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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은희 Oct 08. 2021

개남 開南

제2부 1894 갑오년 2장 남원 대도소 김개남

남원성은 한밤중인데도 횃불이 환했다.

지난 6월 25일 남원 장날이었다. 전주성에서 나와 태인 담양 순창 흥양 장흥 낙안 좌도 군현마다 순회하며 집강소를 설치한 김개남이 지리산 회문산 변산의 호랑이 포수들과 동학군 수천 군사와 함께 남원성을 향해 온다는 말에 남원부사는 제 발로 도망가고 말았다.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입성한 김개남은 남원성 선화당에 대도소를 설치하고 객사는 동학 접주들의 머무르는 숙소가 되었다. 밤중인데도 말을 타고 오고 가는 이들로 분주했다. 

둥근 담으로 빙 둘러싸인 옥 앞에 도착했을 때 삼지창을 든 벙거지들은 죄인을 눈이 휘둥그레졌다.

“옥에 가둬야지라?”

“그라제.”

큰 덩치가 고개를 끄덕이며 운봉 댁과 마름 박 씨를 묶은 붉은 줄을 넘겼다. 태리는 등을 꼿꼿하게 세운 채 어머니 옆에 섰다.

“거 잠깐...”

큰 덩치가 불러 세웠지만 태리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삼월이가 치맛자락을 놓칠세라 뒤따라갔다. 

“가자.”

인두의 목소리가 분명했다.

“아니 형님 그라믄 안되지라.” 

사내들의 말소리는 발자국 소리와 함께 옥에서 멀어졌다.     

남원성 여옥은 어두컴컴 후덥지근했다. 벽에 매달린 송진에 불꽃이 검은 그을음을 피워 올리며 가물거렸다.

“아씨 긍게 여그가 춘향이가 갇혀있었던 그 옥이지라우. 쑥대머리 귀신형용 참말로 우리도 춘향이처럼 곤장을 맞을랑가.”

삼월이가 울 듯이 말했다. 옥의 흙바닥에는 지푸라기와 헌 가마니가 깔려있었다. 흰옷 입은 여인 둘이 가마니를 하나씩 차지하고 등을 돌린 채 멀찌감치 벽에 달라붙어 누워있었다. 운봉 댁과 태리는 우두커니 서있다가 삼월이가 그러모아준 지푸라기 위에 앉았다.

운봉댁이 태리의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아무 걱정마라. 에미가 있응게.”

그리고 태리의 손을 꼭 쥐었다.

“운봉에 소식이 전해지면 곧 가마를 보내실 것이다.”

“예. 어머니. 날이 새면 운봉에서 사람이 올 거예요.”

외가에서 알면 얼마나 놀라실 것인가 태리는 걱정 말라는 듯이 두 손으로 어머니 손을 쥐었다.

“아이고 이 웬수녀러 빈대.”

갑자기 벽을 향해 누워있던 노파가 제 뺨을 철썩철썩 쳤다. 

“썩을. 운봉 박봉양이맨치 피를 밤새 뽈구만 잉. 늙은 살 거죽에 머 묵잘 것이 있다고 염병.”

노파가 벌떡 일어나 앉았다. 가물거리는 불빛에도 노파는 운봉댁의 흰모시 저고리에 남색 치마, 태리의 노란 저고리 분홍치마를 도끼눈을 뜨고 훑어보았다. 

“운봉이 집인 개비. 외눈백이 아전 놈 잡으러 동학군이 총 들고 간다는디. 얼릉 잽혀와야 그 좋은 귀경을 헐텐디.”

그 말에 화답이라도 하듯이 건너편 가마니 위에 새우처럼 웅크리고 있던 아낙네도 일어나 앉았다. 삼월이가 태리 옆으로 달라붙었다. 

“그 아전 놈이 멀쩡한 넘의 새색시를 첩으로 끌고 갔다가 낫을 들고 온 서방헌테 눈알이 콕 찍혀 한쪽 눈이 병신이 돼아부렀다고.”

