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준정 Nov 08. 2023

오늘은 속절없이

내가 옷을 좀 사야 되겠다고 했더니 초밥이가 나만 입을 수 있는 옷(아줌마 옷)을 살까 봐 자기랑 같이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내가 ‘나 어때? 괜찮지 않아? 어려 보이지? 어울려? 날씬해 보이지 않냐?’ 하고 물으면 질문은 달라도 초밥이 대답은 하나다. 

    

“아줌마 같아.”     


가끔 나오는 “좀 낫네”가 칭찬이다. 그러면 나는 “왜 그렇게 정확해야 하는데?”라고 한다. 초밥이한테 하도 저평가를 받아서인지 나이가 드니까 취향이 없어지는지 몰라도 최근에 나도 내 선택에 자신이 없어졌다. 사람 감 떨어지는 건 한순간이다 싶다.     


그런 이유로 초밥이와 함께 쇼핑을 가기로 했는데, 문제는 초밥이와 시간을 맞추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라는 점이다. 평일 저녁은 초밥이는 학원, 나는 수업해야 해서 안되고 일요일은 내가 산에 가기 때문에 가능한 날은 토요일밖에 없다. 격주 주말은 초밥이가 아빠한테 가니까 아빠한테 가지 않으면서 친구와 약속이 없는 토요일이어야 한다.     


그렇게 이삼주를 보낸 어느 토요일 시간을 만들었다. 그날도 초밥이는 나와의 약속 말고도 세 건의 스케줄이 있었다.      


1. 오전 9시에 학교가 있는 동네 축제(미성동과 소룡동 주민이 함께하는 ‘미소축제’)에 초청댄스팀으로 출연 

2. 친구랑 놀기

3. 저녁 5시에 아빠 만나기     


나와는 2번과 3번 사이, 2시에서 5시까지 쇼핑을 가기로 했다. 나도 2시까지 수업이라 끝나자마자 나가려고 하는데 초밥이한테서 1차 전화가 왔다.     


“엄마, 친구들하고 금방 피시방에 왔는데 더 놀면 안 돼?”


그래서 3시에 데리러 가겠다고 했는데 2시 30분쯤 2차 전화가 왔다.     

 

“엄마, 어떡하지? 아빠가 지금 오고 있데. 저녁에 온다고 했는데 일이 이래저래 여차저차 되어서 그렇데.” 

    

20분 후 초밥이가 집에 들어왔다. 

“엄마는 안 가?”

“혼자 뭐 하러 가.”     


초밥이는 짐을 챙겨서 나갔고 나는 냉장고에 있는 반찬을 꺼내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잠시 후 카톡을 열어보니 초밥이가 미안하다며 커피쿠폰을 보내왔다.      


오늘 초밥이는 아빠와 함께 살게 될 아파트를 가본다고 했다. 초밥이 아버님이 이사와 집정리를 끝내고 처음으로 초밥이한테 집을 선보이는 것이었다. 그것 때문에 초밥이가 나를 더 신경 쓰는 것 같아서 (오천 원 쿠폰인데) 무슨 오만 원짜리를 보냈냐고 장난을 쳤다. 


기분이 이상했다. 뭐라고 해야 하나, 어리다고만 생각한 자식이 어느덧 자라서 나를 걱정해 주는 게 조금도 기쁘지 않고 나 때문에 마음이 아프지 않기를 바라서 괜찮은 척하는 부모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속상하고 허전하고 서운한 건 나한테 주고 초밥이는 그저 가벼운 마음이기를 바랐다.


저녁에 초밥이가 동영상을 보내왔다. 집의 내부를 찍은 건데 ‘엄마 봐봐’하는 것처럼 나를 데리고 거실, 화장실, 주방, 자기 방을 하나하나 보여줬다. 그걸 보자 초밥이와 헤어진다는 게 실감이 났다. 이렇게 속 깊은 녀석이라 딸이지만 그동안 많이 의지하면서 살았다. 나는 초밥이 걱정은 하지 않는다. 좀 이상하지만 초밥이가 걱정하지 않도록 내가 잘 살아내고 싶다. 


다음날 우리는 식탁에 마주 보고 앉았다.      


“아빠가 침대 큰 걸로 사줬어. 침대 큰 거 갖고 싶다고 했거든.”
“그래? 집은 마음에 들어?”
“어. 하얀색으로 리모델링해서 완전 내 스타일이야.”
“동영상 보니까 이제 너랑 따로 산다는 게 실감이 나는 거 있지.”  
   


그때 초밥이가 고개를 푹 숙이더니 두 손에 얼굴을 파묻었다. 

“장난이지?”
“아냐. 진짜야.”

“그러지 마. 우리 성공해서 만나자.”

나는 악수를 청하며 와하하 웃었다.       


헤어지려면 넉 달이나 남았는데 벌써부터 이러면 우리 둘 다 감당이 안될 것 같았다. 나는 정말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되었다. 초밥이를 의연하게 보내주고 싶은데 집 안 곳곳에 남아있을 초밥이의 흔적과 빈자리를 생각하면 속절없이 무너진다. 나중에 초밥이가 나를 떠올리면 피식, 하고 웃음이 났으면 좋겠는데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지.



속절없이: 단념할 수밖에 달리 어찌할 도리가 없이

성공해서 만나자


매거진의 이전글 마요네즈와 할머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