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시점에서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이 되고 싶은지 모른다. 그것은 나중에 돌이켜보고서야 알 수 있는 것들이다. 그것이 성장이라는 것이다. 성장하기 전에 ‘나는 이런 과정을 밟아 이만큼 성장할 거야’라는 아이가 있다면 그 아이는 성장할 기회가 없다.
그때까지 자신이 몰랐던 논리로, 자신이 한 일의 의미와 가치를 생각하고 헤아리며 자신의 행동을 설명할 수 있게 되는 것이 바로 ‘성장’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미리 ‘나는 이렇게 성장할 거야’라고 말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배움이란 언제나 그렇게 미래를 향해 몸을 내던지는 용기를 필요로 하는 행위다.” - 우치다 다츠로
글을 쓸 때에도 자신이 무엇을 쓰고 싶은지, 왜 써야 하는지 모른다. 나중에 돌이켜보았을 때 꾸준히 글을 쓰고 책을 읽어온 경험이 자신을 어떻게 성장시켰는지 알 수가 있다.
그것을 알 때가 된다면, 성장한 다음이다.
자신도 모르지만, 배움을 향해서 몸을 내던지는 ‘용기’가 필요하다.
직접 펜을 잡고, 진도가 나가지 않는 공책에 글씨를 꾹꾹 눌러써서 자신의 생각을 펼쳐나가는 용기. 지루하고 하기 싫은 일이지만, 지금은 모를 뿐, 알아지는 순간이 오리라 믿는다.
다만, 그전에...
하기 싫지만 시키는 작업이 있다.
글자의 간격과, 띄어 쓴 간격이 일치하도록 쓰는 것.
그렇게만 해도 훨씬 보기에 잘 쓴 글처럼 보인다. 어쩌면 누군가 ‘반칙’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비록 휘갈겨 쓴 글이지만, 내 글이 더 잘 쓴 글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또 외면할 수 없는 것은, 글 쓴 정성과, 태도이지 않는가.
마땅히 칭찬받아야 하고, 가치 있는 일이기에 글솜씨는 글씨 솜씨와도 관계가 있다.
글씨를 잘 써서 완성한 글은 보기에도 좋고, 읽기에도 좋다.
그런데 수업을 해보면, 글자를 휘갈겨쓰는 아이들이 많은데, 글씨도 꾸준히 지도해주셨으면 좋겠다.
내 경우는 어릴 때 할아버지께서 엄하셔서, 글 쓰는 태도, 자세, 글씨 하나하나 다 챙기셨다. 엄한 분 앞에 앉아 예의를 갖춰 글쓰기를 배워서 그런지, 글씨가 한결같고 나쁘지 않다.
그래서 사회생활할 때 득도 많았다.
글씨를 참 잘 쓰는구나, 글씨가 참 예쁘다. 그 한마디의 말이 글 쓰는 데 충분한 자극과 비타민이 되기도 한다.
글씨를 잘 못쓰기에, 쓰면서도 못난 글을 계속 보자니, 글을 쓰는 내내 본인도 기분이 나쁜 것이다. 심지어 자기가 앞에 써놓은 글이 무슨 내용인지도 해석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정성껏 써낸 글이 완성되었을 때 가장 기뻐하는 것은 언제나 글 쓴 당사자였다.
“선생님, 이거 제가 쓴 거예요?”
“우와, 드디어 썼어요, 이걸 제가 썼다니, 믿어지지 않아요.”
“지금까지 이런 역사가 없었어요. 이 글이 제일 맘에 들어요.”
아이들부터또박또박 잘 써진 글을 좋아한다. 글씨만 보고도 그렇다.
그렇기에 나는 수업시간에 글씨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자주 이야기한다.
글쓰기에는 많은 것들이 포함된 행위이다.
읽고, 보고, 생각하고, 마음에 담은 것들을 글로 표현하는 행위.
또박또박 써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잘 이해되도록, 읽기 편하도록 배려하는 행위.
자신의 논리와 가치를 글로 표현하는 행위
글로 표현하지 못하면,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도 묻힌다고 얘기한다.
무슨 일이 생기면, 사람들은 글로 표현한다, 좋은 일이 생겨도, 슬픈 일이 생겨도 사람들이 주고받는 것은 글이다.
글을 그렇게 미워하지 말라고.
글은 평생 나를 떠나지 않고, 언제나 함께하는 내 편, 내 친구라는 말을 해준다.
글에 대해서 선생님이 어떻게 표현하는지도 아이들이 다 듣고, 듣든지 말든지 흘러가는 순간이라 하더라도, 언젠가는 마음에 쌓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