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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은희 Oct 08. 2021

개남 開南

제2부 1894 갑오년 1장 인두 오라버니

<지금까지 줄거리>

갑오년 12월 전주성에서 처형된 동학군 김개남 대접주의 모가지는 소금궤짝에 담겨 한양으로 보내진다한양과 삼남 지방에 조리돌림하라는 조정의 명이 내리고 남대문 칠패시장과 공주성에서 조리돌림당한 개남의 목은 을미년 정월 다시 전주성 초록바위에 내걸리는데 백주대낮에 도둑을 맞는다김개남이 죽지않고 살아있어 가짜 개남의 목을 초록바위에서 들고 사라졌다는 소문이 급속도로 삼남지방에 퍼져나간다

전주감영에서 사방팔방으로 김개남의 모가지 행방을 찾던 중 김개남의 고향 태인 상두산 지금실에 삿갓을 쓴 사내가 나타나 보부상과 왜인 항아장수를 비황석으로 징치하는 사건이 발생한다김개남의 행랑아범 덕보영감은 큰아들 만석이 보부상으로 황토현전투에 참여했다 죽고작은 아들 천석은 벙어리 새색시를 두고 동학군으로 태인전투에 나갔다가 남쪽으로 쫓겨 장흥 석대들에서 행방불명되었다덕보영감은 상두산 호랭이굴에서 삿갓을 쓴 사내를 만나는데 이후 김개남이 진짜 살아있다고 말하는 바람에 태인관아에 끌려갔다가 전주감영에 갇힌다.

덕보영감의 아내 옹간네는 남원에서 온 벙어리 처녀 개복이와 번갯불 혼사를 치르고 집을 떠난 천석이 행방에 애가 닳다가 개복이의 배가 갑자기 불러와 의심하는데 덕보영감은 감영으로 끌려가고 며느리의 산통이 온다산통의 와중에 개복이는 운봉왕이라 불리던 아전 박봉양의 외손녀이자 어머니 운봉댁의 외동딸 태리로 행복하게 살던 시절을 떠올린다그러나 지난해 갑오년 여름 김개남이 동학군을 이끌고 남원성을 함락하자 세상이 뒤바뀐다떠꺼머리 총각들인 동학 동몽군들은 양반집 대문에 수건을 걸어놓고 납폐라 칭하며 강제로 혼사를 통보하는데 태리네 기와집앞에도 수건이 걸리고....     


운봉댁의 목소리는 하늘이라도 두토막 낼 듯 서슬퍼런 날이 서있었다.

“우리 태리와 혼인을 하겠다고 납폐운운 하는 놈이 종놈 칠성이라고 물었네. 왜 대답을 아니하는게야?”

“칠성이가 아니고.”

“그래? 누군가? 뭘 꾸물거리는건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딸을 운봉댁이 얼마나 끔찍하게 금지옥엽 귀애하는지 잘 알고 있는 마름 박씨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인두가 왔다고 전하라 했습니다요.”

“인두?”

“어릴 적 둔덕방 최대감집 애기종이었다고. 인두라는 종이 남원 대도소 김개남의 심복중 심복인데 나라로 치면 병조판서같은 자리라고....”

“인두?”

운봉댁이 머리를 갸웃했다.

“예. 제삿날 민어전 한점을 입에 넣었다가 빨갛게 달구어진 인두로 입술이 지져졌다 아뢰면 알아들으실거라고.”

“그만, 그만, 하게.”

겁에 질린 듯 운봉댁이 손을 저었다. 태리는 하얗게 얼굴이 변한 어머니 옆으로 가서 손을 붙들었다. 운봉댁은 온 몸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민어전 한점을 집어먹다가 인두로 입이 지져지다니. 누가 그런 짓을 했을까 참말로 천벌을 받을 것이라고 태리는 생각했다.

“자네는 당장...당장... 가마 가마 두 채를 구하게. 돈을 얼마든지 줄테니. 가마꾼도 여럿 붙이고.”

“마님, 그것이, 어렵사온 것이, 다들  피난을 가서 가마도 가마꾼 구하기도 하늘의 별따기인지라..”

“돈을 원하는대로 준다지 않은가. 아무 소리 말고 가마를 구해오게. 어서.”

