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인잠 Mar 18. 2020

살면서 만나게 되는 문제들<빅 퀘스천>을 읽으며...

요즘 더글라스 케네디의 자전적 에세이 <빅 퀘스천>을 읽고 있다.

얼마나 대단한 작가냐 하면 프랑스 문화원으로부터 기사 작위까지 수여받았고, 소설은 30여 개국에서 출간되고 있으며, 2009년 국내에서 출간된 <빅 픽처>는 국내 주요 서점 최장기 베스트셀러에 올라있다고 한다.

<빅 퀘스천>에 기록된 모든 이야기는 작가가 실제로 겪은 일이라는 점에서 더 눈길을 끌었다. 누군가의 삶이 – 소설 같은 삶이- 실제이고 현실의 경험이라는 것은 독자에게 중요하다. 내 경우엔 지어낸 이야기보다는 실제의 경험을 읽는 것을 더 좋아하기 때문이다.

살아가면서 직면하게 되는 문제들에 대한 작가의 의견과 생각이 담겨있는 책이어서 그런지, 정말 신기한 것은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자랐다는 작가의 생각이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자라고 있는 나와도 일치하는 부분이 많다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내내 신기했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사는 모습은 똑같구나 하는 것. 특히 결혼에 대해서 설명한 부분은 마치 내 이야기 같기도 했다.

게다가 작가는 남자이고, 나는 여자인데도 불구하고 고뇌하는 부분이 일치할 수도 있다는 것도 새로웠다. 미국 남자랑 한국 여자랑 생각이 비슷할 수가 있구나. 미국 남자를 안 만나봐서 모르겠지만, 결혼해서 느끼는 어려운 부분들은 나와 내 이웃의 이야기와도 같았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여행은 움직이는 고해소다. 여행 중에 만나는 사람들은 다시 볼 사람이 아니기에 삶에 깃든 어두운 비밀이나 상처, 슬픔 등을 주저하지 않고 털어놓을 때가 많이 있다. 인생이라는 여정에서도 우리는 내밀한 이야기를 털어놓아야 할 때가 많이 있다. 삶의 복잡한 문제를 드러내고 구체화하려면 그 문제를 말로 표현해야 할 필요가 있으니까.”   

 


그래서일까. 저자는 독자를 향해서도 ‘다시 볼 사람이 아닌 것처럼; 삶에 깃든 어두운 비밀이나 상처, 슬픔 등을 주저하지 않고 털어놓고 있다.    


“어느 누가 보더라도 권태로운 결혼생활이나 직업을 그대로 유지해간다는 건 정말이지 끔찍한 일이다. 그럼에도 우리 주변에는 그런 삶을 유지해가는 사람들을 흔하게 볼 수 있다. 덫에 갇혔다는 생각이 들 때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가장 불편한 진실은 그 덫을 만든 사람이 바로 자기 자신임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무런 보람을 느끼지 못하는 직업을 선택한 것도, 쳇바퀴 돌 듯 반복되는 일을 선택한 것도, 성격이 맞지 않는 여자와 결혼한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 집을 구입한 것도, 자녀를 낳은 것도, 주변 사람의 기대에 부응하려고 애쓰는 것도 모두가 스스로 선택한 일이다.’


저자는 책에서 여러 부분에 걸쳐 이렇게 말한다.

가장 불편한 진실은 그 ‘덫’을 만든 사람이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나도 지금까지 결혼에 대해서 쓸 만큼 썼다 싶을 때도 있는데 저자의 책을 보고 있노라니, 그동안 나는 이런 글을 안 쓰고, 못쓰고 뭘 했나 싶다. 부럽다. 우리나라에도 나보다 글 잘 쓰시는 작가는 하늘의 별처럼 많은데, 이렇게 미국에까지 별보다 많은 작가님들이 계셔서, 나는 글쓰기가 두려워진다.

책의 저자인 더글라스 케네디 작가는 결혼 선배이기도 하지만, 이혼 선배이기도 하다.     


"나 또한 수많은 선택을 했지만 후회하지는 않는다. 심지어 이혼할 때조차 후회하지 않았다. 내 첫 번째 결혼생활이 끝없는 재난으로 이어졌던 건 아니다. 두 아이가 태어났고, 정말이지 행복했던 순간들도 많았다. 글쓰기는 내가 좋아한 일이었기에 거듭되는 실망적인 결과를 받아 안고도 좌절하지 않을 수 있었다. 물론 작가로 살아가면서 실패가 겹치게 되면 실망도 하고 재능이 부족하다는 자학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내가 선택하고 좋아한 일이었기에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다. 우리의 부부 생활이 온탕과 냉탕을 오가는 일이 잦았으므로 밑바탕에 불안감이 없었다며 거짓말일 것이다. 나의 작가적 재능에 대해 계속 부정적인 말을 하고, 자주 업신여기는 사람과 함께 살아가면서 과연 내가 긍정적인 모습을 지켜갈 수 있을지 의심스럽기도 했다."



네네, 저도 그래요... 다만 남편은 나의 작가적인 재능에 대해서는 별 말을 하지 않았다. 그 부분만큼은 지켜줬던 것은 그의 마지막 배려였을까, 최소한의 예의였을까, 아니면 일말의 관심이 없었던 걸까.

어쨌든, 고맙다.     

책에는 머리가 쭈삣거릴만큼 탐나는 표현이 너무 많이 나온다.

괜히 베스트셀러 작가가 아닌 것이다. 기사 작위는 아무나 받는 것도 아니고.    


“문학은 우리가 보지 못하는 숨은 방, 우리가 차마 맞서기 두려워하는 절망의 방으로 이끄는 통로이다.”    


숨은 방, 절망의 방으로 어떻게든 찾아 들어오라고 문학이 존재하는 것 같다. 그 숨은 방, 절망의 방은, 내 마음속에 있는 방이다. 그래서 책을 읽는 시간은 나를 만나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 역시 예이츠의 소설을 읽으며 자신의 결혼생활에 대해서 돌아보게 되었다고 한다.


“오랫동안 결혼생활에 대해 회의적인 생각을 품어왔으면서도 늘 견딜만하다고 스스로를 달래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나 역시 결혼생활에 실패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 부당한 현실에서 탈피할 자신이 없었다. 그로부터 10년 뒤 정신과 의사의 상담을 받는 동안 분명하게 깨달았다. 내가 덫에 갇힐까 봐 두려워하는 모습은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구속당하기를 싫어하는 한편 자신을 구속하고 있는 세계 바깥으로 나가는 것에 대해서도 두려워한다.’고 한다.     

나는 구속당하기도 싫고, 구속하기도 싫다. 그런데 내 경우는 바깥으로 나가는 것보다 안에 있는 것이 더 두려웠다. 그래서 나왔다.

다행히(?) 저자도 이혼했다고 하고 나도 나왔으니 ‘우리는’ 두려움을 뚫고 밖으로 나온 동기들. 아직 책을 다 읽지는 못하여서 이 자전적 에세이가 어떻게 끝이 날지 정말 궁금하다.

그리고 나의 자전적 에세이도 몹시 궁금하다.

그 끝은 아마도 ‘끝’까지 가봐야 하겠지만, 나는 나 스스로 덫을 만들지 않으며 앞으로도 끊임없이 숨은 방, 절망의 방을 찾아들어가는 용기를 내면서 살아갈 것이다. 그것이 덫에서 겨우 나오게 된 나의 이유이기도 하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