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깜빡하고 아무도 알아보지 못해도
향수 뿌리는 걸 깜빡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향수를 거의 매일 뿌린다. 궁극적인 이유는 익숙함이라는 얇은 경계를 세우기 위해서다. 익숙하고 좋아하는 향이 나는 그 좁은 범위 내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학교라는 공동의 공간에서 내 작은 공간을 지킬 수 있도록.
그럼에도 하루도 빼먹지 않고 뿌리는 건 아니다.
그리고,
그 향을 항상 누군가가 알아봐 주는 건 아니다.
내가 향수를 뿌리는 건 주로 나와 가까운 사람들만 알아챈다. 그도 그럴게 진한 향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주로 은은한 생화 향을 티 날듯 말 듯 뿌린다. 친구들은 이따금씩 오늘 향 마음에 든다, 라며 웃어 보이지만 아무런 감상평 없이 지나가는 날이 훨씬 더 많다. 크게 상관은 없다. 애초에 내가 맡으려고 뿌리는 거니까.
그럼에도 누군가 알아봐 주는 순간은 특별하고 기쁘다. 작년 여름부터 겨울까지 반 년간의 동거인, 룸메이트들 덕분에 그걸 처음 알게 되었다.
학교는 밀폐된 공간이기 때문에 기숙사 방이나 면학실에서는 향수 뿌리는 걸 조심하는 편이다. 후각만큼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감각이 없으니까. 그러나 그때만큼은 기숙사에서 향수를 참 많이도 뿌렸다. 네 명의 생활로 꽉 채워지는, 침대 턱에 걸려서 옷장 문을 활짝 열지도 못하던 그 좁은 4인용 방에서 우리는 세 명만 생활하는 행운을 누렸다. 바로 옆 자리가 공석인 최고의 행운아는 바로 나였다. 만세! 맥시멀 리스트인 나는 옷장 두 개를 모두 내 옷으로 채우고, 빈 침대에도 각종 잡동사니를 쌓아두었다. 향수로 만들어지는 나만의 개인 공간도 넓힐 수 있었다. 두 명의 룸메이트들과는 옷장으로 공간이 구분되기 때문에 등교 전 옷장 앞에 서서 매일매일 자유롭게 향수를 뿌렸다.
반년간 나는 소분되어 있는 향수들로 약 서른 가지 정도의 향을 뿌려보았다. 그 향은 옷장을 넘어가서 룸메이트 둘은 이따금씩 나에게 향수 냄새가 좋다고 말을 건넸다. 한 명이 "너랑 룸메이트 돼서 좋은 점은 좋은 향이 나는 거야"라고 장난스럽게 말해준 순간부터 나는 거리낌없이 향수를 뿌렸다. 둘의 코멘트는 항상 명료하면서도 직관적이었다.
오! 오늘 향 좋다. 음, 이 향 마음에 든다.
내가 요구하지 않아도 혼잣말처럼 나오는 그 감상을 들으며 나는 뿌리고, 뿌리고, 또 뿌렸다.
학년이 바뀌면서 룸메이트가 달라졌고 내가 사용하는 향수 역시 몇 종류 바뀌었다. 룸메이트들과는 예전만큼 모든 걸 공유할 수는 없었지만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수업 시간에 간간이 만났다.
미술실로 올라가 옆자리에 앉자마자 룸메이트가 말했다.
너 향수 바꿨어?
처음이었다. 향이 좋다는 사람은 봤어도 바뀐 걸 알아보는 사람은. 그것도 정확하게 처음 개시한 날.
"그걸 어떻게 알았어? 오늘 뿌린 건 화이트 자스민 앤 민트. 조 말론 꺼."
"무슨 향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그냥 평소랑 달라."
이건 눈썰미가 아니고 코 썰미(?)라고 해야하나, 이런 우스갯소리를 주고받으며 낄낄거렸다. 나는 그 순간이 지금껏 향수 덕분에 들어온 그 어떤 칭찬보다도 더 좋았다.
그날 점심을 먹으러 급식실에 가다가 다른 룸메이트 한 명을 마주쳤다. 늘 그랬듯 우리는 가볍게 끌어안았다.
향수 바뀌었다! 맞지?
