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고 으스스한 날씨가 삼일째다. 이 비가 그친 뒤에는 겨울이 불쑥 들이닥칠 것만 같아 가슴이 서늘해진다. 겨울도 그만의 정취가 있지만 가을에서 겨울로 가는 시기에는 어쩔 수 없이 아쉬움과 쓸쓸함이 깃드는 것 같다. 아침부터 내리는 비에 내 마음도 젖은 낙엽처럼 바닥에 깔린 기분이었다.
이 서운함의 정체는 정작 삶의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을 즐기지 못하고 흘려보내는 게 아닌가 하는 조바심에서 오는 것인지 모르겠다. 스산하게 부는 바람에 이리저리 나부끼는 내 마음은 오늘 밤에는 술이라도 한 잔 할까 로 갔다가 친구 L로 이어졌다.
L은 연애를 시작하면 어떻게 그렇게까지 하나 싶을 정도로 남자 친구밖에 몰랐다. 모든 일의 우선순위는 남자 친구였고 뭘 하든 남자 친구와 함께였다. 그가 기다리게 하거나 수고스러운 부탁을 해도 마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헤어지고 나면 그걸로 끝이었다. 남자가 아무리 울고 불고 매달려도 다시 사귀는 일은 없었다.
세상에 오직 그 남자밖에 없는 것처럼 굴던 L의 극적 반전에 나조차 당황스러웠는데 남자 친구는 오죽했을까. L은 그 이유가 활활 타고 꺼져 버린 재처럼 자기한테는 아무 감정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이러니한 건 L이 사귀었던 남자들은 죄다 오랫동안 L의 주위를 맴돌았다는 사실.
L이 타오르는 장작이라면 나의 연애스타일은 성냥개비 같은 거였다. 평균 교제기간 3개월에 헤어진 뒤에는 어김없이 남은 감정에 질척거렸고, 상처를 달래기 위해 또 다른 사람을 만나기를 반복했다. 나한테 연애는 두 사람의 마음 깊은 곳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상대 마음이 어디까지인지 확인하고 그만큼만 주는 거래 같았다.
충분히 사랑해서 후회가 없다는 말을 L이 했을 때, 나는 그 남자가 그 사랑을 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인가 하는 의심을 했지만 이제는 L이 멋있다고 인정한다. L은 자기 사랑에 최선을 다했고, 한 남자를 넘어 깊은 자신의 감정에 충실했다. 후련하다는 마음은 거기서 비롯된 것이었다.
성냥개비 사랑 전문인 나는 이제 산으로 간다. 새벽부터 시작한 산행은 아침을 맞이하고 나른한 정오를 지나 해가 저물기 시작하는 오후까지 이어졌다. 10시간 이상 산을 헤매다 아스팔트 길을 밟으면 이만하면 됐쓰, 충분해, 미련 없어, 하는 마음이 생기는데 그게 친구가 말한 “후련하다”인가 짐작해봤다. 모든 기회가 소멸된 마당에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오직 어림짐작, 추측, 때려 맞추기밖에 없는 것이었다.
“어차피 내려올 산을 왜 올라가냐”
이 질문은 오랫동안 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언젠가 받은 이 질문에 나는 오랫동안 답을 찾았고 그 물음은 뜻밖에 글은 뭐하러 쓰나, 책은 읽어서 뭐하나, 운동은 해서 뭐하나, 밥을 왜 하나 등등의 일상으로 이어졌다.
어쩌다 쓴 괜찮은 글은 앞의 변변찮은 글들 덕분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파다가 멈춘 지점에서 땅을 파는 것처럼 다음에는 좀 더 깊은 곳까지 갈 수 있었다. 그럴 때 기대가 생긴다. 이다음에 다다를 지금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기대. 오늘의 삽질은 부질없는 게 아니고 오늘은 오늘 할 일만 하자는 다짐을 하게 되는 순간이다. 삶도 지난한 삽질의 연속이니까.
삽질을 체화하는데 등산만 한 것도 없다. 지금 하는 일의 효용성 같은 건 생각할 틈도 없이 헉헉거리며 오르다 보면 잠깐의 휴식이 그저 감사할 뿐이다.
이번 주는 음정마을에서 연하천 대피소를 거쳐 성삼제로 내려가는 코스였다. 언제나처럼 연신 “힘들다”를 내뱉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힘들어서 뭐? 힘들다는 말은 왜 하는 거지? 누가 알아달라고 하는 건가? 누가 나를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하는 건 아닐까? 달리 할 일이 없는 시간 속에서 나는 그 말을 곱씹어봤다. 각자 자기 몫의 고단함을 견디고 있는데 나 혼자 누군가한테 의존하려는 마음이 숨어 있음을 발견했다.
힘든 걸 내 안으로 가져오는 건 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힘든 건 맞지만 굳이 밖에 있는 걸 들여올 필요는 없는데. 오르막과 내리막은 내가 바꿀 수 없고 제멋대로 나타났다 사라지는데 그 앞에서 나는 울고 웃고 있었다.
바라본다는 건 어려운 일일까. 여기는 돌이 뾰족뾰족하네, 경사도가 거의 수직 수준이군, 이 계단이 설마 하늘로 이어지는 건 아니겠지, 아아, 힘들다고 한 건 아니야, 그냥 그렇다는 거지, 죽겠지만 멈추겠다는 건 아니고 그냥 천천히 반 보씩 갈 거야. 멈추지만 않으면 성공이니까 다른 사람 신경 쓰지 않고 반보씩 반보씩만 갈 거야.
등산은 어쩌면 이리도 삶과 닮음꼴인지 깜짝 놀라고 말았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들을 굳이 내 안으로 들여와서 아프게 하는 건 결국 나 자신일지 모른다는, 바라보기를 할 수 있다면 사는데도 숨 쉬기가 편해질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이런 건 몸이 고달파봐야만 알게 되는 걸까. 뜨뜻한 방바닥에 엎드려서 귤 까먹다가 알게 되면 얼마나 좋으냔 말이다. 육체의 고통과 정신적 평안의 음의 상관관계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몸을 고단하게 하면 머리가 맑아진다. 자칫 발이라도 헛디딜까 한발 한 발에만 집중하는 동안 머리는 쉬게 된다. 산을 내려오면 몸은 피곤한데 대책 없이 발랄해지는 건 이 때문이다.
22킬로미터 산행을 마치고 노고단 대피소에서 차를 세워둔 음정마을까지 가기 위해 택시를 호출했다. 단풍철을 맞아 성삼제 휴게소를 찾은 인파 때문에 길이 막힌다는 택시 기사님의 전화를 받고 주차장 입구에 앉아 기다리기로 했다. 한가로운 오후 볕을 쪼이다가 희남이 삼촌이 “심심한데 오징어나 먹자구” 하면서 오징어를 꺼냈다.
랜턴을 켜고 시작해서 나에게 무수한 질문을 쏟아낸 등산은 이렇게 오징어로 막을 내렸다.
“오징어 삼 형제 사진 찍어줄게요”
오늘의 엔딩컷, 후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