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만난 아이를 보면 훌쩍 커 있을 때가 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호들갑을 떨게 된다. “어머어머! 그 꼬맹이가 벌써 이렇게 큰 거야?” 아이의 성장은 너무 잘 보이는데 어른의 성장은 그렇지 않다. 마음의 키도 눈에 보이면 얼마나 좋을까.
내 마음이 어제보다 자랐는지, 작년보다 나아졌는지 눈으로 볼 수 없으니 확인할 길이 없다. 더구나 눈에 보이지 않으니 애써 가꿀 생각도 못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병든지 모른 채 병들어가고 왜 이렇게 불행한지 모른 채 살아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한 주가 열리는 월요일이니 마음을 새롭게 해 보잔 의미로 다음 문장을 선물한다. 감사, 사랑, 행복, 성장을 선택하기로 작정한 후 새 삶을 시작하게 된 이진희 작가가 쓴 ‘나를 살리는 감사의 기적, 감사〮행〮성〮 실천노트’에서 발췌한 문장이다.
지금의 내 모습은 어제 내 생각의 결과다. 과거의 내 생각들이 모여 오늘의 내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인생은 이미 결정된 걸까? 감사하게도 매 순간 삶을 창조하고 바꿀 수 있다. 모든 선택권은 나에게 있다. 너무나 쉽게 그 선택권을 타인에게 넘긴다. 직장 상사에게, 지나치는 사람, 가족들에게 넘겨 버리고 마치 그들이 내 인생의 결정권자가 되어 버린 것 같은 삶을 산다. 그들에 의해 내 기분이 오락가락한다. 계속 만나는 사람들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잠시 출렁거리고, 흔들거리다가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다. 그 모든 것의 결정자는 바로 나 자신이다.
나는 크게 의견이 없는 사람이라서 식사 메뉴를 정할 때, 여행지를 정할 때, 약속 일정을 정할 때 상대의 의견을 따르는 편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 인생의 주인이 아니란 생각은 하지 않는다. 대신 내 기분, 내 감정 역시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근래 들어 인지한 내용이라서 훈련 중에 있다. 감정은 당연히 타인에게 영향받는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감정에 휘둘렸던 게 아닐까? 이제 내 기분, 감정만큼은 타인에게 선택권을 주지 않기로 했다.
남편과는 아무리 사소한 일로 싸워도 늘상 부딪히는 존재기 때문에 예전의 화까지 붙어 증폭되기 마련인데, 이제는 ‘화 대신 평정심을 택할 거야. 나의 분노 버튼이 이렇게 쉽게 눌리다니, 나를 점검하게 해주는 남편이 있음에 감사할 거야.’ 태도를 정한다. 추운 아침에 굳이 뻥뻥 구멍 뚫린 크록스를 신겠다는 아이에게 화가 나지만 ‘아이의 신발을 선택하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 아이잖아. 추우면 내일 운동화를 신겠지. 오늘은 아이를 존중하는 마음을 전하자.’며 아이에게 버럭 하는 엄마 대신 아이를 존중하는 엄마가 되기로 한다.
내 감정을 선택하겠다는 결심만으로 내 인생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 든다. 이 좋은 선택권을 그동안 왜 남에게, 그것도 나에게 별 관심 없는 사람들에게 맡겼을까. 상황은 내가 어쩔 수 없어도 감정은 내가 바꿀 수 있다. 나는 이제 무조건 감사하고, 무조건 행복할 것이다. 혹시라도 ‘대책 없는 긍정이 무슨 효과가 있단 거야, 자기를 기만하는 거지.’라는 의심이 찾아온다면 ‘스톡데일 패러독스’를 참조해보자.
스톡데일 패러독스는 합리적 낙관주의로 해석되는데, 무조건 좋게 생각하는 낙관주의와 다른 점이 있다. 이미 일어난 일, 상황을 ‘그대로 인식, 인정하는 것’이 여기서 말하는 긍정이며, 따라서 합리적 낙관주의는 현재 발생한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을 뜻한다. 유래는 다음과 같다.
‘제임스 스톡데일’이라는 미국 항공기 장교가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다가 포로로 잡혀 7년 6개월 동안 갇혀 있었는데, 그와 함께 수감된 동료들은 심리적 공포에 시달리며 죽음을 맞이했고, 스톡데일은 마지막까지 견뎌 석방되었다. 스톡데일은 “불필요할 정도로 지나치게 낙관적인 사람들은 다 죽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들은 크리스마스 때까지는 나갈 거야 했고, 크리스마스가 지나면 부활절까지 나갈 거라고 기대했다. 부활절이 지나가면 추수감사절, 또 크리스마스를 기다렸고 그러다 상심해서 죽었다고 한다. 근거 없는 희망을 품었다가 번번이 좌절감을 경험하며, 심신이 약해져 갔던 동료들은 죽음을 맞이한 반면 자신의 상황을 인정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기다렸던 스톡데일은 결국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정리하자면, 스톡데일 패러독스란 냉혹한 사실들을 직시하고 결국에는 성공할 거라는 믿음, 결코 실패하지 않겠다는 믿음을 뜻한다.
그래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이 필요하다. 만족할 만한 상황이 내게 와서 감사하고 행복한 게 아니라 만족할 상황이 아님에도 감사할 이유를 찾고 행복할 수 있는 이유를 찾는 자가 결국 오늘 웃는 사람이다. 일이 너무 힘들지만, 이걸 해낼 수 있는 능력이 내게 있어 감사하다는 선택을 하길 응원한다. 추운 퇴근길에 불평하는 마음 대신 내 취향에 딱 맞는 아우터를 입어 행복한 마음을 선택하길 응원한다.
월요일마다 유플리더의 행복을 위해 목놓아 응원하는데, 오늘은 선물도 하고 싶다. 필자에게 살포시 잔디로 요청하면 ‘나를 살리는 감사의 기적, 감사〮행〮성〮 실천노트’ 책을 선물하도록 하겠다. 신청자의 이름과 작가의 친필 사인을 곁들여서. 다만 책 전반적으로 기독교적 세계관이 흐름을 참조하시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의 가이드가 될 것임을 확신한다. 이렇게 필자는 선물할 수 있는 직장동료가 있음에 감사하며 유플위클리를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