어떻게 딱 이 둘만 알아보는 건지.
향수를 뿌릴 때 누군가의 긍정적인 답신을 전혀 기대하지 않는다고는 차마 말하지 못하겠다. 친구가 이 향이 좋다고 말하면 그 친구를 만날 때마다 같은 향을 뿌리기도 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다른 누군가에게도 순간의 즐거움을 느끼게 해 준다는 건 생각보다 더 화사한 기분이 든다.
하지만 나는 오늘도 향수 뿌리는 걸 깜빡했다. 많이 좋아하지만 공기 같은 존재는 아니다. 때때로 소홀하게 대한다.
향수의 그런 점에서 나는 종종 친절함을 떠올리게 된다.
나는 그다지 친절한 편은 아니지만 친절을 알아보고 기억하는 데는 나름 자신이 있다.
"혹시 저희 사진 좀 찍어주실 수 있을까요?"
놀이공원 포토존에서 줄을 서 있던 중 나와 친구 앞에 서 있던 한 커플이 나에게 조심스레 휴대폰 카메라를 내밀었다.
“그럼요!”
짧은 시간 동안 내가 알고 있는 미약한 사진 지식을 총동원했다. 수평, 수직을 맞추고 다리는 최대한 길어 보이게. 빛 때문에 얼굴이 어둡게 나오지 않도록.
놀이기구를 타러 가며 친구가 나에게 말했다.
“아까 그 커플분 사진 찍어드릴 때, 너 흐뭇하다는 듯이 엄청 활짝 웃으면서 찍더라?”
친구의 다정함에서 나오는 관찰력은 종종 나도 모르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그게 표정으로 티가 났어? 최대한 잘 찍어드리고 싶었어. 두 분 다 엄청 좋으신 분 같았거든.”
사실 난 그 커플이 나에게 말을 걸기 전부터 지켜보고 있었다. 포토존 줄을 서는 곳에는 유모차를 가지고 온 가족분들이 이용하는 엘리베이터가 한 대 있었다. 한 유모차가 엘리베이터로 향하자 그 커플 중 남자분은 손으로 엘리베이터 문을 잡고, 여자분은 문 열림 버튼을 누르고 계셨다.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는 듯 덤덤하고 자연스럽게. 그 조용하고 작은 친절의 움직임은 모두들 귀찮은 기색으로 유모차에게 길을 터 주던 차가운 공기 속에서 유일한 따뜻함이었다.
그 장면을 포착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거다. 나는 그런 티 나지 않는 친절을 좋아한다. 그리고 때로는 나만 저 친절을 눈치챘다는 게 아쉽기도 하다. 두 분은 나에게 휴대폰을 돌려받으면서 감사합니다, 라고 나직하게 대답하며 웃었다. 본인들의 친절함에 어울리는 해사한 표정으로.
학교에서 딱 하루만 있어도 나는 수많은 친절을 발견한다. 가위를 건넬 때 나에게 손잡이 쪽으로 돌려주고, 프린트물을 넘길 때 내가 받기 좋게 자신의 상체를 완전히 돌려서 건네주고, 내 발소리만 듣고도 문을 열면서 내가 지나갈 때까지 문을 잡아주는 그런 친절함.
향수도, 친절도 그 사람의 주위를 은은하게 감싸며 떠돌아다닌다.
누군가 내 향수 향을 알아봐 줄 때의 기쁨을 알기 때문에
나는 누군가의 옅은 친절의 향을 맡기 위해 더더욱 관심을 기울인다.
그리고 그 따뜻함을 기억하고 미약하게나마 따라 한다. 친절함을 굳이 기억까지 해야 하냐고 누군가 반문할 수 있지만, 부끄럽게도 나는 모든 친절이 몸에 완전히 배어 있지는 않다. 세면대에서 수도꼭지를 잠글 때 냉수 쪽으로 방향을 돌려놓는 것이나, 박스테이프를 뜯고 난 뒤 다음 사람을 위해 끝을 조금 접어두는 건 아직 의식적으로 기억해야 한다. 순간 깜빡하고 아차차, 하며 되돌아갈 때도 있다.
기억해서 행해야 하고 그럼에도 아무도 몰라줄지 모르는 그 비효율을 나는 아름답다고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