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옥수수 킬러. 한 번에 열 개 이상씩 먹기 때문에 열 개부터 개수를 센다. 그러니까 세 개 먹었다고 하면 열세 개 먹었다는 뜻. 옥수수로 하모니카 부는 내 모습은(이럴 때 볼에 옥수수 알갱이가 붙어있기 마련이다) 바보 같아 보인다.
옥수수가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는데 로컬푸드 직매장에서 초당옥수수를 발견했다. 어찌나 반가운지 얼른 집어왔다. 식탐이 있는 나는 음식을 맛있게, 아니 게걸스럽게 먹는다. 내가 먹는 모습을 보면 오직 음식과 나 둘만 있는 것 같다고 누군가 그랬다.
나와 같은 테이블 매너를 가진 분을 만났다. 소설 <다시 태어나도 엄마 딸>의 하나 엄마. 하나는 엄마가 먹을 때 개가 연상된다고 했다. 뭐만 먹었다 하면 마치 꼬리를 치며 정신없이 먹이를 먹는 개처럼 맛있다고 허겁지겁 먹어서 그렇다나. 후후. 나도 그럼 개인가?
소설에서 먹는 얘기가 많이 나온다. 하나 친구인 미카미는 중학교 입시에서 떨어졌다. 그런 자신을 엄마가 부끄러워해서 기숙사가 있는 학교로 보낸다는 걸 알고는 무작정 집을 나온다. 밤늦게 혼자서 강물을 보고 있는 미카미와 마주친 하나 모녀는 저녁을 같이 먹자며 집으로 이끈다.
마감 떨이로 산 반값 초밥과 닭튀김, 탕수육 등을 놓고 한껏 파티 분위기를 낸다. 하나 모녀는 케이크가 반값을 하는 날은 잘 없는데 러키 데이라고 기뻐한다.
혹시 죽어버리고 싶을 만큼 슬픈 일이 생기면 일단 밥을 먹으렴. 한 끼를 먹었으면 그 한 끼만큼 살아. 또 배가 고파지면 또 한 끼를 먹고 그 한 끼만큼 사는 거야. 그렇게 어떻게든 견디면서 삶을 이어가는 거야.
하나 엄마가 미카미에게 한 이야기다. 남편 없이 힘든 육체노동을 하며 딸을 키우는 하나 엄마. 한 끼를 해치우듯 하루를 살아내는 그녀의 철학이었다.
3년 전 남편과 별거를 결심했을 때, 딸의 짐을 싸서 남편에게 보냈다. 내가 딸을 안 보고도 살 수 있다면 이혼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딸과 함께하지 않는 삶, 그것이 나한테는 가장 두려운 일이었으니까. 나 자신에게 하는 선언이자 시험을 하려고 했던 것 같다.
딸은 가지 않겠다고 했다. 자신의 집과 학교가 여기에 있으니 그대로 살겠다고 했다. 자신의 당연한 권리를 주장했고 흔들림이 없었다. 결국 딸과 내가 둘이 살기로 했고 아빠와는 주말에 만나는 걸로 정했다. 이제와 돌이켜보면 아이가 나를 지켜줬다는 생각이 든다.
하나는 엄마와 신사에서 은행을 줍다가 같은 반 친구 가족을 만난다. 멋진 예복을 입은 그들 앞에서 은행을 주우러 왔다며 은행이 가득 든 봉지를 내보이며 인사를 한다. 기모노를 입은 친구 모습이 공주님 같다고 하면서도 자신이 초라하다거나 부끄럽다고 느끼지 않는다. 겨울 내내 먹을 일용할 양식(은행)을 준비한 다람쥐 모녀 같다며 좋아한다.
여기 킥복싱 모녀도 있다. 나는 딸과 함께 킥복싱을 배우는데 딸이 진도가 더 빠르다. 손에 붕대 감는 방법도 잊어버려서 매번 딸한테 묻는다. 1라운드 종이 울리면 스텝을 뛰면서 쨉, 스트레이트, 원투 동작을 반복해야 하는데, 이걸 3라운드까지 해야 한다. 내가 힘들어서 못하겠다며 바닥에 대자로 누워버리자 나림이가 철없는 동생 보듯이 보고는 한마디 했다.
"엄마는 왜 그렇게 참을성이 없어?"
운동 후에는 개운하게 샤워하고 아이스바를 하나씩 입에 물고 집으로 오는 길은 킥복싱 모녀의 평화로운 시간이다.
하나를 보면서 딸 생각이 많이 났다. 성숙하고 품이 넓은 하나와 나림이는 엄마를 지켜주는 천사 (아니 복서)다. 엄마가 참을성이 없고 식탐이나 부려도 끝까지 곁에 있어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