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큰아이와 함께 중학교 교복을 맞추러 다녀왔다. 교복 치수를 재고 어울리는 사이즈를 입어보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언제 이렇게 컸나 싶은 게 만감이 교차했다. 내가 중학교 첫 교복을 입었을 때도 생각이 떠올랐고, 내 아이가 첫 교복을 입는 순간도 새삼 감격스러웠다. 아이들에게 첫 교복을 입혀보면서 뿌듯하고 설레는 것은 나뿐만은 아닐것이다. 첫 아이의 유치원 입학, 첫 아이의 초등학교 졸업, 첫 아이의 중학교 입학 모든 순간은 특별한 감격이 있다.
그야말로 하얀 눈밭 위에 내 첫 발자국을 찍는 그런 감동이다. 아이가 걸어갈 길은 내가 걸어가야 할 또 다른 길이 되기도 한다. 봄이 되면 중학교 입학이라니, 감동 그 자체다.
아이는 처음에는 친구들과 달리 뚝 떨어져 있는 학교로 배정받자 아쉬워했으나 요즘은 오히려 더 좋다고 한다. 왠지 모를 설렘과 좋은 느낌이 있다고 한다. 알고 보니 가고 싶었던 가까운 학교는 시험이 어렵다고 소문이 났다는 둥, 생각해보니 친한 친구와는 같은 학교로 배정이 되어 더 좋다는 둥 좋은 핑계를 찾는 건지 찾은 건지 기분 좋은 얼굴로 입학을 기다리고 있다.
초등학교 졸업할 즈음 중학교 가면 어떤 걸 하고 싶냐고 물었더니 귀걸이를 하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아이의 중학교가 정해지자마자 그 학교 교무실로 전화를 걸어서 중학생이 귀걸이 해도 되냐고 물어보는 신세대 엄마 흉내를 냈다. 당연히 안된다는 답이 돌아왔고, 귀걸이는 고등학교나 대학교로 미루자고 합의를 봤다.
그다음 신세대 엄마 흉내는 교복 치마 맞춤껀이다.
치마를 짧게 입고 다니면 얼마나 이쁘겠냐고 운을 띄워봤지만 아이는 단칼에 '치마는 불편'하다며 내 말을 잘랐다. 나는 이쁜 교복 치마를 입혀 내 딸이 이쁘게 입고 다니는 것을 보고 싶었으나 안타깝게도 아이는 쏘쿨하게 교복 바지를 맞추고 왔다.
나는 짧은 치마도 쿨하게 이쁘다고 할 수 있는 엄마임을 어필했으나 안 통했다.
교복을 치마로 예쁘게 입고 다니면 얼마나 보기 좋고 인물 나겠냐고 했더니 아이의 말이 걸작이다.
"엄마, 엄마는 엄마의 '마미 웨이'를 가세요,
저는 저의 '마이웨이'를 갈게요."
우리의 갈 길이 같지 않다는 걸 나는 비로소 인정한다. 엄마가 가야 할 길과 아이가 가야 할 길은 다른 것이다.
by 아인잠's girl
그림을 좋아하는 아이는 일단 진로를 일러스트나 미술 쪽에 관심이 많다고 정했다.
공부하는 모든 사이사이에 그림이 그려진 것을 보고 어느 날엔 선생님이 이렇게 물으셨다고 한다.
"혹시, 공부하다가 그림을 그려놓으면 엄마한테 혼나지 않니?"
그리고 아이의 답.
"아니요, 우리 엄마는 되게 좋아하시는데요"
나는 아이의 꿈과 행복에 관심이 많다.
내 관심은 아이의 꿈과, 행복, 그리고 안전이다.
친구들이 80점을 받으면 '아 망했다'고 한단다. 내 아이는 50점을 받으면 잘했다고 했다.
이렇게 공부 안 하고 50점 받으면 당연히 잘한 거고 대단하지 공부를 안 해서 그렇지 우리 가족은 하면 제대로 한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언제든 공부할 준비가 되면 그때부터 달릴 수 있도록 힘을 갖추는 것이 우리의 놀이 전략이라고 세뇌를 시켰다. 그러니 놀때 최선을 다해 놀고 후련하게 미련없이 놀자고 했다. 내 목표는 중2때까지 놀리는 것이다. 중 3때부터는 각자 책임지고 대학교 졸업하면 엄마한테서도 졸업하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