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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인잠 Dec 27. 2019

천덕꾸러기 아카시아 나무에도 꽃은 핀다.

 지인의 밭에 가끔 따라가 보면, 해마다 같은 자리에 아카시아 나무가 자라 있다. 뽑아도 또 자라고 뽑아도 또 자라고, 해마다 뽑는 그 자리에 가보면 언제 뽑혔나 싶게 튼튼하게 뿌리를 내리고 가지마저 질기고 굵게 잘 자라 있는 아카시아 나무를 본다.

아카시아의 향기는 너무나 곱고 달콤하지만 뿌리가 얼마나 거세고 억센지 손으로는 뽑지도 못하고 곡괭이로 성인 남자가 파낸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에 어느샌가 가보면 또 자라 있다. 처음에는 그런가 보다 했는데 해마다 가면 해마다 만나게 되는 아카시아 나무를 보 이제 반가운 마음마저 든다.

갖은 구박과 눈치에도 눈치 없게 살아남아서 튼튼하게도 자랐구나 싶은 게 구박하기가 미안해진다. 꽃이 피면 향기가 얼마나 고운데, 꽃향기는 반갑지만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니니, 너도 참 딱하다 싶어서 나는 가만히 어루만지고 온다.(내 밭이 아니어서일까.)



아카시아 나무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으면 너무 예쁘고 고마운데 무덤가에 있으면 아카시아의 억센 생명력이 무덤을 훼손하기 때문에 아카시아 나무는 퇴출 1호라고 한다.

가끔 나의 자리가 어디일까 생각한다. 있어야 할 자리인지, 나와야 할 자리인지...


펄 벅의 소설 <대지>에 보면 또 엄청난 생명력을 가진 존재가 나타난다. 바로 메뚜기인데, 메뚜기 떼가 몰려와 하늘을 가득 덮는 장면이 나온다. 주인공이 살만하다고 생각한 시점에 하필 메뚜기떼가 치고 삶의 희망을 거두어가 버린다. 메뚜기 떼는 성경에도 재앙으로 표현되어 있기도 하다.


삶 속에서 재앙과 생명은 어쩌면 한 끗 차이 아닐까. 오늘도 신문 속에서 차마 눈 뜨고 지켜볼 수 없는 여러 사건들을 만났다.

있어야 할 곳 있는가. 해야 할 일을 마땅히 하는가. 우리 삶 속에 떼떼로 불어닥치는 메뚜기 떼와 아카시아 나무를 보면서 향기롭다고 늘 옳은 것은 아니며, 재앙이 끝은 아니라고 마음을 다시 가다듬어 본다.


재앙이 지나간 자리에서 생명은 움트고, 꽃은 피어나 향기를 전하는 삶은 계속해서 이어질 것이므로, 그 삶 속에서 나의 존재가 있어야 할 곳에 있고, 해야 할 일을 마땅히 해내는 존재가 되길 바란다.


어쩌면 진실로, 로버트 풀검의 베스트셀러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가 옳은지도. 다만 내가 유치원에서 제대로 못 배워서, 아직도 차근차근 배워가는 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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