“그 소문은 남원성 개새끼들도 다 아는 소리. 하늘이 천벌을 안 내리니 동학군이 벌을 내리것제. 근디 운봉에서 박봉양이를 본 적이 있소? 아전 놈이 정승이 쓰는 정자관에 도포를 입고 활개 친다는디.”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호랑이 굴에 떨어진 것처럼 태리는 가슴이 두근두근거렸다. 운봉댁은 태리의 머리 위로 수박색 쓰개치마를 끌어올려주었다. 한양에서 비단 양산과 향내 나는 분을 사다 주던 외할아버지를 왜 그렇게 욕하는지, 대추나무 가지 끝에 눈동자가 찔려 한쪽 눈이 보이지 않는 가엾은 외할아버지에게 아담을 퍼붓는지 알 수 없었다. 아낙네는 다시 돌아눕더니 일부러 들으라는 듯이 큰 소리로 말했다. 

“개남장 옆 동네에 아흔아홉 칸 기와집 짓고 살던  균전어사 김창석이 그놈 말이여. 죽을랑 살랑 파도치는 섬으로 귀양을 갔다는디 박봉양이는 어디로 유배를 갈랑가.”

“균전어사헌티 땅 빼앗기고 관아에 끌려가 곤장까지 뚜드려 맞았던 백성들 원한이 가슴팍에 사무쳤제. 전주성에서 나오자마자 떼를 지어 몰려가 기둥을 작신 불 질러 불고 불을 놓아 집이 홀라당 타버렸다는디 얼마나 씨언했을꼬.”

“전운사 조필영이 그놈은 함열로 유배를 받았는데 농민들이 붙잡아 홀라당 깨를 벗겨 낮에는 햇빛 아래 꿀을 발라 세워두고 밤에는 돼지우리에서 돼지랑 재웠다는디. 낮에는 벌들이 밤에는 모기들이 조필영 그놈 몸에 달라붙어 세상에 다시 못 볼 좋은 구경을 했다는디 그 좋은 꼴을 내 눈은 못 봤네.”  

“옷 바꿔 입고 줄행랑친 전라감사, 고부를 아작 낸 안핵사 이용태인지 저용태인지 그놈도, 고부군수 조병갑도 모두 귀양 갔으니 동학군이 세상을 확 뒤집어부렀제.”

“충청도에서는 감사의 손자 불알을 까버렸다는디. 감사 놈 때문에 생목숨을 잃은 이가 한둘이 아니니 이런 놈은 종자를 아예 없애부러야 한다고. 안동 김 씨 가문 노비 두 명이 제 상전을 대추나무에 발가벗겨 매달고 돼지처럼 불알을 까불고.”

양쪽에서 디딜방아 찧듯 주거니 받거니 쿵작이 척척 맞았다. 외손녀인걸 알면 머리채라도 쥐어뜯을 것 같아서 태리는 숨을 죽이며 쓰개치마를 더 깊숙이 뒤집어썼다.     

노파와 아낙네 소리가 잦아진 뒤에도 태리는 쓰개치마 속 무릎에 고개를 묻고 잠들지 못했다. 가마니 위에는 모기 빈대 천지 벼룩이 날뛰었다. 피를 탐하는 벌레에 물어뜯긴 자리가 가려워 미칠 것 같았다. 여름이면 늘 담양 대자리에 누워 모시이불을 덮고 어머니 부채바람에 잠이 들었다. 깊은 우물 속에서 건져 올린 수박과 참외를 먹고 싶을 때면 원 없이 먹었다. 시원한 수정과 생각이 간절했다. 계피와 생강을 달인 물에 꿀을 타고 곶감을 띄운 수정과는 태리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봄이 와서 진달래가 피면 곶감 대신 분홍빛 진달래 꽃잎을 잣과 함께 띄워 내는 것은 어머니 운봉 댁만의 고운 솜씨였다. 내가 너를 가져 입덧 할 때 아무것도 못 삼키고 그저 수정과만 입에 달고 살았더니.... 수정과를 먹는 태리를 볼 때마다 어머니 운봉댁은 그리 말하며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암담한 것은 잠시도 참을 수 없는 모기와 빈대보다도 인두라는 사내의 말이었다. 내가 누이라니 그가 내 오라버니라니. 어머니가 달구어진 인두로 어린 입을 지졌다니.... 꿈 인가 해서 입술을 깨물어볼 뿐 차마 어머니에게 물어볼 수 없는 말이었다. 인두를 만나야 했다. 그자가 어찌 누이라 하는지 어찌 검은 묵주를 붉은 능소화 아래 올려놓았는지 알아야 했다.     

