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안녕? 나 지금 도덕 시간이라 톡 할 수 있어. 엄마한테 메시지 보내래. 엄마 항상 밥 만들어줘서 고마워. 항상 맛있어. ㅎㅎ 그리고 친구가 엄마 예쁘데. 사랑해. 항상 고마워.”
그렇다. 도덕 차원에서 나한테 톡을 한 거였다. 얼마나 할 말이 없었으면 단 두 줄의 메시지에 ‘항상’이 세 번이 있었다. 냉장고나 가구처럼 ‘항상’ 집에 있는 엄마라서 할 말이 어지간히도 없었나 보다. 나도 답장을 보냈다.
“안녕? 네가 도덕 시간에 톡 보내서 나도 보내. ‘항상’ 밥 먹어줘서 고마워. ‘항상’ 맛있어하는 것 같지는 않지만. ㅎㅎ 그리고 엄마 예쁘다고 한 친구 누군지 말해줘. 사랑해. ‘항상’ 고마울게.”
요즘은 도덕 시간에 엄마에게 문자 보내기를 한다
평소에 초밥이는 자랑할 게 있거나 뭘 사달라고 할 때만 나한테 톡을 한다. 답장은 다음 날이 되도록 확인도 하지 않는다(지금도 내가 보낸 톡에 1이 지워지지 않고 있다).
이런 식이다
일요일 아침에 내 방에 들어온 아빠는 “내가 너 때문에 사는 거 알지?”하며 내 등을 토닥거렸다. 공부하고 있는 내가 기특하다는 뜻이었지만 나는 그 말이 반갑지 않았다. 아빠를 기쁘게 해 주기 위해서 더 열심히 공부해야지, 같은 공익방송에 나올 법한 생각은 더욱 들지 않았다. 그런 건 방바닥에 블루마블을 깔고 호텔을 지을 때나 하는 거였다.
나는 아빠 말이 부담스럽기만 했다. 세상에 나보다 잘나고 똑똑한 인간들이 넘쳐나고 그 속에서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막 깨달은 시점이었다. 아빠를 실망시키고 싶지는 않았지만 아빠가 생각하는 것보다 나는 형편없는 인간이어서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저 아빠 앞에서는 아빠가 원하는 대로 공부 열심히 하고, 고민 없는 척 그래서 아무 문제없는 척했다. 왜냐하면 아빠는 내 눈에도 하고 싶은 대로 살지 못하는 가여운 사람이니까.
“야들 와가 학용품이나 간식 달라고 하면 주이소. 월말에 결재해드리께예.”
아빠는 학교 앞에 있는 <일신문고>에 오빠와 나를 데리고 가서 말했다. 덕분에 우리는 컵라면과 얼린 요구르트를 외상으로 먹을 수 있었다. 다른 아이들이 사 먹을 때 우리가 돈이 없어서 쳐다만 보고 있을까 봐 그게 아빠는 걱정이 되었던 거다.
할아버지는 농사일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비료도 주지 않고 잡초도 뽑지 않은 논에서 나오는 걸로는 열 명의 식구가 먹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팔 남매 중 여섯째인 아빠는 늘 배가 고팠고 학교에 내야 할 돈을 내지 못했다. 그래서 결심했다. 자신은 자식들 배를 골리는 아버지가 되지 않겠다고.
아빠는 자식들이 물질적으로 부족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다. 그래서 나는 아빠가 등을 두드릴 때 힘들다고 말하지 못했고 처음으로 사귄 사람과 헤어졌을 때, 첫 직장에서 부당해고를 당했을 때 내색하지 못했다. 아빠의 고단한 삶에 나까지 보태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을까. 이제와 생각하면 아빠와 나는 삶의 많은 부분을 함께 나누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든다.
초밥이가 ‘처음’을 경험할 때 스스럼없이 찾을 수 있는 사람 중에 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처음을 겪고도 잘도 살아가고 있는 엄마를 보면서 위로와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망해도 괜찮구나, 산다는 건 넘어지는 일의 연속이고 그건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엄마를 산 증인으로 삼았으면 좋겠다.
나보다 더 속상해하고, 나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이 엄마라서 차마 말할 수 없는, 그런 엄마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나 때문에 희생하고 많은 걸 포기한 사람이 엄마여서 불쌍하고 미안해서 마음이 아프지 않기를 바란다. 늙어가는 엄마를 생각하면 눈물부터 나서 결국 자기가 힘들다는 말은 하지 못하는, 그런 거 우리는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초밥이가 아는 사람 중에 구질구질한데 이상한 가오로 빛나는 사람이 나였으면 좋겠다. ‘우리 엄마는 궁상맞은데 폼 나는 사람이란 말이지’ 같은 말을 듣고 싶다. 나와 주고받는 농담 속에서 망했지만 그래도 한번 해보자는 생각이 든다면 나도 아빠만큼이나 내가 받은 유산 안에서 최선을 했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