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에서의 나는 지금까지 내가 알던 모든 것들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소중한 것은 더 소중하게, 무의미한 것은 더 무의미하게, 작은 것들이 더 감사하게, 큰 사랑은 더욱 벅차게, 나의 일들은 더욱 가치 있게, 아이들은 더욱 빛나게... 내 삶을 아우르고 있는 우주처럼 신비롭고 거대한 세상이 더욱 의미 있게 다가왔다. 여행지에서도 남달랐는데, 한국으로 돌아와서 본 세상도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소설 속에서 예전에 보았던 글귀들이 새삼 다르게 다가왔다.
“떠나가 있으면 모든 게 변한다는 게 참 이상해”
그리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집안에서 나는 익숙한 냄새에 나는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꼈다. “떠나 있었는데도 여전히 똑같은 냄새가 나. 주방 냄새, 먼지와 걱정 냄새.”
책에서 이 부분을 처음 읽었을 때 ‘걱정 냄새’라는 게 뭘까 잠시 생각하다 더 깊이 사색하지 못하고 일상으로 인해 넘어갔었다. 마치 허들을 뛰어넘듯이, 다음에 다가오면 그때 제대로 넘어보리라 생각하면서... 그런데 이번에 그 허들이 다시 다가왔다. ‘걱정 냄새’ 나의 집안에 베인 걱정 냄새는 나의 걱정이 아니었고, 어쩌면 타인의 냄새였다. 나를 향한 타인의 시선과 그들의 걱정이 내 삶 속에도 알게 모르게 스며들어 나의 공간에서조차 ‘걱정 냄새’가 스며들어있었던 건 아닐까.
매달 생활은 어떻게 해나가는지, 아이들은 편안하게 무탈하게 자라고 있는지... 걱정을 한 아름 보태어 나의 어깨에 얹어놓는 타인의 시선에서 나는 어쩌면 앞으로도 자유로울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반문하고 싶다. 그대들은 걱정이 없는가, 진정 식구들은 무탈하고 앞날이 무한정 희망차고 자신 있는가. 살아가는 모습은 다르고 생김새도 다르건만, 그대들이 규정한 삶의 모습대로 나는 살아드릴 수가 없음을 밝힌다. 나는 내가 가야 할 길을, 갈 수 있는 길을 찾아갈 것이다. 지금 나의 생각이 지금은 옳고, 후에 보면 그르다 할지라도, 나는 지금이 옳다.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수많은 성인들이, 수많은 위인들과 철학자들이 수세기에 걸쳐 탐구한 질문이지만, 누가 그에 대해 정답을 지정할 수 있을까. 나는 그래서 그때 그때 내가 느끼는 삶의 생각대로 책을 읽으면서 살아갈 수 밖에 없다.
“도대체 인간은 무엇 때문에 사는 걸까?” “그걸 생각하기 위해서겠지. 다른 질문은 없나?” “있어. 인간이 그런 걸 생각해서 좀 철이 들자마자, 곧 죽어버리는 건 또 무슨 일인가?” “철들어 보지도 못하고 죽어 버리는 인간도 수두룩하네.”
철조차 들어보지도 못하고 죽어버리는 가련한 인간이 되지 않도록, 열심히 철을 연마하면서 살아가야지.
라비크가 먼 여행(?)에서 돌아와 그녀에게 이별을 고했을 때 그녀는 말한다. ‘왜 하필 오늘‘이어야 하냐고... 이에 라비크는 말한다. “당신 말이 맞아, 더 전에 끝나야 했어. (중략) 하지만 모든 일을 미리 다 알 수는 없는 법이지... 그리고 가끔은 모든 걸 다 알고 싶지 않을 때도 있는 거고. 그때는.......”
살아오는 동안, 그래 맞아, 더 전에 끝냈어야 할 인연들이 존재했고, 나에게는 그 인연이 남편이었다. 그때도 지금도, 여전히 남의 편인 그가 이제는 좀 더 성숙한 모습으로 자신의 인생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것, 그것조차 나의 오만이고 오지랖 일지는 두고 봐야 알지도 모르겠다. 나의 개선문은 그때 가봐야 비로소 온전히 서있는 모습으로 볼 수 있게 될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