는 다리를 쭉 뻗으면 오금이 땅겨서 골반에도 척추에도 과부하가 걸려 그 자세가 불편하기 짝이 없다. 물론 건강한 신체 상태라고 할 수 없기에 필라테스 선생님께 햄스트링과 고관절 운동을 열심히 하라는 조언을 들었고, 생각이 날 때마다 실천 중이다. 하지만 생각이 날 때마다 10분씩 해서야 하루 열 시간씩 기울어진 신 위에 올라가 있던 10년을 따라잡을 수 없다. 생각이 난 그 10분 동안 내가 하는 건 후회가 아니라 ‘그럼 이제 편하고 보기 좋은 신을 찾아야겠네’ 같은 결심이 전부니 손해봤다는 느낌은 없다.


멋을 내다가 건강을 해쳤다, 이것은 사실이지만 결과를 알고 한 일이니 30대가 되어 안 펴지는 햄스트링 때문에 필라테스 시간에 고역을 겪게 될 것을 미리 알았더라도 그것은 미래의 내가 감당할 것이라며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을 것이다. 과거의 내가 미래의 내게 빚지우는 일만 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미래의 나는 그 정도는 참아줄 수 있다. 멋을 내다가 꼴좋게 되었다, 이것은 남의 행동에서 허물을 찾는 것만을 인생의 낙으로 삼는 자들이 하는 말이다. 힐이 척추 건강에 바람직하지 않다는 걸 몰라서가 아니라 특수한 사정으로 인해 신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기울어진 신 위에서 살아가야 하는 분들에게 따로 말씀드릴 것은 없고, 이따금 종아리가 땅긴다면 마사지 정도는 해 주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전 03화 衣. 한 시트를 20년간 써야 하는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