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의심하지 않는 일상을 바라며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가 점점 심해지는 요즘이라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 한 시간 거리에 사는 친구를 만나러 간 적이 있는데, 헤어지기 전 친구는 지하철역 근처에서 말을 거는 사람들이 많다며 나를 역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나 그렇게 물렁물렁한 성격 아니라고, 모르는 사람한테 쉽게 휘둘리지 않는다고 아무리 말해도 안심이 되지 않는지 친구는 기어코 나를 탑승 게이트 안까지 데려다준 후에야 발길을 돌렸다.
길거리에서 괜스레 말을 거는 사람들을 몇 번 만나본 적이 있다. 어떤 명분을 들어도 그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 모른다는 의심에, 또 주변 사람들의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던 이런저런 경험담에 경계부터 하게 된다. 나의 존재도 타인에게 그렇게 느껴질 거라는 것을 생각하면 조금 씁쓸하지만.
운동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시각은 밤 10시 즈음이다. 무심코 걸어가다 넓은 도로에서 나와 반대 방향에서 걸어오시던 분이 컵라면을 여러 개를 탑처럼 쌓아 들고 가시는 게 눈에 띄었다. 그중 맨 위에 있던 하나가 떨어졌고, 그걸 주우시려다 와르르 떨어뜨리시는 걸 보고 반사적으로 달려가서 라면을 주워드렸다. 가까이에서 보니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여학생이었다.
그제야 아차 싶었던 건, 그 아이의 입장에서는 내가 무서웠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캄캄한 밤이고, 하필 내 옷도 상하의 모두 검은색이었고, 마스크에 안경까지 끼고 있어 이목구비가 잘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무섭게 느껴질 수도 있었다. 아무래도 흉흉한 세상이니까 혹시 놀랐을까 봐 내가 더 당황하고 있는데, 다행히도 그 아이는 놀란 기색 없이 덤덤하게 감사하다고 인사하고 유유히 지나갔다.
뜻밖의 호의를 덤덤하게 받는 것도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고마웠다. 나는 사람에게 경계가 심하다기보다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쉽게 당황해서 날카롭게 대응하는 편이다. 그런 태도가 나를 보호할 수도 있지만 친절에 대한 무례가 될 수도 있으니까, 조금은 부드러운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밤길을 마저 걸어왔다.
나를 지하철역까지 데려다주었던 그 친구와 함께 얼마 전 한강에서 2인용 자전거를 탔다. 스무 살이 되도록 자전거를 타지 못하는 나에게 싫은 소리 하나 없이 친구는 핸들을 잡았다. 친구도 오랜만에 자전거를 탄 것이라 페달을 밟기 전부터 서로 우왕좌왕했지만, 우리의 자전거는 어찌저찌 경쾌하게 굴러갔다.
자전거를 타다 반대편에서 오시던 어르신이 뭐라 뭐라 외치시는 것이 들렸다.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나와는 달리 친구는 감사하다고 크게 외쳤고, 어르신은 여유 있게 웃으시며 빠른 속도로 지나가셨다. 친구는 나를 돌아보며 자전거를 잠시 멈추자고 말했다. 왜, 뭐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분께서 우리가 차도에서 달리고 있다고 알려주셨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지나가던 차가 없어서 망정이지, 안 그래도 비틀비틀 달리던 중에 자동차까지 만났다면 어떻게 피했을지 순간 아찔했다.
멈춰 선 김에 잠시 일몰을 보고 다시 달리기로 했다. 마침 한강을 배경으로 웨딩 촬영을 하는 분들이 보였다. 그림 같은 하늘과, 그림 같은 사람들을 바라보며 우리는 한참이나 좋다는 말을 연발했다. 다시 자전거를 타고 왔던 길을 되돌아가려던 중에 몇몇 분들이 우리에게 자전거를 어디서 대여했는지 물어보셨다. 천성이 다정하고 사교적인 친구는 대여소 위치며, 가격이며, 한참이나 이것저것 알려드렸다. 얼마 전에 내 팔짱을 끼고 역까지 데려다주던 경계 어린 모습과는 정반대인 완전히 친근하고 따뜻한 모습으로. 해가 완전히 지기 전 잠시 분홍빛을 머금고 있는 하늘과, 바람에 가볍게 흔들리는 나무들을 바라보면서 이런 공간에서 누군가를 의심하는 것이 어쩌면 더 힘들겠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한강 입구 쪽으로 돌아갈수록 하늘은 빠르게 어두워졌고, 동시에 동화에서 현실로 빠져나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어쩌면 어르신의 조언이 참견으로 들리고, 낯선 사람의 물음에 친절하게 답하는 것이 이질적으로 느껴질지도 모를 현실. 나를 보호하되 조건 없이 친절을 베풀어주는 사람들의 마음도 보호하자고, 그렇게 생각하며 페달을 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