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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방을 쓰던지 각집을 쓰던지

by 아인잠

요즘 나는 '기도해드릴게요'라는 말을 자주 한다.

말만 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기도를 한다. 힘든 시기에, 나 역시 많은 도움을 받았었기 때문에, 내가 할 것이 기도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기도를 해드린다고 하면, 고마워하시며 비슷한 제목을 얘기해주신다.

연로하신 부모님께서 병중에 계시다는 이야기, 남편과의 관계, 아이들과의 문제, 자신의 고민에 대한 이야기들, 어디서 많이 들어봤던 그런 이야기들은 내 머리속에서도 무수히 많은 사전 리허설과 실전 속에 닳고 닳은 이야기들, 하지만 각각 새롭고 간절하고 무거운 주제들.

기도할 수 밖에 달리 도울 방법도 생각이 나지 않는 문제들...

그러나 기도할 수 있어 기꺼이, 감사하게 간절하게 기도하고 있다.


요즘 이런 문제들로 기도하고 있다고 지인에게 말하며, 다들 기도 제목이 비슷하다고 했더니 지인이 말했다.


"이 나이쯤 되면 한 이불 덮고 자기 보다는 각자 덮고, 한 침대 보다는 각자 침대에서 자고, 각방을 쓰든 각 집을 쓰든 다 사는 모습, 고민은 비슷하다는 뜻이예요.





우리의 시작은 달랐으나 어째 사는 모양새는 큰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 채로, 우리는 각자의 길을 힘겨워하며 가고 있다. 물론 늘 힘겹지만은 않기에 살만한 세상이기도 한 것 같다.

나 역시 24시간 내내 힘겹고, 24시간 내내 불행하지는 않았다. 그 와중에 웃고, 웃고, 나누고, 행복하게 살았었다.그리고 지금 살아가고 있다.


"징그러운 애벌레가 나풀나풀 날아다니는 나비로 변하듯, 윌은 서서히 의심과 불신을 떨쳐 버리고 구원을 받았으며 사랑스럽고 영감이 넘치는 존재로 거듭났다. 나 역시 그런 과정을 거쳐서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 <닉 부이치치의 허그> 중에서.


지금 내 모습이 징그러운 애벌레와 같던지, 아름답게 변한 나비와 같던지, 일상에는 여전히 구름이 드리워지고 폭풍이 휘몰아치는 순간이 닥치기도 하겠지만, 인간은 끊임없이 자신의 껍질을 깨고 나와 힘찬 날개짓을 해나갈 수 있는 존재이다. 다른 사람도 아닌, 스스로의 의심과 불신을 떨쳐 버리고, 자신을 옭아매고 있는 현실로부터 구원을 받으며 사랑스럽고 영감이 넘치는 존재로 거듭나기를.

우리 모두가 그런 과정을 거쳐서 또다른 누군가에게 메신저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달력에 새겨진 메모를 우연히 봤다.

불과 두 달전... 집을 떠나오기전 나의 다이어리에는 다음과 같은 메모가 쓰여있었다.


'신문해지 확인, 배달 계란 해지, 우유 해지, 00께 연락하기, 00님 통화하기, 방청소, 물건버리기, 냉장고 정리, 양말사기, 드라이기,화장품 챙기기, 월세 구하기. 수업하기...'



모르겠다. 왜 왈칵 눈물이 스며나오는지...

그 당시 다이어리에 적고 앉아있었던 내 모습이 머리속에 떠올랐기 때문일까.

안도의 눈물일까.


내 모든 것을 견디고 쏟아부었던 나의 가정이었기에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던 일생일대의 순간이었다. 그 기로에 홀로 선 긴장감이 이제야 느껴져서...

그저 속으로 무수한 생각들을 삼킨채 감당해왔던 시간들이 밀물처럼 밀려와 찰싹, 내 심장을 치는 것 같다.

밀물과 썰물...

내 인생의 무수한 밀물과 썰물의 순간을 돌아볼 때에 중요한 것은 일단 신발이 젖더라도 묵묵히 걸어가야했다는 것.

내 선택이 옳았음이 다행스럽고, 앞으로도 그러하길 바란다.


약해질 때마다 나에게는

"어떤 것을 택하든지 당신의 선택은 항상 옳을 거예요"라고 말씀해주신 지인들이 있었다.

그분들의 믿음과, 나에대한 믿음과, 신을 향한 믿음. 나의 믿음이라는 것은 비록 보잘 것 없을 지라도 나를 향한 그분들의 믿음에 기대어 건너온 순간들이기도 했다.

믿음을 가지시길.

당신은 생각보다 강한 존재라는 것을!


"자, 지금 당신은 집에서 봉우리꽃을 피우고 있는 중입니다. 곧 꽃피울 시기를 찾을 수 있을 거예요."


"무기력하세요? 에너지를 비축하는 과정이예요. 지금까지는 제대로 비축하지 못하고 소모만 하는 과정이었어요"



나는 지금 각 집을 쓰고 있는 중이다.

당신의 집은 안녕하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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