꼬끼오.

깜박 졸았나 싶은데 닭 우는 소리가 들렸다.

뒷간에 다녀온 노파와 아낙이 물그릇을 들고 벽을 향해 무릎을 꿇고 웅얼 웅얼 하는 소리가 났다. 태리가 가만히 들어보니 시천주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 동학도들이 외는 주문이었다. 동학도들이 어찌 옥에 갇혔을꼬. 물끄러미 쓰개치마 틈새로 주문을 외는 모습을 쳐다보는 사이 해가 밝아왔다.

“배 띄워라 배 띄워라 남조선 배 띄워라 

만경창파 너른 바다 두둥실 배 띄워라”

날이 훤해지자 수염이 하얀 노인이 뱃노래를 부르며 옥문에 들어섰다. 그리고는 바구니에서 데친 호박잎으로 돌돌 뭉친 주먹밥 하나씩을 꺼내 나눠주었다. 공안의 사람들이 밥을 먹는 사이 노인은 담뱃대를 꺼내 담배를 피워 물고 앉아 읊조렸다. 

“다시 개복의 때가 왔소. 마음을 바로잡고 하늘의 뜻을 어기지 않는다면 머지않아 조선땅은 지상의 선계로 될 터이니. 이 하늘나라는 아주 오래갈 거요. 개벽이래 처음 만나는 좋은 운 이외다. 진인이 먼저 남조선 땅에 머물렀으니, 하늘의 도가 세상을 밝히고, 남조선은 만민의 피난처가 될 것이오.”

노파가 밥을 먹다 말고 물었다.

“송하 도사님은 개복 세상 오면 못해도 능참봉은 허시것소. 우리는 언제 옥에서 나갈랑가 혹시 도소에서 먼 소리 없었소?”

“수심정기를 그리 말해도 선천의 탐욕을 어찌 못 버렸는고. 대도소에 삯바느질 왔으면 일하고 곡식이나 받아갈 것이지 옷감을 왜 몰래 훔쳐 치마 속에 숨겨나가 우세스럽게 옥에 갇힌단 말이오. 새 하늘이 열리는 시대에 좀도둑질이라니.”

“아따, 보리밥 속에 강된장이 짭조름하니 개미가 있구마요.”

아낙네가 힐끗 운봉댁을 보더니 송하 도사를 향해 눈을 흘겼다.

“하루만 번 주문을 외우라 했으니 수심정기 마음을 바로 닦으시오.”

홍역 걸린 듯 얼굴에 모기를 뜯겼지만 삼월이는 호박잎 주먹밥을 맛나게 먹었다. 하지만 태리는 주먹밥을 삼월이에게 내밀었다.

“안 묵으려오?”

우두커니 주먹밥을 쥐고 있는 운봉댁을 보고 노파가 물었다. 운봉댁이 손을 털 듯 주먹밥을 건네주었다.     

“밥 다 묵었으면 최 처녀는 이리 나오시오.”

수염이 하얀 송하 도사가 태리를 데려간 곳은 베롱나무가 비단을 펼친 듯 분홍꽃을 피운 기와 전각이었다. 인두와 함께 의자에 앉아있다가 일어선 사내는 검은 옷을 입고 있었다.

“반갑소이다. 앉으시오. 우리 인두 아우가 누이를 찾았다고 들었소. 김개남이오.”

인두와 마찬가지로 갓 없는 상투머리에 푸른 머리끈을 두른 이마가 환했다. 호랑이처럼 푸른 기운이 서린 반짝이는 눈에 반듯한 콧날, 이 사람이 새 하늘 새나라 개벽 진인 김개남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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