마름 박씨가 내몰리듯 대문 밖으로 나갔지만 빈손으로 돌아왔다. 가마가 있는 부잣집들은 이미 가마를 타고 다 피난을 떠났다. 하루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판에 가마를 내줄 사람은 없었다.      

분꽃이 오므라들고 박꽃이 피는 밤이 되었다. 운봉댁은 마름 박씨를 앞세워 태리와 삼월이를 데리고 살금살금 뒷산을 올랐다.  그러나 친정인 운봉을 향해 산길 십여리를 채 벗어나기도 전에 관솔불을 든 건장한 사내들이 앞을 막아섰다.

“납폐를 받은 정혼 처녀가 혼인을 앞두고 이 밤중에 어딜 간다요?”

“비켜라, 이놈들 내 딸 몸에 손가락 하나 대봐라.”

운봉댁 목소리는 더없이 앙칼졌다. 쓰개치마를 뒤집어 쓴 태리는 숨이 멎을 듯 두려웠다. 삼월이가 태리 옆에 바짝 붙었다.

“와이카나. 언사시럽지도 않나?” 

“종이랑 혼인하기가 쪼까 걸쩍지근혀서 그러는 모양인데 세상이 바뀌었어라.”

“남원은 기생딸 춘향이를 참판댁 양반 이몽룡과 혼인해서 정경부인을 맹근 땅. 인자는 노비도 양반딸과 혼인해서 정승이 될수도 있는 그런 세상이 되았다 그말이오.”
 “확 발까 주차뿔까?”

“우리는 개남장과 함께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없는 남조선 개남국 새 나라를 세우고 있소. 삼남의 접주들이 모두 우리와 뜻을 같이하고 있다 이말이오. ” 

“양반허고 천민은 하늘이 낸 것이 아니라 사람이 만든 것이요. 자꾸 혼인을 허고 애를 낳고 해야 상하귀천이 따로 없는 새 세상이 되지라우.”

삼남에서 모여든 이들인지 목소리들이 달랐다. 운봉댁은 더 말 않고 쓰개치마 속에 감추었던 보따리를 내밀어 흔들었다.

“가져가게 팔자를 고칠 재물이 들었네.”

“오매 금은보화를 수레에 실어 한양 진령군에게 바치고 벼슬을 사온 운봉왕 박봉양이 딸 아니랄까비 손이 겁나 크시네요잉.”

보따리를 나꿔챈 덩치 큰 사내가 무게를 저울질하듯 흔들며 이죽거렸다.

“그동안 눈구녁 뒤록뒤록 주판알 요리조리 튕겨감서 고리채로 백성 피눈물 오지게 뽑아가며 토지 늘리고 왜놈들에게 몰래 쌀 팔아처묵고 천만금을 모았능갑소잉. 금거북이가 서너마리 들었나 참말로 묵직허네.”

운봉댁 눈앞에 보따리를 흔들어대더니 곧 옆 사내에게 보따리가 넘겨졌다.

“팔자를 고칠 돈이라지만 어째야쓰가 우리는 필요가 읎는디. 그랑께 우리는 폴쎄 팔자를 싹 고쳐불었응게요.”

“머꼬. 마이도 처묵었다 아이가.” 

“요 보따리는 집강소에 가져가 백성 구제에 요긴하게 쓰면 되겠고만이라.”

“말인즉 우리는 돈도 금도 필요없고 우리 인두 대장 장가나 가면 소원이 없다그말이요. 그란디 납폐받은 정혼자가 내빼면 곤란허지라.”

“안된다. 이놈들. 천벌을 받을 짓을 어찌?”

“천벌이라니? 처녀총각 혼인은 음양의 조화로 생명을 번성허게 허는 일인즉 하늘이 기뻐허시제 벌을 내릴 까닭이 없지라.”

“니 놈들이 뭘 안다고 지금....”

보따리를 빼앗기고 딸까지 빼앗기에 된 운봉댁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는 아짐은 멀 아시오?”

맨 뒤 캄캄한 어둠 속 그림자처럼 서있던 사내였다. 목소리가 건조했다.

“운봉 아짐은 머가 그리 두려우시오?”

아짐이라니 평생 마님이라 불리기만 한 운봉댁은 아짐이라는 말에 주먹을 쥐었다. 사내가 성큼성큼 앞으로 다가왔다. 

