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네가 좋아하는 일은 뭐니? 머리가 아득해졌다. 난 먹는 것도 좋고, 선선한 날 자는 낮잠도 좋고, 좋아하는 누군가가 날 떠나지 않을 거란 안도감도 좋아하는데. 그러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그건 좋아하는 일이 될 수 없어. 일이 아니잖아.” 그런가. 맛있는 걸 먹고 선선할 때 낮잠도 자고 가족도 친구도 연인도 날 원 없이 사랑해주는 그런 일은 일이 아닌가.
그 날은 마음이 텅 비어 잠이 오지 않았다. 누구는 꿈을 형용사로 적고 누구는 꿈을 동사로 적으라던데. 나는 형용사로도 적고 동사로도 적었는데 아니야 아니야 하며 내 꿈은 다 지워져버렸다. “그래서, 그래서 넌 뭐가 될 건데? 뭐하고 살게?” 잘 모르겠어요 엄마. 내가 적은 대답들은 다 지워져버렸어요. 계속 썼는데 계속 지워졌어요. 정답이 있는가봐요. 그래서 나는 잘 모르겠어요.
텅 빈 밤이면 할머니가 떠올랐다. 우리 할머니는 우리 할머니라면 이럴 때 어떻게 했을까. 그것도 모르겠다. 그냥 갑자기 할머니가 보고싶어져서 눈물이 후두둑 나왔다. 일기를 쓰는 어플을 틀고 보고싶다는 말을 길게 주욱 늘어 적었다. 눈물을 훔치며 생각한다. 그런데 좀 잘 적었다. 눈물을 팔아서 글을 적었다. 그래야 운 시간이 소용이 있는 것만 같아서.
울고 싶을 때 생각나는 세 사람이 있다. 두 명은 지난 사람이고 한 명은 지금 사람이다. 세 사람을 떠올리다 울고 싶어질 때면 묘한 죄책감이 고개를 든다. 내가 울고 싶어서 세 명을 써먹는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할머니는 내가 가장 즐거웠을 때 세상을 떠났다. 처음 유럽이란 곳을 가서 새로운 것에 정신없이 취해있을 때 할머니는 가장 고통의 시간을 보냈다. 어쩌면 엄마야말로 가장 고통의 시간이었을 수도. 해외에서도 일을 하며 나름 노력을 하고 있다, 등골 빼먹는 건 아냐 생각하면서 은근슬쩍 돈이 모자람을 집에 이야기하고 있을 때, 우리 엄마는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은 시간을 지내고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엽떡 먹어야지. 아 진짜 맛있겠다.” 오랜만에 본 엄마를 포옹하고 영종도를 떠나며 한식이 너무 먹고 싶었다고 떠들어댔다. 아무렇지 않게 오느라 수고했다고, 먹고 싶은 거 다 먹자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다 엄마는 돌연 주방에서 눈물을 터트렸다.
할머니는 연약하면서도 꽤 의지가 강했다. “난 수술 할거야.” 심장마비가 왔던 그 날도 할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아이고 야 죽는 줄 알았다!” 심각한 와중에 우리 가족은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나 이제 고아야 엄마, 어떡해” 엄마는 목놓아 울던 화장터에서 7살짜리 아이가 엄마를 잃어버린 것처럼 서럽게 울었다. 우리 엄만 그때 수술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후회했고, 나는 할머니와 더 많이 이야기했어야 했다고 후회했고, 아빠와 동생도 각자의 후회를 했다. 물론 어쩔 수 없는 일이란 걸 우리 모두는 알고 있었을 지라도.
처음으로 돈을 잘 벌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우리들의 후회는 어쩌면 돈이 많았다면 해결될 수 있었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더 크고 멋진 병원에서 더 비싼 수술을 하고 더 비싼 회복실에서 더 비싼 약을 썼더라면, 우리가 돈을 버느라 바쁘지 않아서 가족들끼리 여행을 다니고 멋진 식당에서 매주 밥을 먹을 수 있었더라면. 다른 방법도 많겠지만 돈이 많았더라면 참 쉬웠을 것을. 애써서 두터이 노력하며 쌓을 수 있었을 시간들은 외면하고 싶었다.
사원증을 한번도 받지 않고 5개 남짓의 회사를 다녔다. 들어가자마자 돌아서서 나가야해서 인턴인가. 뱅글뱅글 회사를 돌며 생각했다. 조건이 하나 더 붙었다. 돈을 벌 수 있으면서 내가 좋아하는 일은 뭐지? 조급함이 매달려 구부러진 갈고리가 펴졌다. 돈을 벌 수 있으면서 좋아하는 일이 뭐냐고!! 나의 낮은 자존감과 맞물려 매일 밤 즙만 짜다 쪼그라들었다.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은 시간이었다. 사랑받을 자격을 내가 나에게서 뺏어버렸다.
