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0시, 초밥이는 책상 앞에 심란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공부하기 싫지?”
“어, 완전.”
학교에서 돌아온 이후 내내 침대에 누워있는 초밥이를 보고 내가 “혹시 마비됐어?”라고 했더니, 늘 같은 대답 “나가”가 돌아왔다. 왜 모든 질문은 "나가"로 수렴되는가.
다음날 새벽 5시, 초밥이 방에서 울리는 알람을 듣고 내가 일어났다. 거실에서 책을 보는데 십분, 이십 분, 삼십 분이 지나도 조용했다. 나는 기어코 초밥이 방문을 열고 말았다.
“공부하려고 알람 맞춘 거 아냐? 거실에서 공부할래?”
초밥이가 일어나는 걸 보고 문을 닫았는데 또다시 찾아온 정적.
지난 시험기간에 알람이 울리는 걸 듣고도 내버려 뒀더니 아침에 절망적인 얼굴을 한 초밥이를 보고, 이번에는 아는 척이라도 해야겠다 싶었다. 초밥이 아이폰은 삼십 번을 흔들어야 알람이 꺼진다는데 온갖 역경에도 깨지 않는 데 성공한 초밥이에게 박수를 보내며 나는 밥을 했다. 메뉴는 초밥이가 좋아하는 돈가스와 채끝살 샐러드.
"밥 먹어"하고 돌아서니 초밥이가 식탁에 앉아있어서 깜짝 놀랐다. 초밥이는 성실하게 밥을 먹고 있었다.
“시험 때문에 부담돼?”
“조금.”
“공부해야 하니까 일어나기 싫은 거다? 에버랜드 간다고 해봐, 벌떡 일어나지.”
(기분도 안 좋은데 그런 소리를 왜 해? 자중의 목소리가 들렸다)
“예전에 엄마도 시간 맞춰놓고 자버린 적 많았다? 그때 친구가 자기 엄마가 안 자고 옆에 있어줬다고 하길래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엄마도 해줘?”
“괜찮아. 굳이.”
“바로 그거야. 넌 남에게 피해 준다 싶으면 네가 더 불편하잖아.”
초밥이는 내가 수고스러울까 수학 문제도 결코 물어보지 않는다.
“시험 못 쳐도 괜찮아. 근데 네가 안 괜찮지? 이번에는 연습 삼아 본다고 생각하고 지금부터 다음 시험을 준비해.”
(그만하는 게 좋을 거라는 기운을 느꼈지만)
“너는 중학교 간 이후로 늦었다고 차 태워달라는 말을 한 번도 안 한 사람이야. 스쿨버스 놓치면 아빠가 준 카드를 써도 되지만, 네 용돈으로 택시비를 내는 양심적인 인간이지. 그런데 공부까지 잘하고 싶은 거야, 안 그래?”
(나의 칭찬이 효과가 있던 시기는 지났다는 건 알고 있다)
“그래도 시험 잘 보고 싶으면 다음에는 매일 시간을 정해놓고 미리 공부해. 그러면 시험 날짜가 다가와도 초조하지 않을 거야.”
“어.”
초밥이의 짧은 대답으로 우리 대화는 끝이 났다. 그리고 놀랍게도 초밥이는 다시 자러 들어갔다.
초밥이 방을 청소하다가 한 장도 풀지 않은 수학 문제집을 발견했다. 두 달 전 초밥이의 요청으로 사준 문제집이었다. 자녀 방을 청소하는 건 갈등의 씨앗이 되기에 가능하면 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여러분.
나는 초밥이가 초등학교 때부터 거의 새것에 가까운 문제집을 버리는 걸 보고도 모른 척 해왔다. 첫째는 나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였고, 둘째는 잔소리는 공부를 하기 싫게 하는 주범이며 셋째는 죄책감을 가질 기회도 갖지 못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초밥이에게 문제집은 심리적 위안을 주는 용도인 건가, 지금까지도 빳빳한 문제집을 놓고 보니 초밥이가 문제집은 버려도 찜찜한 기분은 버리지 못할 거라는 나의 예상은 빗나간 게 아닌가 싶었다.
아빠는 야간 자율학습이 마치는 시간에 나를 데리러 왔는데(고등학교는 우리 집에서 버스 한 코스도 안 되는 거리에 있었다), 한 번은 술 냄새가 난 적이 있었다.
“오늘 계모임 있었는데 우리 공주 데리러 올라꼬 중간에 나왔데이.”
“이런 날은 안 와도 돼”
교복 치마 안에 체육복을 입고 슬리퍼를 신은, 공주와 거리가 멀어도 한참이 먼 나는 퉁명스럽게 말을 뱉었다.
술기운 때문인지 아빠는 기분이 좋아 보였고 술자리에서 있었던 친구들이 딸이 그렇게 좋냐고, 애인 만나러 가는 놈 같다고 했다고 말했다. 나는 입을 꾹 다문채 창밖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날은 내가 야자를 빼먹고 시내에 놀러 간 날이었다. 아빠가 오는 시간에 맞춰 학교에 왔는데 가슴에 무거운 돌덩이 하나가 얹힌 기분이었다. 이상한 건 그날 아빠 얼굴이 지금까지 잊히지 않는다는 거다.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했는데 아빠의 표정, 목소리가 깊이 새겨진 것만 같다.
나는 늘 아빠가 사랑하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다. 사랑에 서툴러서 상대를 아프게 하는 사람이라고, 나는 닮고 싶지 않다고 아빠를 밀어낸 적도 있었다. 나도 바보 같은 짝사랑을 하고 나서야 아빠 얼굴이 보인다.
또 한 번은 독서실에 내가 자리를 비웠을 때 아빠가 온 적이 있었다. 아빠가 다녀갔다는 독서실장의 말을 듣고 혼날 각오로 집에 갔는데, 아빠는 “공부가 안되면 집에서 쉬지 그랬냐”하고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아빠는 무심하게 신문을 보고 있었지만, 나는 아빠가 실망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아빠가 나를 이해하려고 애쓰고 있다고 느꼈다.
알고도 모르는 척, 속으로 감정을 삭이는, 어떤 게 나은 방법일까 고심하는 부모의 눈빛은 유효기한이 없는 사랑이다. 아빠는 그런 사랑을 내게 심어줬다.
그래서? 문제집 사건은 내가 모른 척 했느냐?
“문제집 필요 없지? 엄마 보고 싶은 책으로 바꿀 거다!”
화냈다. 유치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