“한 어머니에게서 난 오라비와 누이가 암것도 모르고 혼인을 할까봐서, 그래서 천륜을 어겨 천벌을 받을까 그리 겁이 나시는게요?”

운봉댁은 소리개앞에서 병아리를 품은 어미닭처럼 몸을 꼿꼿이 세우고 사내를 쏘아보았다. 

“운봉 아짐. 그래서 이 밤중에 도망을 가는게요? 인두로 입을 지진 종을 피해서? 내 누이를 데리고?”

사내의 말이 태리의 귀에 선명하게 꽃혔다. 지금 어머니와 이 사내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 내 누이를 데리고? 오라버니라고? 나의 오라버니 인두? 어머니가 인두로 입을 지졌단 말인가?

태리는 어둠 속에서도 몸체를 보며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푸른 수건의 사내, 담장 능소화 꽃 아래 검은 묵주를 올려놓았던 사내. 그 사내가 분명했다. 사내는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관솔불 아래 푸른 수건을 이마에 동여맨 사내 얼굴이 드러났다.사내는 태리앞에 멈췄다. 사내는 태리앞에 멈췄다. 사내는 태리앞에 멈췄다. 

“비켜라.이놈.”

팔을 벌려 운봉댁이 앞을 가로막았다.

“내 딸에게 손가락 하나 댈 수 있을 성싶으냐? 내가 내 딸을 내줄 성 싶으냐?”

어머니의 목소리가 바람앞의 촛불 심지처럼 파드득 파드득 떨린다고 태리는 생각했다. 

“운봉아짐은 죄인이오. 고리대금으로 이서방의 집을 풍비박산 시키고 이서방의 아내와 어린 딸을 팔아넘긴 죄상으로 고발되었소. 죄인을 집강소로 끌고가라. 마름 박가는 소작인들의 도조를 9할이나 받아 착복하고 과부 황씨의 하나뿐인 딸을 욕보인 죄인이니 끌고가라.”

“예.”

건장한 사내들이 다가오자 갑자기 마름 박씨가 산으로 튀었다. 그러자 인두는 옷소매에서 무엇인가를 꺼내더니 훌쩍 뛰어올라 박씨가 달려간 쪽으로 던졌다. 가죽신을 신은 발이 고양이처럼 사뿐했다. 어둠속에 비명이 들리고 이내 달려간 사내들이 마름 박씨를 끌고왔다. 그리고 철편인지 돌인지 모를 무언가를 인두라는 사내에게 전해주자 이내 소매부리로 들어갔다. 마름 박씨처럼 운봉댁도 오랏줄에 묶였다. 그 뒤를 젖먹이 송아지처럼 태리와 삼월이가 따라갔다. 

“김인배접주가 순천성에 무혈입성 했으니 이제 운봉만 함락하면 경상도 고을마다 집강소 설치가 순조롭겠지라? 남원대도소에서 보낸 암행어사가 경상도 고을 수령들의 죄상을 낱낱이 조사하고 있으니 그짝 사람들도 집강소가 설차되길 가뭄에 단비처럼 기다리고 있을텐디.”

“운봉에서 애꾸 박봉양이 집강소 설치를 반대하고 있으니 머지않아 운봉도 동학군이 출정해야겠지요? 딸과 외손녀가 붙잡혔으니 박봉양이가 운봉에서 제멋대로 설치지는 못하겠지라우. 인두 성님은 참말로 머리가 좋소. 봉득이가 운봉성을 쳐서 거저얻게 생겼구만요.”

밤길의 앞뒤에서 사내들이 주고받는 말에 귀를 세우며 태리는 저 사내가 어찌 내 오라버니란 말인가 어머니가 인두로 입을 지졌다니 그건 무슨 말인가 참으로 답답하면서 이제 앞날이 어찌 될까 눈앞이 캄캄했다. 

“참말로 인두 성님 말대로 박봉양이가 제발로 기어와 입도를 헐까요? 그 웬수녀러 놈.”

“이 보자기 패물이면 양총을 몇자루나 살 수 있을꼬. 부산 영사관 왜놈 수비대와 붙어싸울라면 양총이 꼭 필요할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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