조급함은 전염이 잘 된다. 우울함은 전염이 잘 된다. 나는 우리 집에 전염병을 퍼트렸다. 보균자인 내가 집을 나와야 했다. 자취를 시작했다. 나는 여전히 꿈을 찾지 못했다. 허한 마음이 들 때,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 같을 때 할 일이 필요했다. 뜨끈한 핸드폰 위를 엄지가 하릴없이 드나들었다. 위에서 아래로. 콕. 콕. 이것 저것 뒤지다 보니 그래 이게 마음에 들었다. 천재들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이를 테면 이런 식이다. 조수미를 검색한다. 아무거나 나오는 영상 하나를 터치한다. (아무거나 라고 했지만 보통 다큐멘터리에 손이 가는 편이다.) 그녀의 인생사를 거슬러 올라간다. 나와는 정반대로 단단하디 단단한 정신을 구경한다. 홀로 외로운 타지에서 버텨낸 이야기, 역경을 이겨내고 결국은 최고가 되고 만 나 조수미, 그리고 쏟아지는 박수 갈채. 마음을 데운다. 부글부글 끓인다. 동경하는 마음에 허한 마음이 막 부풀어 오른다. 터질 듯이 박수소리가 짝짝짝짝 들릴 때마다 마음에 헛바람이 울컥울컥 들어와서 무언가를 열심히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렇게 영상을 새벽녘까지 보다 잠들고, 고요한 낮에 일어나 “역시 난 틀렸구나.” 생각한다.
어영부영 하다가 갑자기 허겁지겁 살았다. 무언가에 막 쏟아부어보고 싶어서 시간도 생각도 노력도 막 쏟아부어봤다. 그럼 어느 날 갑자기 득음하듯이 나에게 무언가가 생기지 않을까. 이렇게 하면 무언가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수많은 글, 영상, 말들이 떠들었다. 채워지는 것 같았는데 막 비워졌다. 전에는 물이 증발하는 것 같았는데 이제는 알코올 에탄올처럼 증발하는 느낌이었다. 메마르고 갑갑하고. 문득 학창시절이 떠오른다. 끊임없이 쏟아내서 계속 쏟아내서 점수를 만드는 방법을 배웠다. 살아가면서 나에게 무엇을 채워넣어야 하는지를 습득하지 못하였다. 그건 누가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었나보다.
홀랑홀랑 빈 마음으로 여기 저기를 날아다녔다. 날아다니기 보다는 나부끼었다. 아무 것도 담지 않으니 참 가벼웠다. 편안하다 생각이 들 무렵 이렇게 아무것도 없이 홀연히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차! 사는 이유는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없어질까? 그렇지만, 그렇지만 하는 미련 있는 마음이 자꾸 들었다. 다시 찾아야겠다. 뭐가 재미있는지, 그래 나는 재미를 찾아야겠다.
재미있어보이는 것을 마구 보았다. 와하하하 웃었다. 이걸 보고 웃었다고 알려줬다. 같이 와하하하 웃었다. 나는 내가 기분 좋아지는 방법을 너무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 난 이래야 행복하다는 기준을 없애면 된다. 난 돈이 많아야, 난 쉴 시간이 많아야, 난 언젠가 행복해질거야. 지금 없는 무언가로 행복해지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면 행복할 수 있다. 아, 나는 계속 행복을 꿈꿨구나.
나는 중학교 1학년 때 도서관 사서였던 선생님께 칭찬받는 게 자꾸만 좋아서 신문 사설을 보고 글짓기를 빠짐없이 참여했다. 칭찬받는 게 좋아서였는데 그렇게 글쓰기가 좋아졌다. 언젠지 모를 미술시간,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좋아하는 작가를 찾아 화풍을 따라했다. 작가 이름은 아마데오 모딜리아니였다. 목이 긴 슬픈 표정을 한 그림을 주로 그렸는데 난 그게 엄마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한가지가 아닌 여러 개가 섞인 초록도 파랑도 검정도 아닌 뭔가 슬픈 색깔로 눈동자를 칠하는 화가였다. 방학 숙제였던가. 아마데오 모딜리아니의 그림을 따라 그리고 집에 있는 실을 모아 도화지에 머리카락을 꿰어 냈다. 아무도 칭찬하지 않았다. 나는 재미있었다.
락을 좋아하는 친구를 고등학교 때 만났다. 친구의 추천으로 포쉐어드에서 다운받은 음악 파일에서는 린킨 파크가 미친듯이 소리를 질렀다. 대충 불태워 다 없애버리겠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락을 좋아하나? 처음부터 끝까지 노래가 좋은진 모르겠는데. 모르겠는데. 며칠 전 콘서트를 갔다왔다. 아, 나는 기타를 좋아한다. 둥실둥실 통기타 소리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찢어질 것 같은 일렉 기타 소리가 좋았다. 새소년 황소윤을 좋아한다. 찢어버릴 것처럼 기타를 친다.
매 순간을 지나오며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알고 있었다. 누가 지우면 지워질 뿐이었다. 지워는 졌지만 세게 눌러써서 남은 자욱으로 나는 내가 무엇을 좋아했는지 읽을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일렉 기타를 치는 꿈을 꾸기로 했다.
일렉 기타를 잘 치고 싶어서 힘들어도 살고 돈도 벌어보기로 했다. 병원비를 내고 싶다는 꿈은 낭만이 없다. 나는 낭만 있는 삶을 살고 싶었다. 나 참 재미있게 살았구나, 오그라들어도 쟤는 진짜 저런 멋이 있다는 말을 하고싶고 듣고 싶다. 상대성 이론을 이야기하던 아인슈타인이 키던 바이올린처럼.
나는 일렉 기타를 치는 꿈을 꾸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